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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포토닉스, ‘길치’ 로봇의 내비게이션 되다

기사입력 2023.08.04 23:46
[AgTech in 실리콘밸리] ②아넬로 포토닉스(Anello Photonics)
마리오 파니치아(Mario Paniccia) CEO “GPS 약한 농경지, 강하고 저렴한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 필요”
  •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 등의 문제로 ‘식량 위기’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한국은 많은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식량 위기에 취약한 국가입니다. OECD로부터 식량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취약한 국가 1위로 꼽히기도 했지요. 이에 식량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알고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했습니다. 첨단 농업 기술을 뜻하는 ‘애그테크’(AgTech)를 탐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를 담은 기획이 [AgTech in 실리콘밸리] 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많은 독자분께서 국내 식량 위기의 심각함을 알고 스마트 농업에 관해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 마리오 파니치아 아넬로 포토닉스 CEO. /김동원 기자
    ▲ 마리오 파니치아 아넬로 포토닉스 CEO. /김동원 기자

    농경지에서 일하는 만능 일꾼 ‘로봇’은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자율주행 로봇과 트랙터는 종종 길을 잃는다. 사용자가 설정한 경로대로 움직이며 작업을 하면 되지만, GPS 신호가 끊기면 자기 위치를 찾아내지 못해 경로를 잃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 완전 자율 트랙터를 선보인 ‘존 디어’도 정확한 위치 감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미 힌드먼 존 디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CES에서 “정확한 위치 감지 기술로 농부들은 운전대를 잡지 않고도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고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며 “농부들은 트랙터 내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를 보고 조정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치 감지가 중요한 이유는 농경지에선 일반 상황보다 위치를 찾기 쉽지 않아서다. 농작물이나 낙엽 등이 지면에 쌓여 매일 로봇이 탐지하는 위치가 달라질 수 있고, 산이나 울창한 나무가 많은 곳의 경우 GPS 등 위치 정보를 알 수 있는 신호가 안정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가격도 문제다. 위치를 감지하기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 이를 보조하는 솔루션이 있지만, 한국과 같이 소규모 농작지가 많은 곳에선 이 솔루션을 탑재하긴 쉽지 않다. 로봇 가격에 더해 위치 탐지 기술까지 탑재하게 되면 투자대비효과(ROI)가 나지 않아 그만큼 농산물 가격이 급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확하게 위치를 감지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기술 수요가 커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받는 기술이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다.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전자기기가 광 정보를 송수신할 때 표준 실리콘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데이터 신호를 광자로 전송해 신호 프로세싱·전송·검출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전기 신호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데이터를 전송하면서도 금속 회로보다 열 발생과 전력 소모량이 적다. 그만큼 저렴한 비용에 빠른 속도의 데이터 전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술은 실시간 작동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최적화된 기술로 평가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둔 ‘아넬로 포토닉스’(Anello Photonics)는 실리콘 포토닉스 선도 기업이다. 회사 설립자인 마리오 파니치아(Mario Paniccia)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에서 실리콘 포토닉스 데이터 사업부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으로 근무하며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 증진을 이끌었다. 이 분야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아넬로 포토닉스 설립 후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칩을 개발하며 GPS 신호가 없어도 정확하기 위치를 감지할 수 있게 했다. 

    아넬로 포토닉스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1월 존 디어가 선정하는 ‘2023 스타트업 콜라보레이터’에서 8개 우수 기업에 선정됐다. 스타트업 콜라베이터는 존 디어가 농업 및 건설 장비의 정밀 기술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타트업을 선정·발표하는 행사다. 존 디어는 아넬로 포토닉스를 “자율 애플리케이션(앱)을 위한 스마트 센서인 실리콘 포토닉스 과학 자이로스코프를 통해 내비게이션 산업을 혁신하고 있는 회사”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 기술은 한국 농업에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관련 내용을 알기 위해 국내 스마트 농업 전문가인 이경환 전남대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농업생산무인자동화연구센터장)와 함께 마리오 파치아 CEO를 만났다.

  • 마리오 파니치아 아넬로 포토닉스 CEO가 회사에서 개발한 자이로 칩을 소개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마리오 파니치아 아넬로 포토닉스 CEO가 회사에서 개발한 자이로 칩을 소개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주력 제품은 무엇인가.

    “우리의 주력 제품은 실리콘 포토닉스 광학 자이로스코프인 SiPhOG다. 이 칩은 간략하게 소개하면 통합 광자 기술이다. 정확하게 위치를 감지할 수 있으면서 크기가 작고 온도와 진동, 전자 자기장에 민감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 회전 움직임을 감시하는 센서인 ‘자이로’가 탑재돼 있는데, 이를 토대로 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감지하고 잘 조절되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 SiPhOG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광섬유 자이로스코프 센서로 구성된 이 칩은 2mm x 5mm 크기로 구성된 작은 칩이다. 3개의 광학 감지 광검출기 2개의 모듈레이터가 장착돼 있다. 기존 내비게이션 장치에 주로 사용되는 ‘FOG(Fiber Optic Gyroscope)’ 방식의 내비게이션 기보다 부피와 제작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성능은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제품의 주요 응용 분야는 위성 항법 시스템, 관성 항법 시스템, 관성 측정 장치 등이다.”

