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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이 공개된 뒤, 한 배우를 향한 이런 반응들이 뒤를 이었다. '연기 좀 살살해 주세요', '이 정도면 감독이 배우에게 보증 선 거 아닙니까?', '주오남이 안재홍인 척 연기하며 사는 듯', '이거 안재홍 은퇴작이니?' 등의 반응이었다.
안재홍이 '마스크걸'에서 맡은 캐릭터는 '주오남'이다. 주오남은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인터넷 BJ들의 방송을 보며 하트를 쏴주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일찍 홀로된 엄마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지만,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고, 쌓여가는 결핍을 성인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그릇된 욕망으로 표출했다. 연출을 맡은 김용훈 감독까지도 "불편한 요소를 한데 모아놓은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감독은 그 불편함을 상쇄시켜 줄 배우를 찾았다. 바로 안재홍이었다. 그리고 안재홍은 파격적인 역할에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염려도 있었지만 "새로운 모습을 연기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더 많이 망설이지 않고 잡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극찬으로 이어졌다. 선배 배우들부터 동료들은 자극받았고, 대중들은 감탄했다. 안재홍 표 주오남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
- ▲ 영상 : 허준영 영상기자,popkorns@chosun.com
◆ 머리는 뽑은 걸까? 안재홍이 주오남이 되는데 필요한 시간, 2시간
안재홍은 시청자들이 주오남의 겉모습을 보고 바로 특이하고, 뭔가 이상한 캐릭터라는 것을 딱 알아채길 바랐다. 그래서 "조금 이질감이 들고 생경하면 주오남이 자아내는 감정도 더 잘 살아나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했고, 송종희 분장 감독님과 김용훈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작에 있는 탈모 설정에 외형까지 정해졌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데, 머리카락을 뽑지는 않았습니다. 주오남이라는 인물이 '열'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얼굴도 좀 붉게 달아오른 듯한 모습이고, 피부도 많이 긁어낸 듯한 질감이고요. 매회 촬영 전에 두 시간 정도 분장을 했어요. 너무 분장이 리얼해서, 분장실에 나서면서부터 이미 주오남이 된 것 같았어요. "
"'마스크걸' 때 10kg 정도를 증량했어요. 그런데 조금 더 살집이 있는 실루엣이 좋을 것 같아서 특수 분장을 하고 몸집을 더 부풀렸어요. 실리콘으로 본을 떠서 조끼처럼 착용했어요. 주오남이 모미가 마스크걸이라고 직감하고 헐레벌떡 달려와서 방송을 보려고 매고 있던 크로스백을 벗는 장면이 있거든요. 셔츠에 크로스백 모양으로 땀이 났는데, 사람들이 다들 진짜 땀인 줄 아시더라고요. 그 모양 그대로 물로 땀을 분장한 거였습니다. 실리콘 장치 위에는 땀이 안 나죠. 체형까지 특수 분장이 들어간 건데, 사람들이 잘 모르시더라고요. (웃음)" -
◆ 안재홍은 어떻게 주오남이 되었나
안재홍은 주오남에 대해 "안타까운 선택을 해서 파국에 이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길을 준 것은 최후를 맞이할 때 김모미(이한별) 앞에서 하는 마지막 대사 "처음이었어. 누군가한테 이런 감정을 갖는다는 거" 였다. 안재홍은 "이 대사가 모미라는 대상을 두고 비뚤어진 깊은 마음을 갖게 되는 주오남의 집착과 망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라고 생각하며 주오남에 대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마스크걸'에서 가장 화제가 된 주오남의 장면을 꼽자면, 김모미에게 "아이시떼루(일본어로 '사랑합니다'라는 뜻)"라고 외치며 고백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일본어 설정이 없었다. 안재홍은 '마스크걸' 원작 웹툰 속 주오남이 일본어로 중얼거리는 장면을 보고, 김용훈 감독에게 제안했다. -
"웹툰에 혼자 일본어를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중요한 장면도 아니었는데, 저에게 '뭐지?'라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서늘하기도 하고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우리 주오남도 사소한 순간에 툭 일본어가 튀어나오면 어떨까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초반 생일 파티 장면과 마스크걸이 갑자기 옷을 벗을 때 주오남의 반응이 일본어로 바뀌었어요."
