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메타리즘 이시한 칼럼] 메타버스 예능들은 왜 하나의 장르로 안착하지 못했을까?

  • 메타리즘
기사입력 2023.05.30 10:20
  • 메타리즘 이시한 칼럼
    ▲ 메타리즘 이시한 칼럼

    2022년 중순부터, 방송가는 전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능들을 맞이했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육아, 여행, 요리 등 만날 비슷한 예능의 형식에 새로움을 더해줄 가능성이 등장했다고 기대감을 가졌지만, 그에 비해서 시청자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능들에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메타버스 예능들이다. 

    한국 방송 사상 첫 번째 메타버스 예능이라는 홍보 문구를 앞세워 등장한 MBN의 ‘아바타싱어’는 1회당 제작비가 10억 원이 들어간다고 알려진 것에 비해서, 시청률은 0~1%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워버렸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요즘에는 유튜브나 OTT 등 다른 볼거리들이 많기 때문에 1% 정도의 시청률이 나오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화제성 면에서도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자체가 잘 만든 플랫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화제성에 의존하는 마당에, 메타버스 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화제성마저 없으니 그야말로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들어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바타 싱어’이후에도 비슷한 시기에 론칭된 메타버스 예능들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주목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TV조선의 ‘아바드림’은 이미 세상을 떠난 듀스의 김성재나, 송해, 김자옥, 서지원 등을 재현한다든가 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역시 꾸준한 시청률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메타버스 본연의 가치보다는 세상에 없는 연예인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 이슈화되다 보니, 흥미보다는 신기함에 잠깐 그친 일회성 이벤트에 가까웠던 것이다. 

    메타버스 예능들은 왜 하나의 장르로 안착하지 못했을까?

    한동안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되어서 방송가에서 우후죽순 제작이 시도되었던 메타버스 예능들은 왜 하나의 장르로 안착하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메타버스인지 답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제작된 메타버스 예능들은 대부분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경연이든 공연이든 대부분은 음악과 결합이 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물론 ‘가상 세계지만 스타가 되고 싶어’ 같이 본캐가 누군지 추리하는 메타버스 추리 예능을 표방한 예능도 있었지만, 여기에도 공연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음악 예능이라면 노래가 반 이상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라든가, 어색한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데, 음악 없이 실제로 방송 분량을 가상의 캐릭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으로 나가면 시청자들은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로 높여진 CG에 대한 대중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쉽지 않고, 메타버스 특유의 몰입감을 방송화면으로 구현하기에도 쉽지 않다. 그러니까 메타버스의 특성을 방송으로 구현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 메타버스 예능들은 상대적으로 잘 된 것일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아바타싱어’가 방영된 뒤에 처음 나온 대중들의 반응은 ‘얼굴을 가리고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게 누구인지 궁금하게 하는 것은 결국 복면가왕의 3D판 아니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다음 질문이 등장한다. ‘복면가왕처럼 하면 되지 왜 굳이 회당 10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여서, 메타버스에서 이런 형식을 반복해야 하는가?’이다. 물론 관계자들에게는 이런 시도들을 통해서 기술력을 쌓고 앞으로 보다 더 진일보하기 위해서라는 대의가 있겠지만, 대중들에게는 이런 이유가 통하지 않는다.

  • 콘텐츠가 먼저, 메타버스는 그 후에 선택하는 도구다

    나중에 기술이 진보해서 몰입감 높은 화면으로 메타버스와 예능이 결합한다면 그것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시청자들이 반응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에 수많은 협업툴이 쓰였지만, 그중 가장 적극적인 사용을 이끌어 낸 것은 2D기반의 ‘게더타운’이었다. 기술적으로 완성되고 몰입감 높은 3D화면을 제공하는 툴도 있었지만, 사용자들은 90년대 오락실 게임 같은 화면인 ‘게더타운’을 선호한 것이다.

