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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보다 ‘의사면허 취소법’이 앞서야

기사입력 2021.07.08 09:31
  • 최근 인천 정형외과의 불법 대리 수술과 수술실에서의 마취 환자 성추행 사건 등이 잇달아 적발되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환자단체를 비롯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측은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을 명확하게 입증하고, 대리 수술 등 불법 행위를 감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사단체를 비롯한 반대 측은 “의료진의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치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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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픽사베이

    현재 여론은 찬성 쪽으로 기울어진 듯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진행한 국민 의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3,959명 중 97.9%인 13,667명이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했다. 수년째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며, 의사단체의 자정 능력을 더는 믿기 어렵다는 여론이 높아진 탓이다.

    하지만 여론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만 쏠려있는 것은 아쉽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수술실 CCTV 설치 외에 변호사나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처럼 의사도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최대 5년간 면허가 취소되도록 한 ‘의사면허 취소법’도 상정되어 있다.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한 일부 자격 미달 의료진의 불법 행위를 걸러내기 위해서는 ‘수술실 CCTV 설치’도 필요하겠지만, 일명 ‘불사조 면허’로 불리는 의사면허의 특권 해제가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의 의료법으로는 수술실 CCTV 설치로 위법 행위를 적발하더라도, 실효성 없는 징계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의사협회의 강경 대응 때문인지, 국민의 높은 관심에 맞춰 수술실 CCTV 설치에 앞장서고 있는 정치인들도 국회 법사위에서 4개월째 방치되고 있는 ‘의사면허 취소법’에는 유독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목욕실, 화장실, 발한실, 탈의실 등 개인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의 CCTV 설치를 금지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 제2항과 ‘의료인의 의료행위는 의료법이나 다른 법령에 따로 규정된 경우 외에는 누구든지 간섭하지 못한다’는 의료법 제12조 제1항과 충돌의 여지가 있어 해당 법령 개정 전까지는 당장 시행하기도 어렵다. 또한, 높아진 여론만으로 밀어붙인 섣부른 입법화는 제2의 민식이법이 되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충분한 대책과 고민을 통해 단계적인 도입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 해당 법안의 목적이 일부 소수의 의료진으로 인해 어그러진 의료계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지금은 지난 20년간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의사단체의 반발로 번번이 개정에 실패한 의사 면허 관리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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