"'아이시떼루'는 원래 없었어요. 연기 합이나 카메라 동선을 맞추기 위해 리허설 촬영을 하는데요. 제가 그때 '저 모미씨를 사랑합니다'라고 하고 '아이시떼루'를 애드리브로 더 해봤어요. 감독님도, (이)한별 씨도 당황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는 '아이시떼루'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너무 주오남의 상상인 걸 빨리 알아채지 않을까 고민하셨는데, 다양하게 의견을 나누다가 더해졌어요. 주오남이라는 인물은 망상과 현실이 혼동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더 캐릭터가 부각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대사를 넣기로 하셨어요." -
◆ 고현정·염혜란·이한별, '마스크걸'로 만난 배우들
고현정은 인터뷰에서 "'마스크걸' 속 안재홍의 모습을 보고 자극받았다"라며 극찬했다. 안재홍은 "저도 기사로 봤어요. 황송하고, 후배를 응원해주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게 느껴져서 따뜻했어요"라며 고현정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뵈었는데, 쫑파티 때 처음 뵈었어요. 저희는 회차 별로 리딩도 따로 했거든요. 쫑파티 때 처음 인사드렸는데 '아우라라는 것이 실재하는 거였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멋있었고, 사실 마지막 김모미의 모습은 정말 에너지가 넘치잖아요. 고현정 선배님께서 후반부 모미로 등장해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 순간순간들이 모두 너무 멋졌어요. 정말 끝판왕이 '마스크걸'의 피날레를 장식해 주시는구나 싶어서요."
염혜란과 안재홍은 극 중 모자지간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에 끝을 모르는 복수를 다짐하는 끓어오르는 엄마 김경자가 바로 염혜란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스크걸'에서 두 사람이 만난 건 꿈속에서 등장하는 장면뿐이었다. 안재홍은 "개인적으로 염혜란 선배님과 이번에 처음 작품을 했는데요. 더 많은 장면을 연기할 수 없어서 아쉬울 정도로 호흡이 너무 잘 맞았어요. 선배님을 처음 뵈었는데도 김경자처럼 느껴졌고, 주오남으로 촬영하면서 너무 좋았죠"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현재 염혜란은 안재홍을 향한 대중의 반응을 전해주며, 웃음 짓는 사이가 됐다.
안재홍이 '마스크걸'에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건 배우 이한별이었다. 이한별은 김모미의 강렬한 첫 등장 부분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안재홍은 "데뷔작이고, 큰 역할을 맡으셔서 첫 스타트를 끊는 연기를 하셨는데, 너무 차분하고 단단하게 모미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던 것 같아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한별 씨가 연기한 모미로 큰 에너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너무 멋있었고, 혼자 완성본을 보면서 (이)한별 씨가 끌어가는 힘이 강력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이)한별 씨의 연기력 덕분에 1부가 순간 삭제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다음 작품도 얼른 보고 싶고요. 늘 응원하게 될 것 같아요"라고 극찬을 덧붙였다. -
◆ 극찬받은 안재홍은 어떤 장면이 좋았나
안재홍은 '마스크걸'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로 '멀티플롯'을 꼽았다. 같은 이야기라도 김모미의 시선과 주오남의 시선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 안재홍은 "김모미 에피소드에서 주오남이 나오지만 거의 안 보일 듯 얼굴이 반만 나오고 그러거든요. 예를 들어 모미가 박팀장(최다니엘)과 택시를 탈 때, 모미 에피소드에서는 주오남이 포커스 아웃되어 있지만, 주오남 에피소드에서는 주오남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마스크걸' 구성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 사람 시점에서는 이런 이야기였는데,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시선이 '마스크걸'이 주는 신선한 재미가 되는 거죠"라고 설명하며 만족감을 보였다.
주오남으로 만족스러웠던 연기는 모미의 집으로 찾아간 장면이었다. 앞서 안재홍이 여기에서 나오는 주오남의 대사로 그에게 다가가는 발을 내디뎠다고 말했듯, 마음이 담긴 장면이었다.
"모미의 집에서 둘이 대화하는 장면이 좋더라고요. 투 샷인데 한 명은 마스크를 끼고 있고, 한 명은 특수분장을 하고 있잖아요. 주오남이 '나는 지워지는 건가?'라고 이야기할 때가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텅 비어버린 울림처럼 느껴져서요. 그 앞의 '처음이었어'라는 대사도 너무 슬프게 들리고, 주오남을 설명해 주는 대사라는 생각도 들고요. 일반적인 대화지만, 거기에서 오는 굉장한 힘과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
◆ 안재홍도 한계를 느낀 적이 있을까
안재홍은 독립영화 '족구왕'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어딘가 모자라지만, 안재홍으로 인해 관객은 지치지 않고 만섭이를 응원하게 했다.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정봉이, '쌈, 마이웨이' 속 주만이, '멜로가 체질' 속 범수, 영화 '소공녀' 속 한솔, 영화 '리바운드' 속 강코치 등 안재홍만이 가능한 캐릭터라는 범주를 만들어 냈다.
"제가 맡게 된 그 역할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그 역할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 있게,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상의 다른 한계점을 생각하기보다, 캐릭터에게 정말 진짜 같은 순간을 만들어 내고 싶은 게 가장 갈구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다양한 역에 도전해 보고 싶고, 그렇게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이번 주오남 역할이 정말 일반적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한 캐릭터인데요. 그 모습에 뜨겁게 반응을 해주시는 걸 보고, 들뜬다기보다 솔직히 말하면 좀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분명하고 선명해지는 느낌인 것 같아요."
아직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안재홍의 말이 앞으로의 그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리바운드'를 보며 '안재홍만이 가능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마스크걸'을 통해 '안재홍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대중의 기대감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