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12월 읽을만한 책]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기사입력 2015.12.03 13:28
김재욱 저 | 왕의서재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추천한 ‘12월의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한다.
  • 진주알 같은 이슬 머금은 모란을/ 미인이 꺾어선 창 앞을 지나면서/ 웃음 머금고 정인더러 묻는다/ “꽃이 나아요? 내 얼굴이 나아요?”/ 낭군은 일부러 놀려주려고/“꽃가지가 더 나은데?”/ 미인은 꽃을 던져 버리고/ 밟아 짓뭉개면서/“꽃이 나보다 낫다면/ 오늘 밤엔 꽃이랑 주무세요!” -「꽃을 꺾어서(折花行)」전문

    이 작품은 고려를 대표하는 문장가의 한 사람인 이규보의 한시 「꽃을 꺾어서(折花行)」이다. 남성을 흠모하는 마음을 여성 특유의 질투심으로 풀어놓았다. 토라지며 돌아서는 여성의 톡 쏘는 듯한 매력이 모란보다 더한 향기를 뿜어낸다. 이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우선 시가 어렵지 않다는 데에 선뜻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런 재치 넘치는 사랑시가 쓰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시대를 초월한 시적 매력을 느낄 것이다. 이 시에서‘정인(情人)’은 젊은 연인 사이의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만일 ‘정인’과 ‘낭군’을 ‘그대’ 라는 말로 살짝 바꾼다면, 현대시로도 충분히 읽혀질 만하다. 어떠한가. 이미지도 한 편의 풍경화처럼 친근하지 않은가.

    이처럼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는 한시에 대한 난해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정겨움과 재미가 살아 있는 책이다. 또한 시를 둘러싼 편안한 해설이 함께 하고 있어 쉽게 읽힌다. 물론 거기에는 저자 김재욱의 직역에 가까운 번역도 한몫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한시를 읽어가면서 느끼는 행복 중의 하나는 옛 문인들과 함께 삶을 호흡하고 있다는 감정이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고, 우리들이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정다운 대화의 장이 펼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우리들의 가슴에 녹아든다. 50편의 한시가 이런 구성과 마력을 갖고 태어나서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시 50편을 사랑, 사람, 역사, 영물, 자연, 죽음, 친구 이렇게 일곱 가지 주제 하에 펼쳐 놓았기에, 다양한 주제를 벗하면서 읽어가다 보면, 우리들은 어느 새 한시에 마음을 베여 간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동양적 문화와 지혜가 그리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그 그리움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 추천자: 오석륜(시인, 인덕대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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