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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웨이우얼족은 높은 코에 색깔 있는 눈,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 느낌을 주는 동시에 중동사람 같기도 하고 영화 대부에 나오는 이탈리안계 갱스터와 닮은 것 같기도 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원래부터 신장지역에 살았을까? 혼혈일까? 순수 혈통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웨이우얼족은 혼혈이다. 그들의 역사기록을 통해 이동경로와 살펴보자.
웨이우얼족의 선조가 사서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4세기 위서(魏書)에 ‘위앤허(袁紇)'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후 5~6세기에는 ‘웨이허(韋紇)’, 7~8세기에는 ‘훼이허(回紇)’, 788년~13세기에는 ‘훼이꾸(回鶻)’, 13세기 이후에는 ‘웨이우얼(畏兀兒)’, 민국(民國) 시기에는 ‘웨이우얼(威武爾)’이라고 하였다. 1934년에 ‘웨이우얼(維吾爾)’이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서에 등장하는 명칭은 모두 시대에 따라 원음을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상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고대에는 현재의 발음 ‘hui'와 ‘wei'를 혼용하였기 때문에 결국 발음상으로는 모두 같은 것이 된다. 글자를 어떻게 쓰던 웨이우얼의 뜻은 ‘단합', ‘단결'이다.
돌궐족은 552년 돌궐한국(突厥汗國)을 건립한 후 몽고초원의 각 부족을 통일하고 통치하였다. 583년 돌궐한국은 내부 권력 투쟁의 원인으로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었고, 당은 서돌궐과 연합하여 동돌궐을 멸망시켰다. 이 때 돌궐의 억압정책에 반항하던 당시 훼이허(回紇)족[현재의 웨이우얼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부족인 위앤허(袁紇) 혹은 웨이허(韋紇)의 후예]이 전쟁에 적극 참여하여 동돌궐이 멸망한 후 740년 회흘한국(回紇汗國)을 건립하고 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844년 내부 권력 투쟁과 자연재해, 그리고 북쪽의 샤쟈스[黠戛斯, 현재의 커얼커즈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샤쟈스(黠戛斯族)에 멸망한 회흘족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신장 동부[투루판(吐魯番) 일대]와 서부 파미르(巴米爾) 고원 일대에 정착하였다. 이 중 일부가 다시 서쪽으로 이동 현재의 터어키까지 이동하게 된다.
웨이우얼족의 역사와 이동경로를 볼 때 몽고 초원에서 이주한 몽골리안계와 신장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과의 혼혈로 오늘날과 같은 웨이우얼족이 탄생한 것이다. -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웨이우얼족의 전체 인구는 약 826만 명으로 신장(新疆) 전체 인구의 약 43%에 해당한다. 전체 웨이우얼(維吾爾)족 인구의 90%가 신장(新疆)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원래 웨이우얼족은 신장의 천산산맥 이남 지역의 오아시스에 집중 거주하고 있었으나 18세기 청나라는 러시아의 침입에 대비, 군대 증강과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둔전(屯田)책을 실시하고 농업에 능한 천산산맥 이남 지역의 일부 웨이우얼족을 천산산맥 북부의 이리(伊犁)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이외 4~5천 명 정도의 웨이우얼족이 호남성(湖南省)의 도원(桃原)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원말명초(元末明初)에 명나라 군대로 참여한 웨이우얼족이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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