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태리, 문을 열었네?

기사입력 2023.07.31.10:58
  • 사진 : SBS '악귀'
    ▲ 사진 : SBS '악귀'

    “문을 열었네?”

    이 대사는 ‘악귀’에서 매우 중요한 대사이자, 섬뜩한 대사다. 문을 열었다는 것은 악귀가 들어가 자신을 해하도록 허락했다는 것. 문을 여는 건 주체적인 태도지만 그 이후에는 선택할 수 없다. ’악귀‘에서 보여준 김태리가 당신의 마음에 파고들었듯 말이다.

    ’악귀‘는 아버지의 유품을 열어보고, 악귀에 씌게 된 구산영의 이야기를 담았다. 구산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싱글맘인 엄마 아래서 자라났다. 아버지가 실제로 돌아가신 날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산영은 가난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억척스레 소화해야 했다. 세상이 힘들었고 평범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려 했다. 그런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악귀를 물려받게 된다니.

    그 악귀로 인해 구산영은 변해간다. 악귀는 자기 몸에 씐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며 커지고, 그 대가로 부나 명예든 원하는 것을 안겨준다. 단, 조건이 있다. 악귀에 씐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25살, 시야가 차단되는 불치병까지 알게 된 산영은 고민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 사진 : SBS '악귀'
    ▲ 사진 : SBS '악귀'

    김태리는 그 악귀를 ’억지로‘ 전시하려 하지 않았다. 눈이 초록색으로 변하거나, 악귀를 상징하는 시그널 음악도 없었지만, 김태리가 지금 구산영인지 악귀인지를 알아채게 했다. 가난하던 그가 처음 명품으로 휘감고 친구 결혼식 뒤풀이에 참석했을 때, 처음 등장한 화려한 김태리는 시선을 압도했다. 거기에 홍새의 귀에 대고 ”내가 그 사람들 다 죽였어“라고 말하는 과시까지 나중에 맞춰질 악귀의 단서가 된다. 갖고 싶었고, 과시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향이의 단서다. 극 중반, 악귀가 어렸을 때 죽음을 당한 이목단으로 전개될 때는 마냥 소녀 같은 걸음걸이를 보여 의아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태도가 아님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있음을 홍새(홍경)와의 놀이동산 데이트에서 드러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진 감정이 폭발했을 때 비로소 ‘공포’라는 것이 찾아왔다. 구산영이  네 번째 악귀의 물건을 만진 순간은 압권이었다. 잠시 몸이 굳은 채 있던 구산영은 이내  “물 줘! 목이 말라 죽겠어”라고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장면은 ‘공포’와 더불어 ‘연민’에 이르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무려 '악귀'로까지 한 번 더 문을 열게 했다.

  • 사진 : SBS '악귀'
    ▲ 사진 : SBS '악귀'

    김태리는 지난해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해사한 고등학생 희도를 보여줬다. 희도의 말은 늘 한 발 앞서 있었고, 펜싱선수인 희도가 내두르는 칼끝은 휘청이는 움직임 속에서도 곧았다. 마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듯이.

    그리고 스물하나였던 희도가 약 일 년 만에 스물다섯의 구산영이 되어 전혀 다른 청춘을 그렸다. 구산영은 늘 한 발 물러서 고민한다. 허겁지겁 일어나고, 깊이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한다. 가난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 절망감을 숨기지 않고, 검은 밤 검게 물결치는 한강 위에서 한참을 응시한다. ‘누군가 한 명쯤 날 좋아해 줬으면’하는 휘청이고 외롭고 위태롭고, 하지만 악귀 향이도 “너답게 살길 원했어”라고 했듯 나아갈 발걸음을 결정하고 나아가는 또 다른 청춘의 모습이다.

  • 사진 : SBS '악귀'
    ▲ 사진 : SBS '악귀'

    루즈한 옷 안에서 한 회가 다르게 말라가는 김태리의 모습은 구산영에 얼마나 몰입해 있었는지를 대변한다. 선택하면서도 불안하고, 뒤돌아보고 싶지만 ‘사랑하는 사람(엄마)‘를 지키기 위한 단호한 걸음걸이는 구산영 그 자체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들은 머리를 풀어 헤친 그림자보다 나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금줄 뒤에서 얼굴 경련까지 연기로 표현해내는 김태리를 더 무서워하고 애틋해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아귀 등의 사건을 통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던 것이 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 김태리를 통해 우리가 응원하고 있는 것은 지금을 올바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임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리는 문을 활짝 열었다. 영화 ’아가씨‘로 혜성같이 데뷔한 그가, 그 데뷔가 혜성 같은 사건이 아니었음을 쭉 이어지는 우주의 한 자국임을 스스로 증명해 가고 있다.

  • 사진 : SBS '악귀'
    ▲ 사진 : SBS '악귀'

    과거 김태리는 ‘외계+인’ 인터뷰에서 작품을 할 때면 김태리가 아닌 숙희(아가씨)로, 애신(미스터선샤인)으로, 혜원(리틀 포레스트), 장선장(승리호), 나희도(스물다섯 스물하나)로, 이안(외계+인)으로 보이는 비결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연기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진짜에 가장 근접한 거짓말을 하는 게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걸 향해 달려가는 거고요. 거짓말이 아닐 수는 없다는 것에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가장 진짜에 가까운 거짓말이 어디인가를 찾아가는 거예요. 나에서 찾는다거나, 상상을 발휘한다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 지점에 도달하는 거예요. 그때,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것."

    홍새가 말했던 것처럼 "꿋꿋한" 스물다섯의 구산영을 완벽히 담았다. ‘악귀’를 통해 안다. 이번에도 김태리는 포기하지 않았구나. 다음에도 역시 포기하지 않겠구나. 이것이 대중이 앞으로의 김태리를 더 기대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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