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자존감이 높지 자신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결과나 상황이 와도 자존감으로 그 빈자리를 메꿔왔거든요.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자신감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져요. '남남'이 저에게는 자신감을 채워주는 기회였어요."
-
최수영에겐 당당함이 느껴진다. 일찍이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국내 최고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로 활약해온 그는 연기에 도전한 후에도 여전히 그 애티튜드를 잃지 않고 있다.
동시에 최수영은 자신의 연약한 면을 직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감도 조금씩 꺼내 쓰다 보면 고갈되기 마련이라, 자신감이 없을 땐 자존감으로 공백을 채웠다. 그렇게 버텨오던 최수영에게 '남남'은 자신감을 다시 채워준 작품이었다. -
'남남'은 철부지 엄마와 쿨한 딸의 남남 같은 대환장 한 집 살이와 그녀들의 썸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극 중 최수영이 맡은 '김진희'는 엄마 은미(전혜진)가 고등학생에 낳은 딸이자 파출소 순찰팀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수영은 시원하기보다 섭섭함이 가득하다는 표정으로 '남남' 종영 소감을 전했다. '남남'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할 수 있게 해준 이민우 감독에게도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남남' 마지막 방송 끝나기 15분 전부터 정말 엉엉 울었어요. 감독님이 마지막까지 정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들어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도 이 작품 만들면서 마음가짐도 남달랐기에 보내기가 너무 싫었어요."
"감독님은 정말 제 은인이세요. 제가 맨날 혜진 언니한테 '언니 인생캐다' 했는데, 감독님이 그때마다 '너도 인생캐가 될 거야'라고 해주셨어요. 그런 것에서 신뢰가 있었고, 막방 때도 혜진 선배님이랑 감독님이랑 문자하면서 울고 했어요." -
은미-진희 모녀의 이야기 속에는 복잡 미묘한 모녀 관계가 가득하다. 실제 최수영과 엄마의 관계도 비슷했다. 그래서 '남남'에 운명을 느꼈다.
"제가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을 끝내고 회사 대표님께 콕 집어서 '저는 엄마랑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서너 달 지난 후에 대표님이 '재밌는 거 하나 보냈어 봐봐'라고 하셔서 봤는데 그게 '남남' 대본이었어요. 읽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근데 엄마가 전혜진 선배님이셨어요. '나한테 어떻게 이런 게 왔지' 싶어서 흥분이 됐어요.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대본이었죠."
"저에게도 엄마는 가장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예요. 엄마와의 역사가 정말 길어요.(웃음) 저도 진희처럼, 엄마랑은 정말 남남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딸이었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둘 다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엄마가 '남남'을 보시더니 어느 날 문자로 '얘, 나도 은미 같니?'라고 물으셨어요. 주변 사람들 꼭 저희 모녀 보는 것 같다고 했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엄마가 내게 많은 감정을 알려준 건 맞지'하고 답했던 게 기억나요." -
'남남'은 모녀 관계성을 중심으로 끌고 간다. 그 사이사이에 각자의 로맨스와 복잡한 가정사가 점점 가지를 튼다. 때문에 '남남'에서 단연 가장 중요했던 건 은미와 진희 모녀의 호흡. 최수영은 전혜진과 '엄마 같은 딸', '언니 같은 엄마'로 모녀 케미를 선보였고 호평을 이끌었다. '남남'을 통해 인연을 맺은 전혜진은 최수영에겐 보배였다.
"사실 전혜진 선배님처럼 모두가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오히려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다가가면 좋아하세요. 제가 봤을 때 선배님은 소녀 같으신 면이 많아요. 귀엽고 수다스럽고, 재밌고, 정말 친구 같은 면이 많은데 제가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스타일이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선배님과의 호칭요? 저는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데 절대 못 부르게 하세요.(웃음) 요즘엔 언니라고 부르고, 뭐 부탁드려야 할 때는 '선배님'이라고 해요. 둘이 같이 술 한잔하면 저는 인생 얘기하고 언니는 아들 얘기하고, 그러면서 수다 떨어요. 전혜진 선배님은 지금 이 타이밍에 만난 좋은 언니이자 저와 같은 길을 걷는 어른이에요. 그런 존재가 제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런 여성을 제 옆에 둘 수 있다는 게 마치 보물 같은 존재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
최수영의 연기 경력은 상당하다. 2007년 소녀시대가 데뷔한 무렵부터 조연과 특별 출연으로 연기력을 갈고닦았다. 데뷔한지 22년 차, 연기를 시작한 지도 어언 16년이 지났다. 배우로서는 조금씩 조금씩 인지도를 높인 최수영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 고민에 놓여 있다.
"연기 고민은 늘 있어요. 그런데 시간에 따라 어떤 고민인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남남'을 시작하기 전에는 '배우로서의 내 매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었어요. '런온' 역시 '수영이가 부잣집 캐릭터가 잘 어울릴까?'에 대한 물음표를 깨고 싶어서 도전했고, 그 이후에는 일상 드라마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어요. '남남' 같은 작품을 기다린 거죠."
"예전에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에 대한 강박이 있었어요. 그냥 '수영이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다'하고 끝. 이런 반응이 많았어요.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게 '연기를 잘한다'는 말과 같진 않잖아요. '자연스러운데, 그 이후엔 뭐가 있어?'하는 그런 고민을 하곤 했어요. 저는 끊임없이 그 싸움을 하고 있어요." -
이날 최수영은 연기 갈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작은 역도 마다않고, 장르적 폭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목표를 향해 달리기보다는 그저 배우의 일에 집중하고 싶어 한 최수영이다.
"저는 배우를 하면서 목표를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어요. 저는 다 하고 싶어요. 액션, 로맨스, 멜로, 의학, 법정물, 스릴러. 이젠 제가 뭘 좀 선택하고 싶어요. 하하. 그런 점에서 제가 단편이나 독립영화도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제가 안 할거라 생각하시는 건지 안 어울릴 거라 생각하시는지는 몰라도, 저 여러가지를 너무 하고 싶어요. 독립영화도 환영이에요."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인기뉴스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dizz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