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오은영 박사 “아이와 노는 게 재미없다? 놀이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기사입력 2022.08.10 16:03
  • 레고코리아(LEGO Korea)가 레고 창립 90주년을 기념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와 함께한 ‘오은영 놀이를 말하다’ 캠페인 영상을 공개했다. 레고그룹이 지난 90년간 거듭해온 놀이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바탕으로 좋은 놀이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해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와 손을 맞잡았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번 영상에서 오은영 박사는 ‘놀이’에 대해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고정관념과 오해들에 대해 설명하고 전문성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나씩 풀어 나가는 시간을 가진다. 오은영 박사는 “놀이는 배움의 반대말이 아니라 아이들 발달에 무엇보다 중요한 자극”이라고 강조했다.

    캠페인 영상에 다 담지 못한 좋은 놀이에 대한 오은영 박사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봤다.

  • Q. 국민 멘토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레고코리아와 협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놀이는 아이들의 기본 권리이자 성장기 배움의 원동력이다. 아이들은 놀이로 관계를 배우고 학습도 한다. 발달에 꼭 필요한 다양한 자극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며 놀이 환경이 지나치게 TV와 스마트폰에 치우치게 됐다. 레고는 장난감으로도 유명하지만 사명부터 ‘잘 놀다(Play Well)’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듯 ‘좋은 놀이’를 연구하고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힘쓰고 있는 기업이다. ‘좋은 놀이’에 대한 재조명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그간 직접 상담하면서 느꼈던 점들과 레고그룹의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함께 놀이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협업하게 됐다.

    Q. “놀이는 배움의 반대말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이 메시지를 통해 전하고자 한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는 아직 놀이와 공부를 반대로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다. 놀이는 아이들이 성장에 가장 중요한 기능들을 배우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을 때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이후 수많은 자극을 통해 기능을 획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발달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귀하다고 계속 안고 다니면 나중에 ‘걸음’이라는 운동기능 발달이 늦어진다.

    아이가 상상대로 자유롭게 즐기는 놀이는 신체뿐 아니라 인지, 정서, 창의성, 사회성 등 다방면의 자극을 제공하는 훌륭한 배움터다. 실제로 레고그룹이 지난 2020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8개국 부모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놀이 연구에서 조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94%가 ‘놀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답했다. 레고 놀이를 할 때에도 아이들은 브릭을 직접 끼우고 빼며 만져보고, 어떤 때에는 무너뜨려보고 떨어뜨려보고 역할놀이도 하는 등 다양한 신체적, 정서적 자극을 경험한다. 이처럼 놀이 자체를 중요한 배움의 과정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Q. 많은 부모와 상담을 하면서 이번 레고 캠페인을 통해 꼭 알리고자 한 내용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레고그룹의 연구에서 안타까운 결과가 있다. 조사에 참여한 한국 어린이들의 놀이 부족 인식이 매우 높게 나타난 것이다. 10명 중 9명(90%)은 ‘더 많은 놀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부모가 너무 바빠서 함께 놀아주지 못한다(89%)’, ‘가족과 함께 더 자주 놀고 싶다(98%)’ 문항에서 전 세계 1위를 차지해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 시간을 부족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부모들이 놀이를 덜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한국 부모들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아이의 미래에 공부(24%)보다 놀이(50%)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다음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고민된다’는 문항에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은 58%가 동의하며 놀이 방법에 대한 고민을 호소한 것이다.

    동시에 자녀와 놀이 시 부모의 멘토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인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이 레고 놀이를 할 때 부모의 서포트와 멘토링이 중요하다’라는 문항에서 한국 부모의 경우 ‘매우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글로벌 평균 대비 10%p 이상 차이를 보이며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놀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놀이 현실의 괴리는 상담 현장에서도 자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부모님들이 참 많다. “박사님, 생각보다 아이와 노는 게 재미가 없어요. 그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안 가는지 정말 지루합니다.” 물론 놀이는 의무적이라도 함께 해주는 것이 좋지만, 의무적으로만 놀이를 생각하고 정답이 있는 행위로 보게 되면 부모도 사람이기에 몸이 힘들거나 할 일이 많을 때는 뒤로 미루게 된다. 이런 생각은 아이도 부모도 놀이를 지루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이번 캠페인이 이러한 놀이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해들을 풀고 함께 ‘좋은 놀이’에 대해 진정성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팬데믹과 같은 위기 속에서 놀이는 왜 더욱 중요할까?

