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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샌프란시스코를 구하라”

기사입력 2023.07.04 10:59
홈리스와 사무실 폐업으로 ‘유령도시’로 전락한 도시 중심가
시장과 기업인, ‘깨끗한 거리’ 위해 공동 주택 마련 등 복지 강화
  •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시청 앞 연설에서 공동 주택 건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시청 앞 연설에서 공동 주택 건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IT 도시 상징인 실리콘밸리를 품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이 도시의 중심가에서는 맑은 하늘과 고층 빌딩을 보고 다닐 여유가 없다. 바닥엔 마약에 취해있는 홈리스(노숙자)부터 대변, 껌, 침, 마약 등이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바닥에 가루가 있으면 모아서 냄새를 맡아보는 홈리스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홈리스 문제는 현재 샌프란시스코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과거에도 홈리스들은 존재했지만, 최근 이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그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져서다. 과거 약물에 중독되고 정신질환을 앓는 노숙자는 도심에서도 ‘텐더로인’에 집중됐었다. 이 거리만 지나지 않으면 홈리스를 만나거나 피해 볼 일은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심가 전체로 홈리스가 확대됐다. 주요 IT 기업들이 있는 산호세 등 주변 도시나 피어39, 금문교 등 관광지는 상황이 괜찮은 편이지만, 도심 주변은 ‘똥 도시’,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

    6월 20일(현지시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샌프란시스코 방문 후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대변을 보고 마약을 하고, 크랙 코카인을 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면서 “이 도시는 생기를 잃었다”고 비난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12년째 거주하고 있는 신영애 (YoungAi Shin)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헤로인 마약을 넘어 모든 마약을 섞어서 하는 칵테일 마약이 유행하고 있다”면서 “시민들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어난 홈리스와 마약에 취한 사람, 더러워진 거리 탓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홈리스의 모습. /김동원 기자
    ▲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홈리스의 모습. /김동원 기자

    ◇샌프란시스코 왜 변했나

    샌프란시스코의 변화는 경제 위기에서 시작된다. 이 도시는 엔지니어 중심이 고급 인재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연봉 10만 달러(약 1억 3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가 많다. 고액 연봉의 젊은 직장인들이 몰려들면서 집값은 최근 10년 사이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월세 역시 비싸다. 현재 시세를 알아본 결과 원룸 한화로 350만 원, 투룸은 500만 원이었다. 이처럼 높은 물가에도 사람이 몰렸던 것은 그만큼 기업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달라졌다. 일부 회사는 자금난에 시달리며 폐업했고, 샌프란시스코에 지사를 운영하던 큰 기업들도 경제난에 사무실을 옮기거나 폐쇄하기 시작했다. 사무실들이 문을 닫자 실업자들이 증가했다. 고급 인력들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옮겨진 사무실로 가면 됐지만, 단순·반복 업무를 하던 이들은 실업자가 돼버렸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회사에서 직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나 사회적으로도 실직 물결을 막진 못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는 빈 사무실이 많았다.

    집에서 강제퇴거 당한 이들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집 주인이 월세를 크게 올릴 순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집을 세놓지 않는다거나, 자신이 직접 살겠다는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코로나19로 실업자들이 늘자, 집주인들은 월세를 올리기 어려운 장기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을 팔거나 리모델링하며 세입자들을 내쫓은 것이다.

    사계절 따뜻한 날씨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장점도 홈리스 증가에 영향을 줬다. 1월부터 12월까지 기온에 큰 변화가 없고, 비가 자주 오지 않는 도시 날씨는 홈리스가 살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우버 기사로 일하는 미구엘(Miguel)씨는 “뉴욕이나 LA에서 마약에 취한 홈리스들을 기차에 태워 샌프란시스코에 보낸다는 얘기도 있다”며 “사계절 날씨는 우리의 자랑이지만 때로는 불폄함을 준다”고 했다.

