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5월 읽을만한 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기사입력 2016.05.01 02:00
윤석남, 한성옥 저 | 사계절출판사
  • 그렇잖아도 5월, 어머니의 다정함이 다정하게 물결인 양 바람인 양 가슴으로 스며드는 계절, 무대가 마련되고, 거기에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깃털보다 가벼워진 작가의 어머니 원정숙 여사. 답삭 안아 올리며 우니까 “얘야, 우지 마라, 그 많던 근심 걱정 다 내려놔서 그러니라.” 아이들 여럿 홀로 키워낸 그 어머니는 한 시절 모시적삼 구름처럼 차려입고 운동장을 성큼성큼 압도하던 눈부신 존재였다.

    외할머니는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요술쟁이이다. 손녀의 스웨터를 짤 때는 바늘보다 더 납작하고, 꿀 달라고 조르면 저 높은 시렁까지 키가 쑥 늘어난다. 사과를 딸 때는 저 하늘까지. 그 품은 호수보다 넓으리.

    터미널에서 만난 어느 어머니는 머리 위에 까마득히 짐을 올리고도 눈 가늘게 웃고 있다. 서울 사는 자식들 주려고 농약 한 방울 안 치고 기른 거란다. 길가에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머니는 쪼글쪼글 우중충하지만, 그 앞에 놓인 바구니엔 무지개가 담겨 있고, 주홍빛 감 하나 머리에 앉아 인생을 밝힌다. 국화꽃 한 송이 그러안고 자식 앞세운 슬픔을 삭이는 지인의 어머니는 죽음이야말로 일상이라고 무언으로 가르친다.

    결혼의 남루와 번잡에 가슴 베이며, 허공에 매달려 삼천 번도 더 두레박을 던져 보고 백만 번도 더 전쟁을 하며, 마흔 살에 비로소 자기 방을 찾은 윤석남은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싶어 그림을 그리게 되었노라 했다. 그리고 일흔여덟 지금까지 치열하게 여성, 여성을 화폭에 담고 있다.

    작가의 사유가 담긴 32점의 드로잉과 자전적 에세이가 어우러진 이 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60여 쪽의 얇은 책이지만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이 무대를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시회에서 보고 느꼈을 뿐 만져 보지는 못했던 액자 속의 어머니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기대기도 하고 쓸어 보기도 할 수 있으니, 종이책의 효용이 바로 이런 게 아닐는지.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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