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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인 ‘공소시효’는 그동안 숱한 논쟁을 불러왔다. 법의 허점을 노려 공소시효를 시간이 주는 면죄부로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탓이다. 최근 33년 만에 범인이 밝혀진 화성연쇄살인사건 역시 공소시효에 대한 논란을 가중시켰다. 공소시효가 만료된다고 해서 죄까지 만료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2012)’는 눈여겨볼 만하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범인이 세상에 나온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는 ‘공소시효 만료 후 자신이 저지른 연쇄 살인사건을 자서전으로 출간한 연쇄살인범’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에 미남형 외모와 수려한 말솜씨로 스타가 된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통해 ‘법으로 단죄할 수 없게 된 범인은 과연 무죄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2017년 일본에서 리메이크되어 개봉되기도 했다. 바로 영화 ‘22년 후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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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와 ‘22년 후의 고백’은 모두 공소시효가 끝난 후 살인 참회 자서전으로 스타가 된 연쇄살인범과 그를 어떻게든 잡아넣으려는 형사의 대결을 담고 있다. 하지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일본은 2010년 살인 등 12가지 강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기에, 리메이크작인 ‘22년 후의 고백' 일본 실정에 맞춘 각색이 불가피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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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성적으로만 따지자면 ‘22년 후의 고백’은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도 국내 관객 약 270만 명을 모으며 선방했지만, 일본 개봉 당시 2일 만에 23만 명을 동원한 영화 ‘22년 후의 고백’은 3주 연속 일본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누적 흥행 수익 24억 원 돌파 등 어마어마한 기록을 달성하며 한국 영화 리메이크 영화 중 최고 히트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한국과 일본에 온도 차가 크다. 한국 관객들의 평은 일본에서 대히트를 친 리메이크작보다 원작이 더 낫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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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인 ‘내가 살인범이다’는 불같은 성격의 형사 최형구(정재영)처럼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몰아간다. 스토리가 다소 허술하고, 다소 작위적인 설정과 짜 맞춘 티가 역력한 액션이 좀 아쉽긴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는 매우 흥미롭다. 또한, 영화는 법의 허점으로 처벌하지 못한 범인을 단죄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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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영화 ‘22년 후의 고백’은 주제와 상관없는 원작의 액션을 덜어냄으로써 훨씬 섬세하고 견고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원작에 없는 ‘살인 법칙’까지 덧붙이며 일본 영화의 색깔을 강조한 영화는 결말을 보고 난 후에 “아!”라는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한다. 문제는 좀처럼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형사 이토 히데아키(마키무라 코)처럼 매우 지루하다는 데 있다. 영화 전체를 장악한 강력한 지루함은 원작보다 훨씬 놀라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재미없다는 인상을 끝내 바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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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 있는 메시지는 같지만, 그 분위기는 전혀 다른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와 ‘22년 후의 고백’. 두 영화를 모두 본다면 같은 소재와 같은 스토리를 한국과 일본 감독이 어떻게 풀어냈는지 비교하는 재미를 얻을 수 있겠지만,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작품이니 취향에 따라 선택해 보기를 추천한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