  • 샌프란시스코 도심에는 홈리스들이 텐트에서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김동원 기자
    ▲ 샌프란시스코 도심에는 홈리스들이 텐트에서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김동원 기자

    ◇런던 브리드 시장 “공동 주택 건설” 강조

    샌프란시스코 위기가 계속되자 시에서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6월 29일(현지시간) 시청 앞에서 “고층 건물이 있고 사계절 날씨가 따뜻한 샌프란시스코는 최고의 도시”라면서 “이 도시에 사무실을 늘리고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공급정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리드 시장은 이날 샌프란시스코 내 공동 주택 건설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지금과 방식이라면 공동 주택 건설에 관한 우리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감사위원회가 주거 지원 법안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브리드 시장이 얘기한 목표치는 8년 안에 8만 2000채의 공동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공동 주택에서는 홈리스나 실직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브리드 시장과 샌프란시스코 내 주요 직위자들은 공동 주택 건설과 도시 경찰 확대를 위한 지원금 확대에 관한 지원 법안을 감사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브리드 시장은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큼 적극적이지 못했다”며 “현재 샌프란시스코가 겪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그 것이 바로 주택 생산 가속화”라고 강조했다.

  • 세일즈포스는 홈리스 등 도시 문제 해결 완화에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김동원 기자
    ▲ 세일즈포스는 홈리스 등 도시 문제 해결 완화에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김동원 기자

    ◇세일즈포스 등 샌프란시스코 기업인, 홈리스 지원 강조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업들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세일즈포스다. 전 세계 고객관계관리(CRM) 선두 기업인 세일즈포스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고객 관리 접점에서 필요한 서비를 지원하며 고객들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이다. 일례로 세일즈포스가 제공하는 ‘AI 클라우드’는 주간 1조 건 이상의 AI 기반 예측을 제공하는 솔루션 ‘아이슈타인’을 기반으로 이메일 작성, 고객 문의 대응, 커머스 채널에서의 제품 추천 등 부서별 업무 자동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 기업은 도시 내 홈리스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이다. 특히 2018년 11월 통과된 ‘홈리스 법인세’를 두고 찬성 의견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홈리스 법인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하면서 연간 총매출이 5000만 달러 이상인 기업과 개인에게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법안이다. 이를 통해 도시는 최대 3억 달러의 세금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시는 이 금액으로 공동 주택을 짓거나 홈리스를 지원하는 등에 사용코자 하고 있다.

    이 법안은 처음 발의됐을 때 강한 반발을 맞았다. 트위터와 스퀘어 등이 CEO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우버 경쟁사인 리프트 설립자는 홈리스 법인세 반대 켐페인에 10만 달러 이상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홈리스 법인세가 도입되면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미 기업들은 시에 충분한 세금을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기업과 똑같이 법인세 대상인 세일즈포스의 입장은 달랐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최고경영자(CEO)는 “도시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으며 사업을 해온 기업들은 도덕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리스 법인세 통과를 위한 자금으로 7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세일즈포스 미국 본사는 “우리는 홈리스 등 도시 문제에 적극 개입해서 문제 해결 완화에 노력하고 있다”며 “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홈리스 지원 정책에는 세일즈포스 등 주요 기업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러한 세일즈포스의 자금 지원은 실제 홈리스 대책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일 UC샌프란시스코 산하 노숙자·주택이니셔티브 연구소가 발표한 홈리스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금 지원이 홈리스 해소에 가장 필요한 대책으로 꼽혔다. 연구소는 “홈리스가 생기는 이유는 마약 중독과 정신 건강이 아닌 소득 상실이 가장 큰 이유였다”면서 “매달 임대료 보조금으로 300~500달러를 지원받았다면 이들이 홈리스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숙자 10명 중 9명은 5000~1만 달러의 일회성 주택 보조금을 받는다면 노숙 생활을 벗어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약물이나 음주 때문에 홈리스가 됐다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참고로 홈리스들이 노숙 생활을 하기 6개월 전 중간소득은 월 960달러였다. 쿠셀(Kuesel) 연구원은 “샌프란시스코 내에 있는 노숙자들이 외부인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들은 우리처럼 일반적으로 살아가던 이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심각한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자금 지원으로 인한 주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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