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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허삼관’은 중국 대표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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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피를 파는 것은 목숨을 파는 것’이라 여겨지는 시절, 제목 그대로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모두 피를 팔기를 꺼리지만 허삼관의 고향에서만은 ‘피를 팔지 않으면 남자 구실도 못하는 놈’이라는 인식이 있던 덕분에 허삼관은 자신이 신체 건강한 남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피를 팔러 나서게 된다.
피를 판 대가로 받은 돈은 일반 농민들이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벌지 못하는 돈 35원. 처음 피를 판 돈을 밑천으로 허삼관은 ‘꽈배기 서시’라 불리던 허옥란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되고, 삶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목숨 같은 피를 팔아 가족들을 부양한다.
허삼관은 피를 팔기 전에 피의 양을 늘리기 위해 배가 아프고 이뿌리가 시큰해질 때까지 물을 마셔야한다는 방 씨와 근룡이의 말을 곧이들을 만큼 순박한 사람이다.
가장 아끼던 큰아들 일락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란 걸 알고 나서는 자신의 친아들인 이락과 삼락을 불러 나중에 일락의 친부인 하소용의 두 딸을 꼭 겁탈하라고 당부하고 허옥란에 대한 분풀이로 임분방과 외도를 하는 등 온갖 쩨쩨한 짓을 마다치 않지만, 그는 이내 일락을 포함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특히 허삼관이 보여주는 부정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피를 판 돈은 목숨을 판 것과 같으므로 남의 자식인 일락에겐 쓰고 싶지 않다던 허삼관은 훗날 폐병에 걸린 일락을 위해 피를 팔며 진짜 목숨을 건 여행을 이어나가는데, 혈연을 뛰어넘은 뜨거운 부정은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허삼관의 삶은 고단하고 파란만장하지만, 절대 암울하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작가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능청스럽게 껴안았기 때문이다. -
영화는 원작의 웃음과 감동을 그대로 담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원작의 매력을 오롯이 전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격변의 역사와 깊이 얽힌 중국인의 정서를 한국화하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겠지만, 2시간여의 상영 시간은 원작의 줄거리만을 따라가기만도 급급해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한 웃음이 넘쳐나는 원작과는 달리 다소 억지스러운 감동만을 남기려 한 영화의 마무리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국내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 중국 현대문학 작가 위화의 작품으로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의 작품에 절대 뒤지지 않는 명작이다. 영화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원작의 재미와 감동을 위해 시간을 한번 내보는 건 어떨까? 누가 읽더라도 절대 후회는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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