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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로 태어난 그르누이는 천재적인 후각을 갖고 태어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아무 냄새가 없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다. 불우한 환경 속에 모든 것을 냄새로 구분 짓고 냄새에 집착하며 자폐적 생활을 이어가던 그르누이는 우연히 향수 장인의 도제가 되어 향수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고,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르누이의 냄새에 대한 기준은 일반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그는 냄새를 하나하나 미세하게 쪼개어 맡으며 지상 최고의 향기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그가 선택한 최고의 향기는 바로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나는 체취로,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한 그르누이의 엽기적인 행보가 시작된다. -
소설의 부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살인자는 바로 그르누이다. 세상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그르누이는 일말의 죄책감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그에게 살인은 단지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향수를 위해 그르누이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찾아 무려 스물다섯 번의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
기괴한 모습으로 살해된 여인들이 속속 발견되는 도시는 극심한 공포에 빠져든다. 하지만 누구도 그르누이를 의심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르누이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냄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냄새’ 등 다양한 체취의 향수를 개발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향수를 이용해 사람들의 의식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된 그르누이는 마침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최고의 향수를 완성한다. 누구라도 숭배할 수 있게 만드는 지상 최고의 향수를 손에 쥔 그르누이. 그는 과연 자신을 외면한 세상을 무릎 꿇게 할 수 있을까?
냄새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독특한 발상의 소설 ‘향수’는 1985년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다.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냄새’라는 이색 소재를 탁월한 상상력과 위트로 조리한 이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고, 소설은 세계 최장기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기네스북에 등록되기도 했다. -
‘향수’가 영화로 제작된 것은 소설이 출간된 지 20여 년 만인 2007년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의 러브콜을 거절해오다 15년 만에야 영화 제작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총 6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는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영화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 걸친 대규모 로케이션과 5,200명의 엑스트라 동원 등 수많은 화제를 만들어냈다. 또, 유럽 최고의 무용수를 선발해 집단적 광기를 표현한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인 영상과 선정성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작의 명성만큼 영화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이목을 한몸에 받았지만, 소설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냄새’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원작의 섬세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2시간여의 시간은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재현된 그르누이의 살인은 소설보다 훨씬 잔인하고 충격적으로, 소설에서 보여 준 그르누이의 양립된 매력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
동화 같지만 무섭고, 잔혹하지만 순수한 독특한 매력을 담은 잔혹 스릴러 ‘향수’. 상반된 매력의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이어나가는 ‘향수’만의 감성을 맛보려면 꼭 원작 소설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지금껏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이 작품은 절대 당신을 후회하게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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