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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수렁 속에서 꽃피운 박소담의 긍정력

기사입력 2023.01.2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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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CJ ENM 제공
    으레 힘든 시간을 거치면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박소담은 그 말을 몸소 겪었다. 젊은 나이에 암 수술을 받았고, 회복까지 앞을 알 수 없는 시간을 달리고 있다. 박소담에게 영화 '유령'은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회복 후 처음으로 대중과 만나는 작품인 데다 촬영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10년 차 배우 박소담은 프로페셔널 마인드로 모든 것을 해냈다.

    영화 '유령'은 1933년 경성, 항일조직이 조선총독부에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는 용의자들이 외딴 호텔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다. 극 중 박소담은 총독부 정무총감 직속 비서이자 도발적인 야심가 '유리코'로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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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CJ ENM 제공
    이해영 감독에게 러브콜이 왔다. 이해영 감독은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첫 주연을 맡은 박소담에게 현장의 많은 것을 알려준 선생이었다. 박소담은 그런 이 감독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감독님한테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그냥 안부 전화겠지 했는데, 감독님께서 '너가 미친 텐션을 한 번 보여주면 너무 재밌을 것 같다'면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 저한테 연락주신 거 맞죠'하고 되물었고,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재밌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저 역시도 그 미친 텐션이 너무 기대가 됐고, 어떤 캐릭터가 어떤 에너지를 뿜어낼지 정말 기대되고 설렜어요."

    "유리코 역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대본이 워낙 디테일했고, 저희가 애드리브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거든요. 숨은 감정이나, 어떻게 보이면 좋겠는지 잘 모르겠는 때는 감독님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여쭤봤어요. 그러면 감독님이 자세하게 다 설명해 주시거든요. 제가 촬영하는 내내 힘들었던 건 스스로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지, 다른 건 전혀 어려움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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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CJ ENM 제공
    유리코는 상당히 까탈스러운 인물이다. 정무총감 직속 비서 자리에 오른 그는 당대 조선인 여성으로서는 최고직에 오른 셈이었다. 연예인보다 화려한 의상에 늘 하이힐을 신는 유리코는 '갑질'의 여왕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스파이로 의심받고 호텔에 갇히면서 거친 액션까지 소화, 다채로운 매력을 안겨줬다. 박소담 역시 캐릭터에 매료됐지만 쉽지 않은 현장이었다. 박소담은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유리코를 완성했다.

    "'특송'에서는 전문 교육을 받은 인물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훈련받은 액션을 해야 했어요. 일단은 이렇게 총을 들고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 총을 든 채로 걷고 뛰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총무게가 4kg 정도 돼서 드는 것만 해도 힘들었어요. 가까이서 찍는 신에서는 (가볍게 만든 게) 티가 날까 봐 7kg 정도 되는 총을 들고 연기해야 했어요. 기초 체력이 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일들이었어요."

    "유리코는 많은 흐름을 끌고 가는 인물이에요. 제가 그 에너지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제 몫을 다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촬영이 끝나면 혼자서 매일매일 울고 (마음에) 땅굴을 파고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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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번아웃인 줄로만 알았는데, '유령' 촬영을 마치고 찾은 병원에서는 뜻밖의 결과를 받았다. 갑상선암이었다. 임파선까지 전이돼 있었고 목에서 혹을 열 개나 떼냈다. 무사히 수술을 마쳤지만, 목소리를 되찾는데 반년이나 걸렸다. 박소담은 "호르몬 난조 때문에 오늘도 피부가 뒤집어졌다"며, 걱정하는 이들에게 미소를 건넸다.

    "촬영하는 내내 제가 몸이 아픈 줄은 몰랐어요. 그냥 번아웃이 온 거라고만 생각했죠. 그날그날 연기를 하고 현장에 나가는 게 두려웠어요.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그게 정신적인 문제라 생각했어요."

    "(암 부위를) 열고 보니까 임파선, 그다음이 폐인데, 조금만 늦었으면 저도 항암을 해야 했을 거예요. 목소리를 찾으려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요. 저도 약은 5년 이상 매일매일 먹어야 해요. 무엇보다 제 패턴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완치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호르몬 수치가 왔다 갔다 해서 그걸 약으로 조절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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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박소담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빛났다. 건강검진 후 결과가 나오는 그 며칠 사이, 후시녹음을 하고 작품을 끝마칠 수 있었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고 말한 박소담이다.

    "정말 다행인 게 제가 검진을 하고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도중에 유리코 후시(녹음)가 잡혔어요. 저는 수술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목소리 신경을 잃을 뻔했거든요. 딱 그 시기에 맞춰 유리코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었어요."

    데뷔 후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박소담은 이제라도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제가 살아오면서 지난 2년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너 잘 아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도 그 정도로 아팠었기 때문에 스스로 락이 걸렸던 것 같아요. 살아가다가 한 번쯤 무너질 거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 빈도가 잦아질 거라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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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CJ ENM 제공
    다시 달릴 준비를 하던 박소담에게 필요한 건 에너지 충전이었다. 박소담은 난생처음으로 홀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돌아보니 여태껏 혼자 뭘 해본 적이 없었다며 이제서라도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박소담은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찾았다.

    "작품 마치면 여행도 다녀오고 바람도 쐬고 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저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위해서만 달려갔지, '사람 박소담'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유령' 홍보 전에 34일간 혼자 유럽 여행을 다녀왔어요.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스위스, 런던, 아이슬란드 가서 오로라도 보고 왔어요. 혼자 고프로도 가지고 가고 목에 거치대 껴서 많이 찍었는데 아직 정리를 못 하고 있어요. '유령' 홍보 끝나는 대로 '우당탕탕 박소담'이라고 영상을 만들어서 올릴까 해요.(웃음)"

    "제가 원래 멍때리는 걸 못하는데 의도치 않게 (투병하면서) 멍때리는 시간을 가졌어요. 저는 제가 친구들을 만나면 충전이 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알게 됐죠. 나 가만히 있는 거 좋아하는구나.(웃음) 제 MBTI가 ENFJ인데 다시 검사하면 I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야 지금 제게 필요한 게 뭔지 알게 됐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충전되는 것도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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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CJ ENM 제공
    박소담의 투병 소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퍼졌다. 남미에서는 ''기생충' 제시카가 암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고, 박소담은 유럽 여행에서 만난 이들마다 안부를 물어줬다고 했다. 그는 이 일로 너무 많은 분께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다며 되려 미안해했다.

    벌써 연기 생활 10년차다. 박소담은 남은 인생을 배우로 살기 위해 다시 달린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어요. 제가 올해 10주년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순재 선생님, 신구 선생님 하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스러워요. 저도 스스로 돌아보면서, 내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면서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여러분을 오래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웃는 모습 많이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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