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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만이 답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 천우희가 영화 '앵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노력의 과정에서 내내 생각한 말이다. '앵커'는 아나운서로 입사해 '9시 뉴스'를 진행하게 된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에게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세라는 방송국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그 자리를 후배에게 빼앗길 수 있는 위태로운 자리에 선 인물이다.
엄마 소정(이혜영)은 "우리 딸이 최고지"라면서도 세라의 '9시 뉴스'를 매일 모니터하며 작은 실수까지도 지적한다. 그런 세라는 어느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제보 전화를 받게된다. '특종'을 잡을 수도 있는 순간. 세라는 제보자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현장은 세라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한다. -
천우희는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 '앵커'를 이끌고 간다. 변화하는 세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해야 했고, 관객들을 끝까지 이끌고 가야 했다. "부담이 안 된 건 아니지만, 그 부담감이 굉장히 큰 동력이 될 때도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천우희는 심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 속에서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그려 나갔다. 일직선으로 흐르는 작품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작품에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역으로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라고 시나리오 안에서 소스와 단서를 찾아 나갔거든요. 그런데 '앵커'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나눴어요. 그리고 그 그래프를 정확하게 집어 가며 접근했어요."
"공감보다 전달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감정적인 분출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밀한 연기나 어떤 장치적인 것보다는 직선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매 장면 극적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좀 더 '과감하게 연기해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
심리 묘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천우희는 세라 역을 맡아 매일 4시간씩 발성과 딕션 연습을 했다. "신경을 정말 많이 썼고요. 준비도 정말 많이 했고요.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오긴 하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그다.
"앵커들의 몸에 밴 생활 습관, 제스쳐를 배워보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건 아나운서 과정을 그대로 다 배웠어요. 6개월 동안 기본적인 걸 배우는데요. 저는 단기 속성으로 배웠죠. 기본적인 자세부터 스트레이트, 리포트 등 갈래마다 다른 표현을 배웠어요. 그냥 모든 과정은 연습만이 답이라는 생각으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제가 전작에서 사회초년생의 마음이나, 저 스스로에게 대입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아나운서분들 관찰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방송사마다 시간대별로 원하는 앵커의 컨셉과 이미지가 다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고, 대입할 수 있는 건 대입하면서 만들어갔어요."
노력으로 인해 몸에 익은 제스쳐나 습관도 있었다. 천우희는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다리미로 핀 것처럼 있어라'라고요. 표정도, 자세도요.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해서, 최대한 모든 것이 말갛게 지워졌다는 생각으로 있었어요. 그게 '연기적으로 의식해서 표현했다'라기보다, 이미지만 떠올려도 자세나 표정이 몸에 익은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
극 중 배우 이혜영과 모녀 호흡을 선보였다. 헤어스타일까지 닮아있는 두 사람은 '앵커' 실제 모녀 같은 닮은 꼴 모습을 보여 준다. 천우희는 "현장에서 설정하지는 않았어요"라며 "이혜영 선생님도 엄마이기도 하고, 저도 딸이잖아요. 엄마와 딸의 모습으로 연기한 것 같아요"라며 촬영 현장을 회상했다.
"제가 (이혜영) 선배님을 너무 좋아해요. 선배님 얼굴 자체가 연기 같아요. 뭘 하던지 안 하던지 얼굴에 감정과 서사가 담겨있어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꼭 뵙고 싶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 선생님을 카메라로 담는데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어떤 특정 장면이 아니라, 그냥 '그림이다' 감탄하면서 선생님을 바라본 것 같아요."
'앵커'를 연출한 정지연 감독은 "성공한 여성의 이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9시 뉴스'를 진행하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러면서도 불안과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세라의 모습이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천우희의 모습과 겹쳐져 보이는 것은 지나친 상상만은 아니다. -
"제가 어떤 역을 맡는다고 해서 개인적인 이입을 하지는 않아요. 어찌 보면 이해를 하는 것 같아요. 이입과 이해는 좀 다른 거거든요. 저도 불안하거나 강박을 느끼는 지점이 있죠.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직업에 대해 연차가 쌓일수록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가 때문에 강박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아요. 저도 성격적으로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요.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저를 좀 더 다그치는 편이거든요. 연기할 때 그런 강박감이 있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저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천우희는 영화 '앵커'에 이어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까지 두 편의 작품으로 4·5월 관객과 만난다. 천우희는 "두 작품의 촬영 시기가 다르지만, 몇 주 사이로 개봉하게 됐어요"라며 웃음 지었다.
지난 2014년 천우희는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눈물의 수상소감을 남겨 울림을 주었다. 당시 그는 "포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라고 했었다. 약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잘 걸어가고 있을까.
"사실 샛길로 새도 잘 걸어가는 거잖아요. 제가 잘 쌓아진 길을 한 발 한 발 가기보다는요. 포기하지 않고 꽃길도 걷고, 가시밭길도 걷고, 그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가는 게 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입장에서 어쨌든 저는 한 발 한 발 가고 있고, 목표지점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나름 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