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의 재발견'이라 하고 싶다. 데뷔 때부터 '대세' 수식어를 입은 김고은이 영화 '영웅'을 통해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에 걸맞게 뛰어난 가창력과 흡인력 있는 감정신으로 시대적 아픔을 가진 인물을 절절하게 소화했다.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 김고은은 조선의 마지막 궁녀이자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 역을 맡았다.

김고은에게 '영웅'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뮤지컬 영화를 경험해 볼 기회였고, 또 연기와 더불어 가창력의 부담까지 준 도전작이었다. 김고은은 작품의 원작인 뮤지컬 '영웅'을 보고 난 후 울림을 받았고, 합류를 결정했다.

"처음에 '영웅' 제의를 받았을 때는 제 모습이 좀 상상이 잘 안됐다. 그래서 뮤지컬 '영웅'을 직접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야 감독님이 이걸 그리시려고 하셨구나 싶었고, 제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어디서 소문을 들으셔서 제의를 하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영웅'을 봤을 때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과 벅차오름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느끼는 그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일단은 제가 일제강점기 시대물 연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평소 가창력에 자신이 있었던 김고은이다. 대학 시절에도 뮤지컬 수업을 좋아했고, 자신감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소화해 본 현장은 전혀 달랐다. 현장 라이브를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지만, 한번에 만족스러운 신이 나올 수는 없었다. 김고은은 그 스트레스를 원동력으로 삼았다.

"현장 라이브는 제가 촬영 전부터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런데 처음 라이브를 해보니까 이게 정말 쉬운 작업이 아니더라. 아마 제 첫 라이브를 듣고 감독님도 같은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그때부터 둘이 의지를 다지면서 '이 어려운 작업을 잘 해나가보자'하고 결의를 나눴다."

"라이브를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감정 표현도 잘 하고 싶고, 그걸 잘 담아서 노래로 표현하고 싶은데, 이걸 동시에 하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노하우가 없으니까 내 마음처럼 잘 안되고,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연습실을 빌려서 시간이 될 때마다 연습을 했다. 이런 스트레스가 더 연습에 몰두하게 한 것 같다."

'영웅'에서 감정을 담은 열창으로 '안중근' 역의 배우 정성화로부터 뮤지컬 러브콜을 받기도 한 김고은이다. 실제 뮤지컬에도 도전할 마음이 있는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워낙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 외국에 나오는 뮤지컬 영화는 개봉하면 다 바로바로 봤었고,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다. 우리나라에도 잘 만든 뮤지컬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당시에 작품을 제안받았고, 요새는 국내에서도 뮤지컬 영화가 나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반가운 마음이다."

"뮤지컬 도전은 절대 안 된다. 제 굴욕담이 있다. 제가 '하데스타운'이라는 뮤지컬 넘버를 굉장히 좋아해서, '영웅' 촬영 끝나고 1년쯤 지났을 때, 국내 초연을 한다고 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때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잊고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거다. 그런데 오디션장에서 정말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벌벌 떨면서 노래를 불렀다.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는데도 정말 떨었다. 뒷걸음질 치며 나왔다. 다시 한번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웃음)"

극 중 '설희'는 다른 독립투사들과 대면하는 신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인 역들 사이에서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고독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같은 처지인 독립군 역의 정성화, 박진주, 조재윤 등 배우들과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 있었나 보다. 김고은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던 현장이 그저 감사했다고 말했다.

"정성화 선배님은 칭찬이 많은 분이신 것 같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쉽게 도전을 할 수 없는 분야인 것 같다. 너무나 많은 훈련과 자기 절제와 그런 것들이 굉장히 필요한데, 선배님은 그런 걸 다 해내시더라. 선배님이 저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

"저희 영웅팀 케미는 정말 조화로웠다. 진주 언니의 공이 정말 컸던 것 같다. 저희 끼리고 '진주 없으면 어떻게 했겠나'하는 얘기를 자주 했다. 언니는 정말 센스가 있고 모두의 것을 다 받아주는 사람이다. 저는 진주 언니의 그런 점이 정말 좋았다. 이 팀에 속할 수 있어서 되게 행복했고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김고은은 올 한 해만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2', '작은 아씨들'로 호평을 이끌고, 연말엔 영화 '영웅'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마쳤다. 올 한 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그저 행복했다고 말한 김고은은 미소와 함께 밝은 에너지를 전했다.

"힘든 순간은 생각이 잘 안 날 정도로 웃으면서 찍은 것 같다. '영웅' 하면 딱 '행복' 이렇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돌이켜 생각해야 '아 그때 조금 힘들었지'라고 떠올릴 정도로 행복한 현장이었고, 제게는 한 텀의 힐링을 준 작품이었다."

"2022년은 정말 감사한 한 해로 기억이 될 것 같다. 데뷔 10년 차가 됐다는 점도 있지만 '청룡영화상'에서 데뷔할 때 신인상을 받았었는데, 10년 후에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OTT였지만 주연상을 받아서 개인적으로 정말 의미가 있었다. 한 해에 두 편의 드라마가 모두 사랑을 받은 것도 그렇고, 시기적으로 '영웅'까지 세 작품을 선보여드릴 수 있게 돼서 정말 좋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