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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의 스틸컷이 공개됐을 때 두 사람 때문에 경악했다. 한 사람은 안재홍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고현정이었다. 가위로 듬성듬성 자른 듯한 투박한 짧게 자른 머리에 죄수복을 입은 고현정은 "사람은 부주의할 수 있습니다…허나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라고 말하던 미실은 상상으로라도 꺼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고현정은 영화 '미쓰GO'(2012) 이후, 처음 임하는 인터뷰라고 했다. 거의 10년 만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고현정은 차분했고, 시종일관 솔직했다. 답변을 피하지 않았고, 돌려서 말하지도 않았다. 무리가 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를 꺼냈고, 펜으로 질문을 메모하며 고민 후 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발을 쓰고 연기하는 건 제 성격에 상상할 수 없어서 잘랐고요"라고 쇼트커트로 헤어 스타일을 바꾼 이유를 말하는 '배우 고현정'은 그런 그의 모습의 일례일 뿐이다.
공개 2주 만에 넷플릭스 월드 차트 1위(비영어권 시리즈부문)에 오른 '마스크걸'에서 고현정은 세 번째로 등장하는 김모미 역을 맡았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김모미가 의도치 않았던 사건에 휘말린 뒤, 대대적으로 성형수술을 하고 난 이후 출산을 하고 자수를 통해 교도소에 수감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의 모습이었다. -
◆ 고현정, 1인 3역 김모미의 피날레를 장식하다
고현정은 김모미에 대해 선도 악도 아닌 "돌+아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했다. 그는 "그 이상의 적당한 표현을 못 찾아서요"라며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덧붙였다. 고현정이 생각한 김모미는 안타까운 선택을 이어갔다. 고현정은 "어릴 때는 재능이 있어서 그걸로 박수받다가 나중에는 외모 때문에 박수를 못 받아 속상해하잖아요. 그 마음이 가족이나 다른 것들로 채워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박수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매몰돼 있잖아요. 그래서 안타까웠어요. 자기만족만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마스크걸'에서 김모미는 무려 세 명의 사람이 연기한 캐릭터였다. 처음에는 이한별이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BJ '마스크걸'로 생활하는 그를 그렸고, 그 바통을 나나가 받아서 성형 수술 후 예쁜 외모로 쇼걸 아름이로 활동하다 출산 후 자수하고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모습까지를 그렸다. 고현정은 나나에게 그 바통을 받아 교도소에서 약 10년을 복역한 '죄수번호 1047'로 불리는 김모미를 그렸다. 3인 1역의 상황 속에서 고현정은 대미를 장식해야 했다. -
- ▲ 영상 : 허준영 영상기자,popkorns@chosun.com
"연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요즘은 초등학교 때 사진, 20대 때 사진, 4~50대 때 사진을 나란히 놓으면 다 다르게 느껴질 때도 많이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특히나, 외모 지상주의라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는 작품이고요. 외모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해서 마스크를 쓰는 여자가 성형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하고. 그런 작품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고민한 건 모미에 대해서였어요. 앞서 연기한 배우들의 모습을 거의 보지 않았거든요. 제가 김모미를 그린 중심축은 '10년 동안 교도소에 있던 사람'이었어요. 모미는 교도소 안에서 바보같이 있었을 것 같지 않고, 오히려 '힐링한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어떤 장소에서 10년 이상 있다 보면 패턴과 루틴이 생겨서 그대로 가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여있는, 멈춰있는 상태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김모미는 그런 상태인 거죠. 그렇다면 그런 상태의 모미는 어떨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 김모미도 모성애를 가졌을까
'마스크걸'을 볼 때, 시청자들은 고현정이 보여주는 김모미의 또 다른 감정을 '모성애'로 본다. 하지만 고현정은 조금 달랐다. 김모미는 자신의 엄마(문숙)과 그냥 "혈연이라는 것 때문에 묶여있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딸 미모(신예서)를 엄마에게 맡겼지만, 고현정은 "오히려 괜찮은 시설을 알아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다들 자기 살기 바빴던 것 같아요. '마스크걸'에 나온 인물들은 자기 서사에 빠져있어서, 누가 누구를 돌보거나 그럴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모미가 엄마(문숙)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울어요. 잘 보지도 못해요. 그런데 엄마가 '아한테 가'라고 하니 발길을 돌려요. 대본에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긴다'라는 식으로 표현돼 있었어요. 그런데 미모를 구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멀쩡해요. 저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엄마를 대할 때 최면에 걸린 것처럼, 세뇌된 것처럼 엄마를 대한 것 같아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했던 거죠. 그런데 딸 미모에 대한 건 모미가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모미는 자기 외모나 사람들의 박수 외에는 관심이 없던 인물이라, 모성이 어떤 건지, 자신이 딸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모미스럽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엄마에겐 학교에서 받은 교육 등을 통해 세뇌된 것이 조금 있는 거죠. 그래서 눈물도 나오는 거고요." -