  • 아넬로 포토닉스가 개발한 아넬로 솔루션 사진. /김동원 기자
    ▲ 아넬로 포토닉스가 개발한 아넬로 솔루션 사진. /김동원 기자

    - 자율주행 분야에서 이 칩이 왜 필요할까.

    “지금 미국에선 자동차뿐 아니라 농기계,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자율주행은 GPS에 의존한다. 그런데 터널이나 나무들이 무성한 산, 도시 협곡 등에선 GPS 신호가 정확하지 않다. 우리가 운전하면서 이용하는 내비게이션도 GPS 신호가 원활하지 않은 곳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GPS 신호가 원활하지 않으면 자율주행은 완전하지 못한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GPS 신호에 의존하지 않고 장비 자체 시스템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칩을 자동차, 드론, 로봇, 농기계 등에 탑재하면 GPS 신호 없이 자체적으로 자기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

    - 위치 감지 정확도는 증명이 됐나.

    “물론이다. 우리는 GPS 없이 이 칩을 탑재해 자율주행 테스트를 했다. 단거리뿐 아니라 장거리도 진행했다. 동일한 차량에 우리 칩과 경쟁사 칩을 탑재한 후 2분간 GPS 신호를 껐을 때 얼마나 정확하게 자율주행하는지 시험했다. 그 결과 경쟁사 제품은 20m의 오차를 범했지만, 우리는 1m의 오차만 나왔다. 장거리는 로스 알토스에 샌프란시스코 도심까지 자율주행으로 가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도심지, 터널, 숲에서 운전할 때 정확도 문제가 없는지 시험했다. 도심지에서 GPS 신호를 끄고 자율주행 시험을 했는데 우리 제품은 1m 오차를 기록한 반면, 경쟁사 제품은 15m 오차가 발생했다. 터널에서 우리 제품은 3m 오차, 경쟁사 제품은 15m 오차가 있었다. 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도심지에서 보면 한 블럭 차이인 것이다. 그만큼 우리 제품은 GPS 신호와 가장 근접하면서도 신호 불안정 등의 문제가 없는 기술인 것을 입증했다.”

  • 아넬로 포토닉스 장치는 로스 알토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거리의 자율주행 정확도를 테스트한 결과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아넬로 포토닉스
    ▲ 아넬로 포토닉스 장치는 로스 알토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거리의 자율주행 정확도를 테스트한 결과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아넬로 포토닉스

    - 해당 기술이 농업 분야에 왜 중요한가.

    “농사를 지을 땐 위치 감지가 정말 중요하다. 물론 자율주행 농기계나 로봇이 자동차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1시간에 5마일, 10마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업 환경에선 GPS 신호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낙엽이 많거나 숲이 울창하거나 혹은 다른 농업 창고들이 있을 때 신호가 방해받는다. 그렇게 되면 농기계나 로봇이 자기 위치를 감지하지 못해 정확한 일 처리를 못 하게 된다. 효율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업 무인화에 많은 투자를 하는 존 디어는 위치 감지 기술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올해 존 디어는 함께 협동 프로그램할 회사들을 찾았는데 이중 우리 회사가 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그 이유는 존 디어는 회사에서 여러 농업용 기구와 앱을 개발해 무인 자동화를 이루고 있는데 GPS 신호가 원활하지 않은 곳에서도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았고, 우리 솔루션이 적합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 농기계는 크기가 다양하다. 존 디어의 트랙터처럼 큰 제품도 있지만 작은 로봇도 있다. 한국은 농지가 미국처럼 크지 않아 작은 제품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광학 자이로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회사다. 실제로 손가락이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칩도 있고 적외선을 사용해야 볼 수 있는 칩도 있다. 우리가 이렇게 작은 자이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을 사용해 일반 전기보다 높은 성능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은 크기로도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 우리는 이 크기를 계속 줄여나갈 계획이다. 현재 사용 가능한 제품 외에도 폼 팩터를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봇이나 게임기기뿐 아니라 스마트폰, 시계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더 작게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 이경환 전남대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제일 왼쪽)가 한국 스마트 농업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이경환 전남대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제일 왼쪽)가 한국 스마트 농업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존 디어 외에 현재 협력하고 있는 회사가 있나.

    “실리콘밸리는 고객 정보 등에 대한 보안이 정말 중요한 도시다. 이 때문에 정확한 협력 업체를 말하지 못한다. 양해해달라. 숫자로만 얘기하면 현재 협력하고 있는 회사는 100여 개 정도 된다. 농업은 물론 건설, 운송, 로봇, 무인 항공, 자율 주행, 국방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아직 대부분 초기 단계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 아직 한국엔 진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한국 시장 진출 계획은 있나.

    “현재 우리는 주로 미국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함께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회사도 생겼다. 한국 시장에 대해선 당연히 관심이 높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관심이 높은 국가로 알고 있다. 우리 기술에 관심이 있는 회사가 있다면 한국과 협력하기를 원한다. 이번 기사로 한국 기업과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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