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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복순(전도연)은 15살 딸 재영(김시아)의 엄마다. 그리고 청부살인업계의 최고 위치의 회사 MK.ENT 소속 최고의 킬러다. 킬러들의 세계에도 룰이 있다.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을 것, 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회사가 허가한 작품은 반드시 트라이할 것. 이 세가지 룰을 만든 것이 MK.ENT를 만든 차민규(설경구)다. 업계 최고의 회사에서 늘 A급 작품만 맡는 길복순은 한희성(구교환)을 비롯한 킬러들 사이에서 전설 같은 '선배'로 불린다. 하지만, 사춘기 딸 재영에게는 '에휴' 한숨 나오게 하는 '엄마'일 뿐이다.
재계약을 앞둔 시점, 길복순은 고민이 더해진다. "죽어가는 사람 눈동자에 내가 비칠 때가 있거든. 그런 날은 집에 가서 애랑 눈 맞추기도 겁이 나"라고 유일하게 속을 드러내는 한희성에게 말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던 그 시점, 길복순은 회사에서 허가한 한 작품을 맡는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인해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린다. 길복순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말이다. -
'길복순'은 그래픽 노블을 삼킨 듯, 강렬한 화면과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변성현 감독은 강렬한 감정, 화면, 흐름을 '대비'로 이끌어낸다. 키우는 자와 죽이는 자, 시작하는 자와 은퇴를 고민하는 자 등 스토리상의 대비는 화면 속 빛과 어둠, 붉은색과 푸른색, 느린 속도와 빠른 속도 등을 통해 더욱 강하게 뇌리에 남는다.
'키우는 자'와 '죽이는 자'를 오가는 길복순 역의 전도연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아름답다. 액션을 볼 때, 몸짓보다 그의 얼굴에 집중하게 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전도연이 외출할 때 입고 나가는 수트의 색부터 찰나의 순간 전도연이 짓는 웃음, 전도연이 멈칫하는 찰나의 순간 등 모든 장면에서 전도연은 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이끌고 간다. 덕분에 "애 때문에 일을 포기하기는 싫은거야"라고 말하는 평범한 감정부터 분노로 칼을 휘두르고, 몇번이나 죽임을 당하면서도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극한의 감정은 가까이 와닿는다. -
변성현 감독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 이어 '킹메이커'(2022) 그리고 '길복순'까지 세 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설경구는 놀랍게도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투명한 안경으로 자신을 가린 그는 길복순과의 섬세한 감정선을 이어간다. '길복순' 스토리 라인의 큰 구조 중 하나는 새것과 옛것, 선배와 후배 등 시간의 대립이 있는데, '길복순'의 첫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전도연 포함 세 명의 배우들은 '우리만이 가능한 낭만'에 대해, '우리만이 가능한 뜨거움'에 대해 몸소 보여준다. 변성현 감독은 해당 장면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온 배우들에 대한 '헌사'를 보내는 듯하다. 전작에서 전도연과 뜨겁게 그와 울고 웃었던 두 남자의 배치는 아마도 '전도연 사용법'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길복순'은 자극적인 색이다. 처음 온몸에 전신 문신을 하고 새하얀 속옷 한 장 입은 황정민의 등장부터, 칼에 찔려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전도연과 구교환의 정사 장면 등 자극적인 색채가 머리를 가득 채운다. 그러면서도 구교환이 만들어주는 빈틈이나, 최병모, 김기천, 장인섭 등 배우들이 빈틈없이 채워주는 연기력으로 완성도가 더해진다. 하지만, 만약 잘려 나간 머리를 보기 힘들다면, '길복순'을 견디긴 힘들지도 모른다. -
사실 '길복순'이라는 영화 제목만 봐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Kill Bill)'(2003)이 연상된다. '킬빌'의 배경도 킬러들의 세계였고, 제목에 '복순'이라는 이름처럼 '빌(Bill)'이라는 이름이 들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두 작품의 갈래는 전혀 다르게 갈라진다. '길복순'이라는 제목은 복수의 대상이 아닌, 그 세계에서 살아남은 존재 '복순'을 주체로 둔다. 'K-복순'은 당당하게 작품 그 자체가 된다.
한편,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되며 뜨거운 호평을 얻기도 했던 영화 '길복순'은 오는 3월 3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현재 방송 중인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전도연이 180도 다른 죽여주는 엄마로 '쌍타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상영시간 137분.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