"그런데 미모에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김경자(염혜란)을 처리했다고 생각하고, 딸 모미(신예서)랑 애춘(김민서)랑 집 밖으로 나와서 경찰에게 모미가 손들고 투항해요. 다시 벌 받겠다는 거죠. 그런데 김경자가 다시 나와요. 그 순간 김경자를 보며 '모성이 이런 건가?' 생각했을 것 같아요. 모미는 모성보다는 부성에 조금 더 가깝다고 느껴졌어요. 딸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것, 그 정도 의미만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딸이 무사한 걸 알고 쓱 웃으며 쓰러질 수 있는 게 모미가 표현할 수 있는 모성의 전부는 아닐까 싶어요. 다른 엄마들이 모성애를 표현하는 것처럼, 딸의 얼굴 한 번 쓰다듬어 볼 줄도 모르는 거예요. 자기 딴에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최고로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죠. 그러니 교도소를 나갈 수 있는 거고요. 저에겐 그래서 '마스크걸'의 엔딩이 소중해요. 가장 찬란했던 엄마의 시절을 딸이 돌려보잖아요. 그 장면 자체로 어떤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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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정의 도전은 계속된다
고현정은 '마스크걸' 속 김모미를 보여주기 위해 가발이 아닌 실제 자신의 머리를 잘랐다. 처음에는 단발로 잘랐고, 느낌이 오지 않아 다시 한번 투박하게 쇼트커트로 잘랐다. 가발을 쓰고 연기하는 자기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에 흙칠을 하고, 액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고현정을 이전에는 상상한 적이 없었고, 이후에도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다.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저를 아직 현역 뒤편으로 보내지 마세요. 아직 쓰일 부분이 많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다양한 장르물을 많이 보고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밝은 작품도 하고 싶거든요. 굉장히 좋아해요. 이 시나리오를 볼 때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동안 항상 제가 작품을 이고 지고 혼자 끌고 가면서, 잘되면 다행이고, 잘되지 않으면 '고현정도 어떻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저도 도움을 받고, 작품의 일원이 되어 같이 협력하고 해낸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요. 그런 작품을 앞으로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
앞서 '마스크걸' 제작발표회에서 고현정은 "오래 연기를 하다 보면 원치 않게 체화된 연기를 하게 된다"라는 이야기했다. 그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늘 새롭지만, 연기에 대한 고현정의 갈증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고현정은 연기에 대해 "저도 모르게 평상시에도 항상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른 작품을 볼 때도, 어디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부분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배우로서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확히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해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그걸 잘 파악하고 있자고요. 요즘에는 뉴스만 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것을 관통하며 살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자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자신을 현역 뒤편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는 고현정이 요즘 하는 고민은 그 연장선상이다. "어떤 작품이 들어올까,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처음에 언급한 '선덕여왕', '모래시계', '봄날', '디어 마이 프렌즈' 등 유명한 작품 속 고현정도 있지만, 홍상수 감독의 작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코미디 영화 '미쓰GO' 등을 통해 다양한 색을 가진 그다. 그의 아우라가 어떤 자리에서 환하게 빛날지 기대감이 더해진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