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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은 마치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연극 배우 활동을 했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김신록은 마치 운명처럼 연기에 끌렸다고 했다. 배우가 되는 것이 마치 과업처럼 말이다.
김신록은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십수 년을 연기에 몸담았다. 그러다 2019년 드라마 '방법'을 찍으며 본격적으로 매체 연기에 발을 디뎠다. 이듬해 '방법'이 방영됐고, 이후 김신록은 스크린과 TV에서 빠지지 않는 배우 중 하나로 꼽히기 시작했다. 이미 탄탄한 연기력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까지, 김신록이 아니면 안 되는 캐릭터들이 줄을 섰다. -
그중에서도 디즈니+ 시리즈 '형사록2'에서의 활약이 빛났다. '괴물'에 이어 두 번째 형사 캐릭터였다. 그가 맡은 금오서 여청계 팀장 '연주현'은 극 초반부터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담당했다. 주인공 '김택록'(이성민)과는 아슬아슬한 기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김신록은 연주현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
"처음에 대본을 받았는데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었어요. 4부까지 대본을 받고 보니 어떻게 전개가 되겠구나, (연주현이) 미스터리하면서도 서스펜스를 담당하는 캐릭터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상반된 면모를 보여주는 게 이 캐릭터를 표현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악력과 바람이에요. 한 손은 펼치고 한 손은 쥐는 이미지를 이용한 거죠." -
지난해 첫 공개된 '형사록'은 올해 시즌2를 선보였다. 김신록이 맡은 연주현은 시즌2에서 첫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미 합을 맞춰온 사람들 사이에 합류하게 된 그에게 현장은 어땠는지 물었다. 첫 촬영에선 긴장하기도 했다고 말한 김신록은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부녀로 호흡한 이성민의 존재 덕에 현장에 빨리 스며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큰 부담감은 없었는데, '형사록2' 같은 경우는 첫 촬영 때부터 '팀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감독님과 스태프들,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쭉쭉 진행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처음 합류하는 건데 이 사람들은 이미 모두 합이 잘 맞춰져 있어서 제가 긴장해서 뚝딱이고, NG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이성민 선배님이 '얘 좀 기다려줘'하니까 저도 팀 안으로 확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 오니 선배님께서 '얘 내 딸이야!'하시더라고요.(웃음) '재벌집 막내아들' 찍고 있을 때도 '네가 연주현이라며?'하셨고요. 일단 전작에서는 이성민 선배님과 의외로 일대일 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형사록2'에서는 거의 일대일로 붙거든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선배님과 더 밀도 있게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작품을 선택한 게 커요. 그래서 연기하는 모든 신이 더 긴장됐던 것 같아요. 연주현이 택록에게 지시하는 입장이라 긴장을 극복하면서 압도해야 하는 면, 그런 쫄깃한 부분이 많았어요. 배우로서도 그걸 표현하는 게 과제이기도 했어요." -
카리스마 넘치는 아우라 때문인지, 유독 장르물에서의 활약이 돋보였다. 드라마 데뷔작인 '방법' 이후 '괴물', '지옥', '모범가족'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다. 작품을 선택할 때 장르적 취향에 끌리는 것일까 싶었지만, 김신록은 장르적 영향보다도 세계관에 끌린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매 작품 캐릭터와 착 달라붙는 연기를 선보이는 비법으로 모범적인 대답을 내놨다.
"제가 매체 연기를 OTT가 활성화되던 때 함께 시작하다 보니까 장르물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도 세계관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세계관이 셋업 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옥'도 그렇고, '형사록'도 그렇고 매력을 느꼈어요."
"저는 연기할 때 캐릭터 라이징을 한다거나 인물 구축을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냥 스스로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하는데, 그건 대본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거죠. 대본에 쓰인 것과 저와의 화학작용 안에서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엔 이미 베테랑 배우였던 김신록. 인생의 대부분을 연기에 쏟아온 그에게 배우의 꿈을 꿨던 첫 마음을 물었다. 마음속 어딘가 연기에 대한 열망이 이글거렸던 김신록에게, 배우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는 연기를 연극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께서 연극 배우 활동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도 곧잘 하니까 어른들이 '변호사 되겠다', '기자 되겠다' 하셨는데, 늘 마음속에는 배우를 해야겠다는 이상한 열망이 있었어요."
"배우의 꿈은 중학생 때 처음 구체적으로 꿨던 것 같아요. 지역에 있는 소극장에서 배우들이 몸 푸는 걸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 왜인지 모르겠는데 막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김신록은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기'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연극 연출가로도 활약한 그는 강단에 서며 연기 열정을 드러냈다. 특히 올해에는 '배우와 배우가'라는 책을 출간했다. 2019년부터 웹진 '연극in'에 연재했던 인터뷰를 책으로 엮었다. 김신록은 배우 스물다섯 명을 만나 '연기'에 대해 물었다. 한창 '재벌집 막내아들'로 주가를 올리던 시기에 책까지 내놓으며 열일 행보를 보여줬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 이성민에게 책을 건넸을 때 이성민은 '백 명의 배우가 있으면 백 명의 연기론이 있는 것 같다'는 명언을 남겼다.
"사실 책을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준비 해오던 게 맞물려서 공교롭게 시점이 '재벌집 막내아들' 이후에 공개된 거죠. 제가 엄청 열심히 한 것 같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디벨롭된 결과가 그때 나온 거였어요. 공연과 관련한 일들은 저에게 연기적으로도 영감을 많이 주는 일이에요. 연기가 아니더라도 강연을 하거나 워크숍을 하는 일들이 그래요. 막상 할 때는 '바빠 죽겠는데 하지 말 걸' 하는 생각을 하지만 끝내고 나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집을 작업하면서)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고 '연기는 뭘까' 라는 걸 계속 질문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아요. 팬데믹 이후에 더욱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배우의 몸으로 탐색하는 게 연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어휘들을 다듬어가면서 연기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해나가고 있죠."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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