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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서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이가 있다면 아마 ‘광해군’이 아닐까 싶다.
광해군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형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대군의 사사를 묵인하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재위 기간 내내 피바람을 몰고 다닌 폭군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도주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전장을 누비며 나라를 지킨 영웅이자 대동법 시행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꾀했던 성군이기도 했다.
이런 양면성으로 인해 광해군은 어느 역사인물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광해군이 폐위된 후 보위에 오른 인조 집권 시기에 남겨진 그에 대한 기록이 공정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광해군은 가장 재평가가 필요한 역사 인물로 꼽히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해왔다. 특히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절묘하게 만든 ‘팩션사극’의 인기가 높아지며 광해군이 등장하는 작품은 더 많아지고 있다. -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팩션사극의 세계로 광해군을 끌어들인 대표적인 작품이다. “광해군 8년, 2월 28일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광해군 일지’에 기록되지 않은 15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이 기간에 광해군을 쏙 닮은 광대 하선이 보위에 앉았었고 이를 계기로 광해군이 진정한 개혁을 꿈꾸는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과감한 상상을 펼쳐놓는다.
지금도 역대 흥행 영화 10위 안에 드는 영화는 누적 관객수 천이백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에 성공했다. 광기 어린 광해와 광대 하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병헌의 연기는 영화의 압권이며, 곳곳에 있는 깨알 같은 에피소드는 영화의 재미를 높여준다. 그리고 제왕의 자격이라는 선 굵은 메시지와 감동까지 고루 안겨준 영화는 관객들을 만족하게 하며 호평을 받았다. -
동명의 소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영화와 동시에 기획된 소설이다. 엄밀히 말해 소설은 영화의 원작이라기보다는 이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다.
재미로만 따지면 소설보다는 영화가 한 수 위다. 하지만 소설은 ‘영화와 다른 결말’로 독자들의 구미를 당겼고, 영화보다 훨씬 탄탄한 구성력으로 독자에게 어필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심정과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준다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며, 영화 못지않게 술술 읽혀가는 맛도 좋다.
영화와 소설이 동시에 기획되어 세상에 나온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두 작품을 모두 본다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영화를 추천하겠다. 마무리가 좀 아쉽긴 하지만, 훨씬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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