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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 맺힌‘ 송혜교, 다른 얼굴이 되다...‘더 글로리’

기사입력 2022.12.28.15:11
  • '더 글로리' 문동은(송혜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더 글로리' 문동은(송혜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고등학생이 된 동은(정지소)은 하루하루가 괴롭다. 딱히 이유가 없는데, 연진(신예은)과 그 일당들은 매일 동은을 '재미로' 괴롭힌다. 고데기로 살을 지지는 것부터 억지로 키스하는 등 동은에게 삶은 지옥이다. 경찰도, 선생님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내 말을 들어준 양호 선생님은 바로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 내가 죽어야 끝날 싸움 같다. 죽으려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내가 죽어도 그들은 부유한 부모님 아래서 잘 태어나, 앞으로도 고통 같은 건 모르는 채 잘 살아갈 것 같다. '세상은 왜 이럴까?' 안되겠다. 문동은은 자신의 모든 생을 건 복수를 결심한다.

    연진(신예은)은 고등학교 때 좀 놀았다. 이렇게 잘 나게 태어나서 필요한 것 없이 자라다보니, 재미로 '친구'도 좀 괴롭히기도 했다. 장난이었다. 성인이 된 후, 연진(임지연)은 기상캐스터라는 남들이 좋아할 만한 적당한 직업을 갖고, 부유한 남편 하도영(정성일)을 만나, 딸아이 한 명 낳고, 잘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최혜정(차주영), 손명오(김건우)와도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내 딸의 담임 선생님으로 문동은(송혜교)이 왔다.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얘가 왜?’라는 생각이 이어진다. 그런데, 꺼림칙한 일들이 이어진다. 주여정(이도현)과 강현남(염혜란)은 문동은을 만나, 그의 복수를 돕는다. 문동은의 등장으로 연진과 그 일당들의 흉흉한 날들이 시작됐다.

  • ▲ 영상 : 조선일보 일본어판 허준영 영상기자, popkorns@chosun.com

    ‘더 글로리’는 ‘한(恨)‘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한국형 복수극이다. ‘한’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학교 폭력으로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품고 극야의 시간을 견딘 동은은 ‘한’ 그 자체다. 송혜교는 전작에서 ‘한’을 그려본 적 없다. ‘가을동화’부터 ‘태양의 후예’ 등의 작품에서 그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왔고, 따뜻한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런 송혜교는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에 한 번도 송혜교에게 ‘한’의 표정이 있는 줄 몰랐다.

    ‘더 글로리’를 보다 보면, 몇몇 장면에서 송혜교의 다른 얼굴이 가슴 깊이 남는다. 재회한 연진(임지연)을 향해 환호하며 손뼉을 치거나, 갑자기 얼굴 사이의 거리를 좁힌 뒤 나지막이 건네는 대사나, 눈물을 머금은 듯한 걸음걸이에는 동은에 대한 송혜교의 애착이 담겨있다. 굳이 얼굴에 점을 찍지 않아도, 염색 공장에서 일을 하며 검정고시를 봐서 사범대에 가기까지 단단한 표정은 동은의 변화가, 송혜교의 변화가 시청자들에게까지 와닿기 충분하다.

  • '더 글로리' 어린 문동은(정지소)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더 글로리' 어린 문동은(정지소)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한을 담아낸 만큼, 한국형 복수극이기에 더욱 몰입해서 다가가는 지점도 있다. 빌런들의 관계 속에는 치정, 욕망, 질투, 불륜 등이 있고, 이는 각각의 캐릭터의 약점이자 동은이 파고드는 지점이 된다. 김은숙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멜로를 내려놓고(여전히 송혜교와 이도현이 만날 때는 벚꽃과 낙엽이 떨어지지만), 가장 잘 아는 한국적 복수극을 써 내려갔다. 김은숙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글로벌 3대 복수극으로 ‘존윅, 테이큰, 그리고 더 글로리’를 말했지만, 사실 ‘더 글로리’ 속에는 ‘존윅’, ‘테이큰’보다 더 큰 감정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를 집필하게 된 이유로 고등학교 2학년인 자신의 딸 이야기를 꺼냈다. “엄만 내가 죽도록 때리는 게 가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는게 가슴 아플 것 같아?’라는 질문은 그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학교폭력 이라는 것은, 더 나아가 어떤 이유의 폭력이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더 글로리’는 방향을 잃지않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명제다. 극야의 시간을 지나 복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송혜교를 응원하는 마음도 휘청거림이 없는 이유다.

  • '더 글로리' 손명오(김건우)와 문동은(송혜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더 글로리' 손명오(김건우)와 문동은(송혜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는 총 두 시즌으로 제작됐다. 약 50분가량의 8화를 담은 첫 번째 시즌은 오는 12월 30일 공개된다. 해당 리뷰는 그중 6화까지 본 후, 쓰는 내용이다. 그리고 제작발표회에서 안길호 김독은 두 번째 시즌이 오는 2023년 3월경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리즈의 1화만 보겠다고 생각하고 켜서, 내리 6편을 다 본 것은 굉장히 오랜만에 해 본 경험이다. 그렇기에 30일 공개될 7, 8화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진다.

    다시금 김은숙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김은숙 작가는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글을 읽었다. 그는 “공통점이 현실적인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했다. 세속적인 사람이라 '진심 어린 사과로 얻어지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했다. '얻는 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폭력의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 명예, 영광 같은 걸 잃게 되지 않나. 그 사과를 받아야 원점이 되는 거구나 싶었다. 그 피해자분들의 원점을 응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용서는 없어. 그래서 영광도 없겠지만“이라는 예고편에도 나온 동은의 말들이 스쳐 지나간다. 김은숙 작가의 말맛은 ‘더 글로리’를 더 몰입하게 하는 이유다. 오는 12월 30일 공개.

  • '더 글로리' 주여정(이도현)과 문동은(송혜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더 글로리' 주여정(이도현)과 문동은(송혜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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