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을 지었던 순간이 있다. 배인혁을 처음 만났던 1년전 영상 인터뷰에서 였다. '배인혁 잘생김, 유죄. 형량은?'이라는 장난스러운 질문에 그는 "사형"을 외쳤다. 상상도 못한 형량이었다. 자신의 잘생김이 유죄라고 해도, 사형이라니. 그리고 최근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배인혁은 자신을 '빛'이라고 표현했다. SBS 드라마 '치얼업'의 종영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존감"을 첫 질문으로 하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배인혁은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고 답했다. 그렇기에 더 질문하고, 더 고민했다.
'치얼업'에서 배인혁은 정우 역을 맡았다. 정우는 응원단장이고 후배들에게 '선배'라고 불리지만, 어찌보면 너무나 평범한 인물이다. 꿈도 사랑도 그냥 정우에게는 스쳐지나가는 일인 것만 같다. 그런데, 도해이(한지현)를 만나면서, 정우도 달라진다. 사랑은 그렇게 사람을 빛나게 하고, 청춘의 시간은 추억이 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배인혁은 정우를 맡아, 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가 담아낸 표현은 직접적인 외침이 아니었다. 응원단을 말하며 살짝 올리는 입꼬리, 시선의 끝에 머물러둔 해이의 모습, 되뇌이게 되는 엄마의 말들에 있었다.
월·화를 사로잡았던 배인혁의 모습이 '정우 선배'라면, 토·일을 사로잡았던 것은 '세자'의 모습이었다. tvN 월화드라마 '슈룹'에서 배인혁은 화령(김혜수)의 첫째아들이자, 믿음직한 형, 나라의 근본인 '세자' 역을 맡았다. 안타깝게 숨지게 되지만, 화령을 '엄마'로서 빛났게 했고, 시청자들이 초반 '슈룹'의 흐름에 몰입하게 했다. 첫 사극에서 배인혁은 그렇게 존재감을 깊게 각인 시켰다. 믿음직한 '세자 선배'라는 애칭까지 얻으면서다. -
- ▲ 영상 : 유튜브 채널 '픽콘'
Q. '치얼업'을 보다 보면, 정우는 '어떻게 단장이 됐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다. 어떻게 정우에게 다가갔나.
"대본에 서사들이 나와있지 않아서 찾아가는게 어려웠다. 정우가 표현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정우는 제 나이 또래인데 '이렇게까지 감정 컨트롤이 된다고?'라는 의문을 가질 때도 있었다.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침묵하는 정우가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어떻게 컨트롤하지 질문을 하며 다가갔다. 제가 이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시청자 분들께 납득을 시켜야하니까 그 지점에서 고민을 많이했다."
Q. 그런 지점에서 스스로 만들어간 정우의 서사가 있나.
"정우가 단장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정우는 유민선배가 사라지고, 안 좋아진 응원단 분위기 속에서 '누가 할래?'라고 서로에게 단장 자리를 떠밀던 상황에서 단장이 돼 책임을 지고 간 것 같다. 그런데 그 부분보다 힘들었던 건, 도해이(한지현)와 진선호(김현진)에 대한 질투였다. 정우가 열심히 뮤지컬 티켓을 구했는데, 해이의 전화 한 통으로 공연에 못 가게 되지 않나. 그 와중에 걱정이 되어 해이의 집 앞까지 갔는데, 선호와 같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과연 20대 초반 남자가 그 순간 당장 뛰어가지 않았을까. 저 스스로에게 의문이 됐다." -
Q.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길 때, 어떻게 답을 찾아갔나.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거의 매 장면 이야기하고 촬영에 임했다. 칼에 찔리거나 그런 장면 보다, 일상적인 장면을 앞두고 대화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감독님께서 라이브한 것을 추구하셔서, 배우들의 라이브한 모습이 담기도록 많은 부분을 말씀해주셨다. 해이의 집으로 들어가는 선호를 본 장면에서는 정우가 순간적인 감정보다 해이에 대한 마음이 앞설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저는 어떤 면에서 정우가 머리로 해이를 이해한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시청자들이 '띠용'하고 놀라시지 않도록, 미묘한 변화를 주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감정 표현이 많지 않아서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데, 표현으로라도 한 포인트씩 주고 싶었다. 다행히 시청자 분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다."
Q. 정우와 해이의 한강 데이트 장면이 라이브함의 끝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 배인혁과 한지현의 모습이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추측 이상으로 애드리브가 많았을 거다. 두 사람이 사귀기로 하고 난 후에는 정말 많다. 한강 장면은 실제로 해이와 사귀기로 하고 첫 데이트 장면이었다. 대본의 대사 상황이 끝나고도 감독님께서 '컷'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저희끼리 상황에 맞게 애드리브를 했다. 대놓고 한 게 처음이니까 실제로도 부끄러워했던 부분도 있었다. 감독님께서 그런 지점을 잘 담아주신 것 같다."
