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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립국어원은 ‘메타버스’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확장가상세계’ 또는 ‘가상융합세계’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가 관측되지만, 분명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두 용어는 모두 ‘가상세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는데, 아마 메타버스와 가상세계를 동치로 여기는 대중적 이해를 반영한 듯하다. 세간에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라며, 사실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설명―Meta에는 가상이라는 의미가 없음에도―마저 유통될 정도로, ‘메타버스=가상세계’라는 공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메타버스와 가상세계는 동치가 아니다. 오히려 개념적으로 접근하면, 가상세계는 메타버스의 하위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거나, 일상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것 모두가 메타버스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굳이 HMD 장비를 착용한다거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 구현된 세계(가상세계)만이 메타버스가 아니다.
무엇보다 필자는 ‘가상세계’라는 한국어 표현 자체가 문제임을 역설하고 싶다. 가상세계는 영어 ‘virtual world’의 역어인데, 이를 올바른 번역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자어 ‘가상(假想)’은 ‘거짓’이나 ‘상상’의 뉘앙스를 지닌 단어지만, 본래 virtual은 ‘완전히 같지 않지만, 대체로 같은’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다. 가령 <She is a virtual Head of State.>라는 문장이 있다면, 이는 <그녀는 국가의 실질적인 수반이다>라는 의미다. 즉,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있지 않을 뿐, 실질적인 통치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풀이된다. 결코 ‘가짜 통치자’나 ‘상상의 통치자’ 따위가 아닌 것이다.
처음 virtual을 ‘허구적 이미지’로 번역한 것은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서구의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한자어 번역[漢譯]’을 시도했고, ‘철학’, ‘과학’, ‘사회’, ‘국민’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대다수의 근대 어휘가 그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들의 주요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virtual의 번역이 ‘허상(虛像)’, ‘거짓의[假ノ]’ 등의 과정을 거쳐 ‘가상(假想)’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후, IBM 일본 지사가 virtual memory를 ‘가상 메모리’로 번역해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IT 분야에도 이 번역어가 확산되었다.
번역 자체의 적절성을 떠나, virtual을 가상으로, 그리고 virtual world를 가상세계로 묘사하게 되면, 마치 메타버스를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허구의 것’으로 이해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 속에 새롭게 구현된 세계를 상상이나 거짓의 영역에 가둬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곳에서도 현실과 유사한, 혹은 현실 이상으로 정교한 사회와 경제,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경희대학교 김상균 교수가 여러 경로에서 언급한 ‘디지털 현실’이라는 표현만큼, 메타버스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없다고 본다. 의미도 알맞을뿐더러 ‘확장가상세계’나 ‘가상융합세계’라는 단어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메타버스는 가상(假想)이 아닌, 디지털 속 새로운 현실(現實)이다. ‘메타버스는 가짜고, 현실만이 진짜’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진정한 메타버스 세계에 당도할 수 없다. 메타버스를 이해하고 싶고, 메타버스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면, ‘가상(假想)’의 틀을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서승완 대표] 서승완은 유메타랩 대표이자 전국 대학 메타버스 연합회의 회장이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전공인 철학과 메타버스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수의 대학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인스타로 보는 동양고전’ 등이 있으며 최근 메타버스 전문 미디어 플랫폼 ‘메타플래닛’,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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