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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인터뷰에 와주신 기자님만 66명이에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감사하죠. 제가 감사 일기에 거창한 걸 잘 안 쓰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거창한 일이 많네요. (웃음)"
다수의 기자들이 함께한 라운드 인터뷰 현장, 중앙에 앉은 김우빈이 말했다. 김우빈의 인터뷰에서 아마 가장 많이 나온 단어를 꼽으라면 "감사"가 아닐까. 시리즈 '택배기사'의 넷플릭스 TOP 10 비영어권 시리즈 1위 소식이 전해진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김우빈은 "감사"를 이야기했다. -
- ▲ 영상 : 허준영 영상기자,popkorns@chosun.com
아마도 그 모습은 '택배기사' 속 그가 맡은 캐릭터 5-8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택배기사'는 대기 오염으로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2071년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산소를 독점한 천명그룹의 택배기사가 전해준 산소로 살아간다. 그래서 계급이 생겼다. 가장 중심에 있는 코어부터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난민 등급까지. 김우빈이 맡은 5-8은 가장 밑바닥인 난민 등급에서 택배기사로 발탁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택배기사'의 연출을 맡은 조의석 감독은 5-8에 "세상의 모든 멋짐을 다 넣어주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가장 멋있었던 부분은 그의 생각이 아닐까요? 더 많은 사람이 같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자기 몸을 바쳐서 도전할 수 있다는 자체도 멋지고요. 제가 멋짐을 의도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5-8이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이유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만든 전사들이 좀 있는데요. 5-8은 난민의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이미 산소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고요.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기억부터 부모님은 안 계셨고요, 사람들은 저를 '김정도'라고 불렀지만, 부모에게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라 애정도 없이 살았어요. 방금 전까지 동료, 친구였던 사람들은 식량과 산소 앞에서 적이 되고 남이 되어 싸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 혼자 살아남았어야 했어요. 그러면서 자신을 지키려면 '나를 드러내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자기 감정을 더 숨기게 돼요. 이런 식의 5-8의 전사들은 제 나름대로 쌓아가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5-8의 액션은 그의 생각을 닮아있었다.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는 미숙했고, 거칠었다. 하지만 성장한 후에는 빠르고, 힘 있고, 완벽해졌다. 김우빈이 의도한 바였다. 연습했고, 과거와 현재의 5-8 액션에 차이를 주고 싶었다. 그는 "현재에는 액션할 때 호흡도 거칠게 하지 않아요. 거의 숨소리도 안 내는 반면, 과거에는 좀 날 것 같은 느낌이 있죠. 유연하지 않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도록 감정 위주의 액션을 보여주려고 했고요. 그 부분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의석 감독은 '마스터' 이후 재회한 김우빈이 "더 깊어졌다"라고 말했다. '택배기사'에서 김우빈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려낸 5-8의 감정선을 통해서였다. 사실 감정선을 그려내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산소가 없는 세상에서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쓴 채로 감정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우빈은 마스크 때문에 무언가를 보태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지만, 내가 진짜 느끼고 있다면 눈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특별히 눈에 더 힘을 주거나 초점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어요. 5-8의 상황, 그대로를 바라보려고 했어요. 택배기사 선발전 결승을 난민들에게 생중계하는 장소에서 벌어진 일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정말 많은 감정이 공존했기 때문에 충분히 느끼려고 했습니다." -
원래도 사람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한 김우빈이었다. '우리들의 블루스' 현장에서는 함께하는 동료, 선배 배우들에게 핫팩을 나눠줘서 '핫팩 요정'으로 불렸다고 알려지기까지 했다. '택배기사' 현장에서 그는 예전과 달리 많은 후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가 "너무 빛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사월' 역의 강유석을 비롯해 이이담, 이순원, 허형규, 배명진, 유인혁, 장미관, 유혁재, 양정두, 한상길, 조지안까지 '블랙 나이트' 팀원으로 함께한 배우들을 챙겼다. 핫팩 대신 지갑을 열었다는 김우빈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배우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그들의 SNS 주소를 세심하게 적어놓았다. 그러니 '블랙 나이트' 팀원이 궁금하면, 해당 게시물을 확인하면 된다. 김우빈의 평소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같이 많은 시간 촬영한 배우들이 '블랙 나이트' 팀원들이었어요. 10명 중 4명은 이미 친분이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얼마나 빛나는 배우인지 알고 있어요. 정말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인데, 분량이 적어서 많은 분이 기억을 못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분명히 '택배기사'를 보시면서 '저 배우는 누굴까?'라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생길 거로 생각했어요. 그때, 제 게시물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알릴 방법이 많지 않으니까, 조금의 힌트를 드렸습니다." (웃음) -
김우빈은 지난 2017년 비인두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약 2년의 세월이 지난 후인 2019년, 완치 판정을 받고 '청룡영화상' 시상식의 시상자로 나서며 복귀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영화 '외계+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시리즈 '택배기사'까지 쉼 없이 활동을 이어왔다.
"하고 싶은 작품들을 제안 받았고요. 좋은 작품이 그때그때마다 타이밍이 맞았어요. 저도 몰랐는데 제 체력이 따라가 주더라고요. 제가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마다할 이유가 없죠. '택배기사'까지 끝내고, 지금은 작품을 안 하며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지금 휴식기를 가지면서 차기작 검토하고 있습니다. 저도 우려하지 않은 건 아닌데요. 병원에서도 예전보다 몸이 더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
몸이 건강해진데는, 더욱 단단해진 마음의 영향이 크다. 20대에 데뷔한 이후부터 쓰기 시작한 '감사 일기'에 조금 더 소소한 이야기가 담기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예전에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제가 가진 능력보다 많은 분들이 감사하게 더 큰 일을 맡겨주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서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요즘에는 (모바일) 앱이 잘 되어있어서 거기에 쓰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거창한 것들을 많이 썼거든요. 캐스팅됐거나, 광고 계약을 맺거나. 그런데 요즘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놓치게 되는 것들을 써요. 예를 들면 오늘의 첫 번째 감사 일기는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햇살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해가 쨍쨍하면 컨디션이 좋거든요. 주로 매일 쓰는 것들이 하루 세 끼 다 챙겨 먹었던 것. 마음에 불편한 게 딱히 없던 하루였던 것. 이런 것들인 것 같아요." -
인터뷰 중인 김우빈 앞에는 텀블러가 있었다. 카페에서 진행되는 인터뷰인 만큼, 보통은 카페 일회용 컵이 있곤 하는데 심지어 넷플릭스가 써진 텀블러를 앞에 둔 김우빈에게 그 이유를 묻게 됐다.
"'택배기사' 촬영할 때는 부끄럽게도 5-8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환경을 생각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창한 것보다 '일회용품 한 번 쓸 거, 줄이자'라는 생각을 하고 안쓰던 걸 꺼내서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해봐야죠." (웃음)
"5-8은 난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림받게 된 인물이잖아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인물이거든요. 저도 그의 생각에 동의해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고,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에요. 많은 분들이 '택배기사'를 보시고, 우리는 진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더 행복해질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더 행복하게, 사랑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람의 소중함을 사랑으로 알게 된 김우빈이다. 사람에게 유한한 시간 동안, 사랑으로 채워가려는 그의 마음의 깊이는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멋짐으로 가득 채워진 '택배기사' 5-8을 더 빛나게 한 이유가 아닐까. 김우빈의 다음 행보에 기대감이 더해진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