Q. '치얼업'을 하면서 완벽한 응원단의 안무도 소화했고, 단장으로 관중 앞 무대에 섰으며, 심지어 OST까지 불렀다. 배우로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저희가 춤추던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까, 촬영 전 전체 연습은 지난 2월 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저는 단장을 맏아, 앞에서 혼자 춰야하는 부분이 있어서 '왜 오수재인가'를 촬영하면서 지난 해 11월 말, 12월부터 혼자 선생님과 1:1 수업을 진행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돌출무대에서 혼자 춤을 출 때, 정말 긴장이 많이 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무대에 서고 싶어하고, 희열을 느낀다고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4~500명 정도되는 관객 앞에 섰을 때 희열을 느꼈다. 배우로서 겪지 못할 새로운 경험이었다." -
Q. 단장은 관객을 사로잡아야 하지 않나. 정우가 무대에서 좀 더 커보였던 비결이 있나.
"실제 연세대학교 응원단 단장님이 주신 꿀팁이 있다. 자주 만났다. '치얼업'이 촬영한 노천극장 밑에 실제 연세대학교 응원단 연습 공간이 있다. 그래서 대기 시간에 원포인트 레슨을 받기도 했다. 안무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것과 실제 하시는 분이 알려주는 것이 다르다 보니까, 많이 조율하면서 했다."
Q. 정우를 표현한 것 중 분량상으로는 적었지만, 크게 다가온 장면이 엄마와의 서사였다. 해이에게 고백할 때, '살면서 그렇게 좋은 걸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지 않나.
"엄마와의 장면은 정우에게 한 번씩 나오는 장면인데, 큰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한 마디, 한 마디 뱉어주는 말씀이 크게 다가왔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옥상에서 정우와 엄마가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엄마가 '그걸 하는데, 빛이나더라'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정말 벅차올랐다. 엄마 앞에서는 정우가 그 나이로, 어린 애처럼 보이고 싶었다."
Q. 정우 엄마의 말씀처럼, 배인혁이 살면서 만난 행운이 있을까.
"(한참 망설이다) 저희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게 제 삶의 행운 같다. 엄마와 아빠가 일찍 결혼하셨다. 스물 셋이라는 나이에 결혼하셔서 저를 낳으셨다. '그 어린 나이에 아빠는 엄마를 책임지고 저를 낳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상하더라. 엄마랑 아빠는 그 나이에 친구들이랑 술 먹고 늦게들어가고 이런 걸 다 못하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 제가 많이 놀러다니시라고 한다. 주말마다 두 분이 캠핑도 다니신다. 그게 좋다. 그런 면에서 저는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것이 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Q. 자연스럽게 '슈룹' 속 세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도 참 믿음직한 아들일 것 같다.
"사실 저도 표현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일찍 자취를 시작해서 떨어져서 살기도 했고, 저랑 남동생밖에 없기도 하다. 사실 말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못했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에는 바빠도 최대한 많이 전화를 하려고 한다. 최근에 전주에 갔을 때, 엄마랑 둘이 찻집 데이트도 했다. 엄마가 쌍화탕을 드시더라. (웃음) 믿음직한 아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떨어져있으니까, 불안하게 해드렸던 것 같다."
Q. '슈룹' 속 김혜수의 인스타그램에 한동안 배인혁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엄마 화령, 김혜수와 호흡하며 배운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성장한 지점이 있을까.
"제가 '왜 오수재인가'를 할 때부터 정말 대단한 선배들과 함께 호흡한 것 같다. '왜 오수재인가'를 할 때, 허준호 선배님과 겹치는 장면이 많았다. 아빠로 나오셨지만, 부자케미가 아니고 대립하고 싸우는 장면이 많았다. 허준호 선배님은 그냥 서있기만해도 100을 뿜어내는 분이시다. 그 상황에서 제가 뭐라고 해도 소란한 아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많이 조언을 구했다. 그때 많이 배웠다. 허준호 선배님과 하는 장면이 멱살잡혀 끌려가는 장면 등 굉장히 무거웠던 지점들이다. 그때의 배움이 '치얼업'과 '슈룹'에 나온 것 같다."
"김혜수 선배님은 제가 배우를 꿈꾸기 전부터 존경했던 분이셨다. 같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데, 대사를 나누고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정말 뜻깊고, 큰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슈룹' 현장 가는 것이 긴장됐다. '떨려서 폐를 끼치면 어떻게 하나, 방해가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했다. 그 마음을 오히려 김혜수 선배님께서 풀어주셨다. '해보고 싶은 것 있으면 다 해봐라'라고, '잘 하고 있다'라고 응원해주셨고, 용기가 됐다. 제가 아픈 역할이라 누워있으면, 입에 과자도 넣어주셨다. 제가 누워있다가 일어나 다른 옷을 입게되는 날이면 '너무 예쁘다'라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저 뿐만 아니라, 같이 하는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그러면서도 일할 때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그 모습에 저도 집중하고, 긴장하고,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한 것 같다. 저에게 정말 '슈룹' 그 자체셨다." -
Q. 2022년 배우로서 엄청난 걸음을 뗀 것 같다. 스스로 성장을 실감하나.
"성장했는지는 지금 당장 느끼진 못하는 것 같다. 수학 공식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다음 작품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성장한 몫이 있을 거라 믿는다."
Q. 토일·월화의 남자로 배우 배인혁을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치얼업'이 결방이 많이 됐다. 흐름이 끊기는 상황 속에서도 많이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영화 '동감', 드라마 '슈룹' 등의 작품 속에서 저라는 사람을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올해는 욕심으로, 깡으로 보낸 한 해였다면, 오는 2023년에는 좀 더 똑똑하게 보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드리고 싶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