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신분인 택배기사와 쿠팡 소속직원 쿠팡맨, 유사업무 수행하지만, 처우 차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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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초로 ‘택배 없는 날’이 지정됐다.오는 8월 15일은 택배 배달이 오지 않는 날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최근 다음 달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하고 택배기사를 위한 공식적인 휴일 제공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일 쏟아지는 택배 물량에 쉴 틈 없었던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인정해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택배 휴무일을 지정했다.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며 택배 물량은 전보다 1.5배에서 2배 더 증가했고,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택배기사의 강도 높은 업무가 지속되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이 단 하루라도 택배기사를 위한 휴식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결과다.한국통합물류협회가 택배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임에 따라 다음달 15일에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택배, 로젠택배 등 주요 택배업체가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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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5일(토)은 광복절, 16일은 일요일이어서 택배기사들은 최장 사흘 연속 휴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단, 17일 임시공휴일의 경우 택배업체마다 휴무일 적용 기준이 다르다.업계 사상 최초의 휴가로 이후 물량 대란 예상택배 없는 날로 택배기사들의 평소 근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택배기사는 회사에 직접 고용된 고용자가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에 따로 휴가를 낼 수 없으며, 주 6일 근무로 일요일과 공휴일에만 쉴 수 있다. 그래서 택배기사는 단 하루의 공식적인 휴가 없이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만약 불가피한 사정으로 휴가를 가야 한다면 주변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비용을 지불해가며 대체배송 기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한편에서는 택배 없는 날로 공식적인 첫 휴가를 받았지만, 휴무일 동안 배송물량이 지연되며 휴가 후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느라 오히려 택배기사에게 무리가 되어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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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가운데 이커머스 기업 쿠팡의 배송직원인 ‘쿠팡맨’은 화물 배송 등 택배기사와 유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처우는 큰 차이를 보인다.택배 없는 날 無관심 쿠팡맨…이미 주 5일제 근무택배기사 대부분을 본인 차량으로 배송하는 개인사업자라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쿠팡맨은 쿠팡이 직접 고용한 회사 직원으로 주 5일 근무나 4대 보험 적용 등 직장인과 동일한 근무 조건이 적용되고 있다.또한, 통상적으로 일 근무시간이 13~15시간으로 알려진 택배기사와 달리 쿠팡맨은 하루 약 10시간, 주 최대 50시간을 넘지 않고 일한다. 근무 일수 역시 택배기사는 주 6일, 쿠팡맨은 주 5일제 근무이다. 연차 사용에도 차이가 있다. 택배기사는 평일에 쉬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며 대타자를 구해야 하지만 쿠팡맨은 연간 15일까지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다.한편에서 쿠팡맨은 택배 없는 날에서 제외된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택배기사가 아닌 직장인으로 분류되는 쿠팡맨의 경우 주 5일 근무, 자유로운 연차 사용에 8월 17일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추가 1일 휴일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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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쿠팡맨이 다른 택배기사보다 단축된 업무 시간에 일하는 건 쿠팡만의 특화된 배송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쿠팡맨의 근무 환경이나 편의성,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배송 전에 고객에게 전달할 상품을 미리 정리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별도의 인력이 진행해 분류해놓은 상품을 차에 싣기만 하면 된다.가족까지 보장하는 단체 실손보험까지 가입자영업으로 택배를 하는 경우 배송할 제품을 미리 소분하는 작업에 평균 6시간이 소요되며 물량이 많이 몰리는 명절에는 9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하고, 배송 업무 자체도 힘든 일인데, 그 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아 힘든 점들이 많다.또한, 쿠팡은 쿠팡맨에게 배송 차량과 유류비 등을 전액 지원하고, 가족까지 적용되는 단체 실비보험 가입과 회사 보유 콘도 등 휴양시설 이용 등 각종 복리후생을 제공한다.쿠팡 관계자는 “쿠팡만의 배송 노하우와 역량을 쿠팡맨과 함께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그들을 위한 업무 환경 및 처우를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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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 배송은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지만, 노동자처럼 일하면서도 사실상 자영업자인 택배기사에게 쿠팡맨과 같은 주5일제 근무, 연차 사용은 꿈도 못 꿀 일”이라며, “택배 없는 날 지정 소식이 무척 반갑지만, 이벤트성 단기 휴가가 아닌 정기적인 휴식 보장이 절실하다”고 전했다.전국 택배기사 수는 약 4만 5천 명으로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택배 물량이 늘어나는 만큼 택배기사 수도 늘어날 것이다. 이에 택배노조는 위탁제로 운영되는 택배기사의 경우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 이찬란 기자 chanl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