    그 이유로 다양한 오브젝트를 활용하여 공간을 꾸민다든가, 손쉽게 접속하고 손쉽게 동작하는 인터페이스 등이 뽑히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이유는 사무 환경과 비슷한 채팅 환경이다. 아바타끼리 붙으면 화면이 켜지면서 대화가 가능하고, 떨어지면 대화창이 닫히는 ‘게더타운’의 방식은 실제 사무실에서 동료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걸고, 떨어지면 혼자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유사하다. 줌으로 접속하고 있으면 계속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니까 피곤한 것에 비해서, 나만의 영역과 동료들과의 공용영역에 대한 구분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예능도 결국에는 기술이라기보다는 메타버스라는 특성을 잘 살리는 환경이 중요하다. 메타버스는 다양한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난다는 커뮤니티성이 핵심일 수 있는데, 기존 메타버스 예능들은 그런 부분은 빼버리고 3D 기술력에 너무 의존했다. 그래서 항상 ‘부캐’라는 것을 제일 앞에 내세우고, 부캐라는 말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럼 본래 캐릭터는 누구인가?’라는 방향성으로 흘러왔던 것이다.

    한 가지 전제할 것은 메타버스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메타버스 예능들을 보면 기술적 구현이라든가 캐릭터의 완성도 등에 제작비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인다. 마치 메타버스가 목적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예능은 도구인 듯이 말이다. 하지만 콘텐츠로서 내용이 먼저고, 메타버스는 도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장인들이 비대면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 연결을 위해 카톡, 줌, 게더타운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럴 때 직장인들이 선택하는 도구는 업무를 할 때 편하면서도 가장 생산성 좋은 것을 선택하지, 메타버스니까 이것으로 소통해야지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메타버스 예능이나 콘텐츠들도 그 콘텐츠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재미의 요소를 먼저 생각해서 기획을 하고,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도구가 메타버스가 된다면, 그때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지금은 메타버스를 보여주고 싶은데, 그 메타버스를 보여주기 위해 예능이라는 도구가 선택된 느낌이기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콘텐츠가 나오게 된 것이다.  

    ‘메타버스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면 ‘메타버스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이 앞에 오게 된다. 지금까지 메타버스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것은 실시간 연결이었다. 공간을 초월해서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같이 공연을 즐기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도구로서 메타버스는 훌륭하게 기능해 오고 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 초실감의 몰입감이 더 중요한 특성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향후 몇 년은 더 있어야 그런 기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니 지금 메타버스를 활용해서 예능을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더욱 중요한 기능은 시청자들 간의 연결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것이 힘들다면 예전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MBC 예능처럼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따로 진행을 하고, 그것을 편집해서 방영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마리텔에서 가장 많은 재미를 보장한 것은 바로 공중파 문법의 선을 절묘하게 타는 날 것의 신선함과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실시간 댓글이었다. 시청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마리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메타버스 예능 시청자들의 범위는 한국으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 방송가에 메타버스 예능이 범람할 때 한 가지 우려는 JTBC, MBN, TV조선 등 종편에 주로 론칭이 되었다는 것인데, 종편의 시청자층은 평균보다도 조금 높은 축에 속한다. 메타버스라는 인터페이스에 서툰 시청자들이 익숙한 시청자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그러니 애초에 참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아닌 것이다. 반면 조금 낮은 연령대로 설정하면 시청자가 제한된다는 문제가 생기는데, 한국에 한정하니까 굉장히 시청자층이 줄어드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메타버스니, 시청자의 지역을 스스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 

  • 메타버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

    어쩌면 전 세계에서 한국은 가장 메타버스 예능을 만들기에 좋은 나라일 수 있다. 전 국민적으로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실험정신이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안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에 어필할 경쟁 무기를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떠오르는 K-Pop, K- Culture를 통해서 메타버스 안에서 방송이 진행되고 그것을 세계인들이 참여하는 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굳이 메타버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 안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계인들과의 연결 때문이다. 실시간 번역으로 의견을 표명하기도 하고, 팬들 사이에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미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인, 벨기에인들이 아바타로 한 장소에 모여서 저 음악이 왜 좋은지 이야기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팬심은 경연의 응원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메타버스일 수밖에 없는 예능의 등장과 성공은 어쩌면 지금의 방송환경을 완전히 파괴하는 새로운 방송의 형태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전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런 과정들이 결국 메타버스 방송국이나 메타버스 영화사처럼 새로운 미디어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이시한 교수] 이시한 교수는 연세대학교 박사 수료 후 성신여자대학교 겸임 교수로 활동 중인 ‘지식 탐험가’다. 다수의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메타버스의 시대’, ‘NFT의 시대’,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 등이 있으며 현재 메타버스 전문 뉴스 미디어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 메타리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