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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they do things differently there.”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방금의 문구는 영국 소설가 L.P. 하틀리의 1953년 작 ‘중개자(The Go-Between)’의 첫 구절이다. 과거는 그 자체로 낯선 외국이다. 현대인의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영역들이 많고, 과거의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다른 유행을 향유하고, 다른 경로의 삶을 산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현대적인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오류를 쉽게 저지른다. 미래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반드시 과거가 된다. 미래의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묘사할까? 그리고 과거인인 우리는, 미래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2500년 전 고대 그리스를 주목한다. 훗날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가 그곳에 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임은 물론이고, 서구의 종교와 지적 전통의 시원(始原)이 모두 그와 그의 제자인 플라톤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던가? 필자는 그의 견고한 위상에 흠집이라도 내듯,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모든 사상 체계는 플라톤의 기록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어떠한 저술 활동도 하지 않았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라는 매체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소크라테스 개인의 견해가 아니었다. 당대에 널리 통용되던 생각이었다. 현대인들의 생각만큼, 책이라는 매체가 권위를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더더욱 책에 의존해서는 안 되었다. 학문은 사고와 암기,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지, 불완전한 문자를 통해 유통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들이 텍스트에 의존하게 되어,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현대인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메타버스와 생성 AI를 둘러싼 많은 염려와 비판들이 있다. 누군가는 메타버스의 아름다움에 중독되어 현실을 등한시할까 걱정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생성 AI에 과의존해 사고력이 저하될까 두려워한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발생한 법적 공백과 문제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강화한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책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염려와 비판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수많은 생산적 논의가 탄생할 것이고, 그 또한 인류 발전에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다양한 윤리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하고, 적절한 규제와 개념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또, 그것이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종종 ‘너무나 당연하게 메타버스에서의 삶을 향유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공지능 캐릭터와 가족이 되는 미래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들 또한 지난 세대의 논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껍게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소크라테스가 되지는 말자.
[서승완 대표] 서승완은 유메타랩 대표이자 전국 대학 메타버스 연합회의 회장이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전공인 철학과 메타버스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수의 대학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인스타로 보는 동양고전’ 등이 있으며 최근 메타버스 전문 뉴스 미디어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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