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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작품이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경기가 난다”거나, “지금 봐도 오금이 저린다”는 평을 받는 영화 ‘여곡성(198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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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팔려 이경진 가문에 시집간 옥분은 첫날밤 신랑 명규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며 과부가 된다. 그리고 두 명의 손윗동서도 자신과 같이 첫날밤 과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경진 가문에는 원한을 품고 죽은 월아의 저주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시어머니 신씨는 과부가 된 옥분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옥분은 이를 거부한다. 얼마 후 옥분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신 씨는 옥분을 다정하게 대하며 곳간에만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하지만 옥분은 현몽한 명규에게 이끌려 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미치광이가 된 시아버지 이경진을 발견한다.
천운이었던지 이경진은 옥분에게 발견된 후 제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이런 안도도 잠시. 원귀를 달래기 위해 월아의 무덤을 찾아갔던 신씨가 살해당하고, 월아의 혼이 이경진 가문의 대를 끊기 위해 신씨로 둔갑해 돌아온다. 이후 집안에는 온갖 괴변이 속출하고, 동물과 사람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과연 옥분은 무사히 아이를 낳고,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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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곡성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전통 플롯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시대를 앞서는 파격적인 연출과 기법으로 극강의 공포를 선사한다.
배우가 실제 먹었다는 지렁이 국수 장면은 여곡성의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전통적인 귀신들린 연기는 물론 좀비와 흡혈귀까지 두루 섭렵하는 신씨는 표정만으로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며, 옥분의 가슴에 새겨진 만자(卍)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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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영화 ‘여곡성’이 개봉을 알리며, 많은 이의 기대를 모았다.
연기파 배우 서영희와 인기 아이돌 손나은을 캐스팅하며 화제를 낳은 영화는 오지지널 ‘여곡성’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공포감을 선사하겠다며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막상 공개된 영화에 많은 이가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야기의 흐름은 훨씬 자연스러워졌지만, 오리지널 영화에서 느꼈던 공포나 전율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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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곡성’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귀신의 날카로운 웃음소리만 남은 현대판 ‘여곡성’은 여러모로 아쉽다. 서영희의 나이를 고려해서인지 명규의 친모에서 계모로 변한 신씨는 그나마 영화를 하드캐리 한다며 호평을 받았지만, 원작 신씨가 워낙 강한 임팩트를 남긴 탓에 그리 빛이 나지 않는다.
이계인이 맡았던 머슴 떡쇠(이계인)의 부재도 아쉽다. 원작의 떡쇠는 약방의 감초처럼 극의 재미를 책임지지만, 떡쇠에 해당하는 리메이크판의 연두는 둘째 며느리의 한낱 욕정 상대로 전락해 아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인기 아이돌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가슴에 있던 옥분의 만자(卍) 무늬 흉터를 어깨 쪽으로 옮긴 것도 원작의 팬에게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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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더위를 씻어줄 공포 영화를 찾는다면, 솔직히 두 작품은 모두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원작 ‘여곡성’은 세월이 흐른 만큼 다소 어설프게 느껴질 수 있고, 리메이크판 '여곡성'은 공포의 힘 자체가 부족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장면에서 현대물 못지않은 공포와 전율을 전해주는 원작 ‘여곡성’은 한국형 공포 영화의 고전 체험이라는 의미에서라도 한 번쯤 볼만하다. 단, 명불허전 신씨의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공포 수준은 지금도 최상급이니 공포 영화를 잘 못 보거나, 심장 약한 분들은 자제하길 당부한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