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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5대 형벌 중 하나인 ‘유배(流配)’는 죄인을 집과 떨어진 먼 곳으로 보내 평생 살게 하는 형벌로 사형 다음의 중벌로 여겨졌다. 흔히 유배를 양반 관료 등의 정치범에게 내려진 형벌이라 생각하지만, 조정이 아닌 지방 관찰사 직권으로 선고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유배형은 평민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에게 폭넓게 내려졌다.
조선 시대에 남겨진 유배기록 중 가장 독특한 사례는 태종 시절 유배형을 받은 코끼리다. -
이 코끼리는 태종 12년(1412년) 친목 도모를 위해 일본 국왕이 선물한 것으로, 태종은 코끼리를 말과 목축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던 사복시에서 보살피도록 했다. 이후 사복시는 하루에 콩을 너덧 말씩 먹는 크고 이상한 생김새의 코끼리를 보러 온 구경꾼들로 북새통을 이루게 된다.
그해 12월 10일, 코끼리를 구경하러 온 관료가 코끼리에게 밟혀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코끼리에게 밟혀 죽은 사람은 공조전서를 지낸 ‘이우’라는 사람으로, 코끼리의 모습이 추하다며 비웃고 얼굴에 침을 뱉어 코끼리를 화나게 한 것이다.
코끼리 살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살인죄를 저지른 코끼리를 당장 죽여야 한다’는 주장과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면 살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고, 사건을 담당한 병조판서 유정현은 고심 끝에 코끼리에게 유배형을 내리게 되었다.
전라남도 보성의 장도로 유배된 코끼리는 먹을 것이 해초밖에 없는 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날로 수척해져 갔다. 코끼리를 불쌍히 여긴 전라도 관찰사는 ‘코끼리가 몹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보고를 올렸고, 태종은 코끼리를 다시 육지의 사복시로 옮겨오게 했다.사복시로 돌아온 코끼리는 이후 전라도로 옮겨져 건강을 회복하고 살도 쪘다. 하지만, 코끼리의 먹이를 한 곳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코끼리는 결국 경상도, 충청도 등 여러 지역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충남 공주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코끼리를 돌보던 하인이 코끼리 발에 차여 죽은 것이다. 하루에 쌀 2말, 콩 1말씩 먹어 치우는 코끼리가 골치였던 충청도 관찰사는 코끼리를 섬으로 유배하기를 요청했고, 이에 코끼리는 두 번째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유배된 코끼리에 대한 내용은 세종 3년(1421년) 코끼리를 불쌍히 여긴 세종대왕이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고 당부한 내용을 끝으로 더 찾아볼 수 없다.
- 김경희
- 김정아 tongpl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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