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사진이 있는 에세이] 비 내리는 스위스, 잠시 여행의 쉼표를 찍다

기사입력 2015.03.20 11:23
  • 인터라켄 여행 둘째 날은 비가 내렸다. 유럽 여행 중 비를 만난 것은 파리에 이어 두 번째였다. 폭우가 아닌 이상, 비 오는 여행지를 다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만 가득 끼었었고, 유람선을 타는 동안은 간간히 빗줄기가 떨어졌다. 어떻게 찍어도 엽서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스위스 풍경은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햇빛이 비취든 아름다운 풍경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 인터라켄은 차가 많이 다니지도 않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도 아니었기에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그 상큼한 공기를 깊게 들여 마셨다 뱉었다를 반복하면서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순간적으로 기억이 되살아나듯, 번쩍 떠올랐다가 사라진 그 기억은 상큼한 공기의 향에서 느껴지는 기억이었다. 나는 재미있게도 가끔 특정 장소와 특정 시절의 향으로 과거를 기억하기도 한다.
  • 부산에서 보낸 유년시절, 그 때 부산은 차도 많이 없었고 공기도 지금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맑았다. 적어도 지금 내 기억 속에는 그렇다. 주택 건물 2층에 살았었는데 나는 비 오는 날 집 앞에서 장화를 신고 놀 때 맡았던 공기의 향이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공기 중에 가득한 물 냄새였다. 그 냄새는 맑았고 상쾌했으며, 마음은 차분해지고 행복했었다.

    그런데 바로 이 곳 스위스에서 그 때의 향을 맡은 것이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비 오는 날에 느껴지는 그런 향일뿐이었는데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기분만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이 행복한 기분이었다.

  • 호수를 따라 한 바퀴 돌던 유람선이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올 때쯤 비가 꽤 내리기 시작하더니, 도착했을 때는 비는 정말 억수같이 쏟아졌다. 사실 스위스에 도착하기 전까지 파리, 암스테르담, 뮌헨, 프랑크푸르트, 빈 등 쉼 없이 강행군을 했었기에 약간은 지쳐있었다. 특히 직전 여행지인 빈에서 너무나 강렬한 태양을 받았었기에 더욱 그랬는데, 이 날만큼은 아름다운 스위스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쉴 수 있었다.

    여행의 쉼표를 잠시 찍을 수 있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