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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저에게 항상 '정신 좀 차려라'라고 하세요. 그렇게 정신 차리지 못하는 상태, 조금 더 의젓해져야겠지만,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배우 김남길이 말했다. 그는 영화 '보호자'에서 킬러 우진 역을 맡았다. 우진은 10년 만에 출소해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혁의 살인을 의뢰받은 킬러다. 우진은 사제폭탄 전문가 진아(박유나)와 함께 파트너로 활약한다. 킬러지만, 아이 같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가장 크게 소리치고, 슬픔을 느끼면 아예 웃어버리는 오묘한 느낌이 김남길을 통해 가능해졌다. -
김남길은 우진 캐릭터에 '평소 선배들에게 하는 자기 모습을 반영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진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기억 속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그때 생긴 트라우마로 결핍을 가진 인물이라고요. 개인적으로 가진 제 성향을 반영한 건 3~5% 정도뿐이에요. 선배들에게 다가가는 제 모습의 5% 정도를 꺼내 극대화한 거죠. 수혁(정우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 사람의 기운과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이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수혁과 있을 때는 수혁에게 동화되고, 진아와 있을 때는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는 환경적인 걸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보호자'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정우성은 '레퍼런스를 참고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했다. 김남길은 "무언가를 흉내 내지 말고, '남길스러운' 우진을 표현하면 좋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레퍼런스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킬러 등을 담은 레퍼런스를 찾아 봤어요. 멋있는 레퍼런스가 많더라고요. 유럽, 영어권 영화 속에서 이들은 많이 다크했어요. 제가 생각한 것과 달랐죠. 그런데 딱 하나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동성애 코드는 아니지만 사람으로 좋아하고 존중할 수 있는 애티튜드를 표현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진이 수혁에게 '이 차가 좋아. 너랑 닮았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관계가 가진 드라마적 요소에 대한 레퍼런스를 우연치않게 본 것 같아요." -
2인조로 활약하는 진아와는 사실 러브 라인이 있었다. 하지만 캐스팅이 된 후, 김남길의 말에 따르면 "저는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모두가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그 자신감은 묻어두자고요"라는 현장의 반응이었다.
"진아와 멜로적인 부분이 우진의 캐릭터성을 가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배제하며 캐릭터성을 더 극대화시켜서 가져가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유나 입장에서 너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저도 (정)우성이 형이 어려운데, 유나는 저도, 우성이 형도 어려웠을 거잖아요. 유나는 마치 탱탱볼 같았어요. 다가가면 튕겨 나왔어요. 그런데 한 번 진아와 우진이 어린 시절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유나가 쥐가 났고, 제가 그걸 풀어 줬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낯가림이 풀렸던 것 같아요. 타이밍이 잘 맞았고, 편안해진 것 같아요. 제 낮은 정신연령 덕분에 케미가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보호자'에서 우진은 진아와 또래처럼 보이면서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유나와 나란히 서도 어려 보이는 비주얼에 대해 김남길은 "다른 노력은 하지 않는데요"라고 웃으며 답변을 시작한다. -
"노력한다고 주름이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세월의 풍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생각을 가볍게 가져가려고 했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가'라는 부분이 배우들의 얼굴에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는 평상시에는 천진난만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지금 더 많이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김남길은 이정재가 주연과 연출을 맡은 '헌트'에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고, 정우성이 주연과 연출을 맡은 '보호자'에서는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청담 부부'라는 특별한 애칭의 이정재, 정우성과 모두 배우와 감독으로 호흡을 맞춘 것.
"'헌트' 촬영 당시 준비 과정은 모르겠어요. 현장에서 본 (이)정재 형은 '프리하다' 싶었어요. 스태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본인은 큰산을 보고 컨트롤하는 느낌이었고요. (정)우성 형은 모든 걸 다 맡기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 디테일을 놓치고 가는 부분을 귀신같이 잡아내세요. 현장에서 엄청 뛰어다니시고요. (이)정재 형 같은 경우는 넓게 보고 많이 맡기는 스타일이고, (정)우성 형 같은 경우는 디테일해서 어긋나면 잡아주려고 하세요. 둘 다 힘들어요. (웃음)" -
정우성과 감독과 배우로 호흡을 맞추며 감동받은 바도 있었다. 김남길은 수혁이 우진의 머리를 잡고 차에서 끌어내는 장면을 찍던 날을 회상했다.
"우진이 수혁에게 발악하는 장면인데요. 솔직히 계산하고 연기한 부분이 있어요. 잡기 편하게 머리를 놓았거든요. 그런데 (정)우성이 형이 모니터로 부르시더라고요. 갔더니, '상대 배우를 너무 배려하지 말고, 조금 더 이기적이면 좋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 감독님은 없으셨어요. 감동적이었어요." -
형들에게는 애교 많은 동생이지만, 김남길은 후배들에게는 믿음직한 선배이기도 하다. 일례로 차은우는 티빙 시리즈 '아일랜드'를 선택한 이유로 "김남길에 대한 믿음으로 참여했다"라고 밝히기도 했고, 대선배인 배우 고두심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남길의 현장 태도를 극찬하기도 했다. 김남길에게 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를 물어본 이유이기도 하다.
"제가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래요. 선배님들이 계실 때는 한발 물러서 있는 편이지만, 제가 리드해야 할 때는 경험이 적은 후배들을 이끌어 주고 좋은 기억을 남겨줘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기억이 시너지가 되고 좋은 작품을 만들거든요. 사람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항상 추구하는 건 '각자 일에 대해서는 창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요. 각자 맡은 부분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선배님들께 배운 게 있어요. 주인공을 하려면 세 번의 인정을 받아야 한대요. 첫 번째는 관계자, 두 번째는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대중이죠. 그렇게 인정을 받아야 진정한 주인공이라고요. 책임감있게 제 롤을 다하는 건 기본적인 거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스태프들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 같아요. 현장에서 정말 책임감이 중요해요. 한두 사람이 힘들어지면, 현장이 괴로워지거든요. 제가 인간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관계에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
사실 김남길은 배우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를 통해 창작자들을 후원하고 퇴역 경주마의 치료와 보호에 힘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남길은 최근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늘 그런 고민을 하는데, 사실 뭐가 같이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폭염으로 인해 피부에 와닿는 건 환경적인 부분도 있고요. 사건 사고들도 있고요. '같이 더불어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문화 콘텐츠를 통해 그런 고민을 어떻게 녹여내 시대적인 것으로 보여줄지 생각해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김남길은 오는 9월 22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를 통해 대중과 만나게 될 예정이다. 이는 1920년 중국의 땅, 일본의 돈, 조선의 사람이 모여든 무법천지의 땅 간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된 이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이다. 김남길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기대감이 높아진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