    놀이는 아이들 발달에도 중요하지만 가족간 건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순기능을 발휘한다. 레고그룹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위기 속에서 많은 가족들이 놀이를 통해 ‘아이와 유대를 강화(92%)’하고 ‘가족의 즐거움(91%)과 건강한 감정(88%)을 유지’, ‘아이의 불안을 해소(87%)’하는 등 강력한 놀이의 힘을 경험했다.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성장기에 필요한 긍정적인 자극과 질적으로 좋은 상호작용이 줄어든 부분을 놀이를 통해 채워줘야 아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균형 잡힌 성장을 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아이들의 정서적, 신체적 회복을 위해서도 놀이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 Q. 아이와 상호작용을 어렵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놀이에 대한 생각을 먼저 바꿔야 한다. 놀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즐겁고 행복한 소통을 하는 시간이다. 장난감을 사주는 것으로 끝난다면 놀이가 아니다. 비싼 장난감을 사주지 않더라도 그저 아이 옆에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해주고 아이의 정서적인 표현을 반응해주는 것 만으로도 질적으로 충분히 좋은 놀이가 된다. 아이는 부모와 아주 깊고 친밀한 정서적인 상호작용을 원한다.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하고 이야기를 해야 부모와 놀았다고 생각한다.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가, 혹은 내가 레고를 좋아한다면 레고 놀이를 함께 해보는 것이다. 단, 이때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며 아이가 놀이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설명서를 따라 가더라도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면서 아이의 생각과 감정에 반응해주고, 아예 설명서를 치우고 아이의 상상에 따라 조립을 해보는 것도 좋은 상호작용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정리하면 놀이는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놀이에 정답은 없기 때문에 완벽한 놀이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를 때는 “뭘 할까? 어떻게 하면 돼?” 하고 아이에게 물어야 한다. 아이들 내면에는 놀라운 성장의 힘과 회복력이 있다. 상호작용을 통해 부모가 그 힘을 찾도록 도와주고 노력하면 아이들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놀이는 소통이라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Q. 평소에도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이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려면 실수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기보다 아이들이 내면의 회복력을 키울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자기 주도성을 길러줘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어린이들의 창의적인 자신감은 낮은 편이다. 레고그룹 연구 결과 전 세계 평균 94%의 어린이가 스스로 창의적이라고 답한 데 비해 한국은 89%로 가장 낮았다. 한국 어린이 2명 중 1명(55%)은 남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싫어할까 걱정된다고 답했으며, 남들의 평가가 신경 쓰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가 망설여진다고 답한 어린이도 10명 중 4명(42%)이나 됐다. 어린 시절의 낮은 자신감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성인들의 창의적 자신감은 유년기 80%, 청소년기 78%, 성년 이후 66%로 전 세계 평균(각각 88%, 86%, 79%)에 비해 가파르게 낮아졌다. 창의적 자신감 부족으로 꿈을 포기했다는 사람도 10명 중 6명(61%)이나 됐다.

    이처럼 창의적 자신감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레고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상담을 해보면 많은 부모님들이 놀이 방법이 정해져 있는 놀이, 순서가 있는 놀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보다 좋은 놀이는 아이가 주도적으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놀이가 진짜 질이 좋은 놀이다. 아이가 레고 브릭으로 무언가를 멋지게 만든다. 이렇게 애써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었던 것을 허물어보고 마음대로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율성과 자기 주도성, 그리고 유연한 사고를 발달시킬 수 있다.

    이때 “잘 만들어 놓고 왜 허물었어”나 “이러면 방이 어지럽혀지고 부품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하지 마시고 “이번엔 무엇을 만들거니?” “더 멋진 작품이 탄생하겠다” 등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설명서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괜찮다. 놀이 중에 공부를 가르치듯이 부모가 자주 개입을 하게 되면 놀이가 아니라 공부가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놀아도 놀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놀고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인다. 놀이는 아이가 주도해야 한다. 놀이의 목적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Q. 레고로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기본 2X4 레고 브릭 6개만 있어도 9억 가지 이상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레고는 아이들이 자율성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놀잇감이다. 설명서대로 조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레고로 무궁무진한 놀이가 가능해진다. 높이 쌓기, 역할놀이, 심지어 레고로 도미노를 하거나 통에 넣어 흔들며 리듬을 만들어 보는 등 어떤 놀이를 선택할지, 무엇을 만들지 아이의 선택을 따라가면 된다. 또 레고는 아이 혼자 집중력을 발휘하기에도 좋은 장난감이지만, 온 가족이 관심사를 공유하고 협동하며 성취감을 경험하기에도 아주 좋은 매개가 된다. 놀이에 설명서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 가족만의 레고 놀이’ 시간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여전히 놀이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아이와의 놀이에 있어 골든 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집에 이미 있는 레고 모형을 아이와 함께 허물거나 작은 변형을 해보는 것, 또는 레고 조립 설명서를 치우는 데서 시작해도 된다. 작은 시작이더라도 과정이 쌓이면 변화는 반드시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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