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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AI 인기인데, 韓 스타트업은 ‘사면초가’

기사입력 2023.01.27 16:58
AI 스타트업 최대 위기, ‘투자금 중도 회수’와 ‘잦은 인력 이동’ 이유
“정부 지원은 궁극적 해결책 못 돼…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해야”
  • 올해 챗GPT로 AI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졌지만 국내 AI 스타트업은 최대 위기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 올해 챗GPT로 AI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졌지만 국내 AI 스타트업은 최대 위기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AI 스타트업의 현주소는 이른바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해묵은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조한 실적과 개발자들의 잦은 이직,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등의 악재가 이어지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기업이 적잖다.

    AI 스타트업의 첫 번째 위기 요인은 투자 위축이다. 세계적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줄었다. 금융감독원의 25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중 신규 설립된 기관 전용 사모펀드 약정액은 2조606억 원으로 2021년 같은 기간 신규 약정액(15조3039억 원) 대비 87% 줄었다.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연기금, 금융회사 등 국내외 기관투자자만 돈을 맡길 수 있는 펀드다. 지난해 들어 신규 약정액이 급감한 것은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며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투자심리가 악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기관투자자들은 위험관리 강화에 나섰고,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등이 크게 줄었다. 

    투자심리 감축은 AI 스타트업에 치명타로 돌아왔다. 아직 AI 스타트업 중 자생력을 가진 기업은 적다. 투자를 통해 연구개발(R&D)을 하고 있거나 서비스 상용화 후 이제 막 매출을 올리는 단계다. 당연히 적자 폭도 크다. 일례로 지난해 3분기 기준 신테카바이오는 29억 원, 뷰노는 46억 원, 루닛은 172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제품 판매로 인해 매출 성장은 다소 이뤄지고 있지만, 연구개발(R&D)비와 인건비 등 지출이 많아서다. 하지만 투자심리 위축으로 투자가 줄면서 기업의 지갑 사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AI를 주요 사업으로 내세운 스타트업들은 시리즈A와 B에서는 높은 기대를 모았지만, C로 가면서부터 사업이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며 “처음에 AI라고 하면 블루오션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불확실성이 커 투자를 꺼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리즈A는 시장 진입 직전 서비스 출신 이전 단계를, B는 시장 진입 후 안정화 단계를 뜻한다. 시리즈C는 시장 점유율 확장과 성장 가속화 단계를 의미한다.

    언어 데이터 분석을 주요 사업으로 내세운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챗GPT로 AI 기반 언어모델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AI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도 커졌다”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기술 고도화에 대한 부담과 경제 불황으로 인한 투자 위축 두 가지 위험을 모두 안게 됐다”고 토로했다.

    ◇잦은 인력 이동은 기업의 ‘빨간불’

    AI 기업은 성장 정체 이유로 인력 문제를 꼽는다. 1~2년 사이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개발자가 이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회사에 입사한 지 2년 된 홍보담당자가 “벌써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 됐다”는 말을 할 정도다. 황용국 블루바이저시스템즈 대표는 “이직이 너무 많아 회사를 AI 사관학교로 부르고 있다”며 “회사에서 실력을 키운 개발자가 더 큰 규모의 회사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공개한  ‘2021 인공지능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AI 기업은 최대 애로사항으로 인력부족을 꼽았다. /SPRI 인공지능 산업 실태조사
    ▲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공개한 ‘2021 인공지능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AI 기업은 최대 애로사항으로 인력부족을 꼽았다. /SPRI 인공지능 산업 실태조사

    직원들의 잦은 이직은 사업 성과와도 연계된다. 프로젝트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업무 속도가 줄거나 프로젝트가 아예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교육 분야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교원그룹은 최근 AI 문제 생성 등의 기술을 AI 교육 스타트업 뤼이드와 진행하려다가 담당자의 잦은 변경으로 취소했다. 뤼이드는 토익 교육 플랫폼 ‘산타(구 산타토익)’ 공급사다. 2021년 글로벌 스타트업 조사업체 CB인사이트로부터 ‘글로벌 100대 AI 스타트업’에 선정된 후 글로벌 투자사들로부터 약 3000억 원의 누적 투자를 받았다. 기업가치는 1조 원에 근접했다. 이러한 기업조차 개발자의 잦은 이직으로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이다.

    AI 인력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관계자는 “AI 인력의 이직률이 높은 것은 그만큼 개발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인재는 대기업으로, 대기업 인재는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지난해 4월 공개한 ‘2021 인공지능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AI 부족 인력은 3726명이었다. AI 개발자 직무에서 부족한 인력이 2885명으로 가장 많았고, 데이터 가공·처리 종사자(291명), AI 프로젝트 관리자(214명), AI 데이터 분석가(160명)가 그 뒤를 이었다.

    ◇투자금 중도 회수, 스타트업 옥죈다

    투자 위축과 잦은 인력 이동을 넘어 실질적으로 AI 스타트업을 옥죄는 것은 ‘중도 투자금 회수’다. 창업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데도 이익이 나지 않거나 해당 미션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창업자에게 투자금 상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상법에 따르면 상환권 행사는 회사에 상환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당 가능 이익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계약 시 ‘특별상환권 조항’을 넣어 회사에 이익이 없거나 미션 달성을 못하는 경우 상환하는 책임을 추가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 AI 기업은 투자사의 중도 투자금 상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AI 기업은 투자사의 중도 투자금 상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AI 플랫폼 기업 대표에 따르면, 투자계약서에 1년 안에 얼마만큼의 사용자 수 달성을 미션으로 해놓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그는 “투자가 기업 성장의 발판이 되지만, 이와 반대로 족쇄가 되고 있다”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우 그동안 지출된 인건비와 R&D 비용 등을 감당할 수 없어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의 경우 투자사의 환수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투자금은 ‘상환전환우선주’로 회수된다. 상환전환우선주는 금전으로 상환할 수 있고 보통주로도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를 뜻한다. 스타트업의 경우 상장을 하는 경우가 적어 보통 상장사는 금전으로 상환하는 상환전환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투자하는데, 이 방식이 스타트업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투자사는 스타트업이 상장을 해야 주식을 팔아 금액을 회수할 수 있는데, 스타트업 대표가 일부로 상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상환전환우선주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투자사도 손실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이 방식이 스타트업을 옭아매는 갑질이 되어서는 안 되고, 투자사와 스타트업이 대등한 관계에서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해야”

    국내 AI 스타트업의 위기에 정부는 ‘전 국민 AI 일상화’, ‘AI 인재양성’ 등의 정책 등을 마련하며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6일 개최된 ‘제2차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데이터정책위)’에서 ‘전 국민의 AI 일상화’ 프로젝트를 올해 시작한다고 밝혔다. 독거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돌봄 등 민생현안에 AI서비스를 적용. AI 소비 시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한 총리는 “데이터산업의 핵심인 AI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며 “공공·산업분야 대형수요창출, AI기업 스케일업, AI 기술초격차 등 10대 프로젝트를 역점 추진해 2027년까지 세계 3대 AI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AI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 외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 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AI 스타트업의 경우 당장 내일의 생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투자사 대표는 “AI 기업의 경우 기술 고도화도 필요하지만 시장 수요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대기업처럼 재정적으로 안정된 기업이 아닌 이상 맹목적인 기술 개발이 아닌 수익이 되는 기술을 먼저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한 기업 사례로 ‘셀바스AI’를 꼽았다. 셀바스AI는 2019년 재무 불안정을 이유로 코스닥 상장폐지 위기까지 갔지만, 2021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이후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B2B(기업간 거래) 시장에 초점을 맞춘 음성인식, 음성합성 기술의 판매가 늘어나면서 매출을 견인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셀바스AI는 음성 관련 기술을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삼성생명, 두산중공업, 네이버,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KB국민은행, 우리은행, IBK 기업은행 등 굵직한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AI 질환 발병위험도 예측 솔루션 ‘셀비 체크업’은 삼성생명, MG손해보험, 하나생명, DB생명 등 보험사와 용인세브란스병원, 김해복음병원 등 병원, 서울 강남구, 서초구 등 지자체에 공급 중이다. 

    투자사 관계자는 “셀바스AI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장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기술을 선점함으로써 AI 상장기업 중 최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꾸준히 적자를 기록했던 딥노이드도 의료 분야에서 산업, 교육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며 유의미한 매출을 내고 있다”면서 “이처럼 안 되는 시장을 고집하기보단, 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공급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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