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네팔 여행기] "굿바이 네팔" 짧았던 시간 여행, 그리고…

기사입력 2015.02.16 20:50
한참이나 남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흘렀다. 어느새 한국행이 코앞. 아쉬운 마음 더할 나위 없지만 내 아쉬움의 크기만큼 이곳의 인연들과 나눈 마음도 크다는 의미일 터. ‘잘 지내’ 안부를 당부해볼까, 헤어짐이 아닌 듯 ‘또 만나자’ 밝게 인사를 건네 볼까. 당혹스러웠던 일화부터 꽤나 아찔했던 소동까지 추억이 되어버린 네팔에서의 마지막 시간. 이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볼까. 머리를 굴려본다.
  • 투어리스트 버스파크. 카트만두로 향하는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 투어리스트 버스파크. 카트만두로 향하는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폭풍 라이딩’으로 시작한 포카라에서의 마지막 아침


    포카라를 떠나는 날 버스파크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레크, 그런데 소식이 없다. 카트만두행 버스는 오전 7시 출발이고 6시30분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버스를 놓치면 버스비도 날리고 온갖 스케줄이 꼬이니 밑지면 본전은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난 그 친구를 믿고 싶다. 눈앞에 있는 택시의 유혹을 뿌리치고 레크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조마조마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6시45분. 드디어 스쿠터를 탄 레크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놓칠라’ 아침부터 시작된 폭풍 라이딩. 덕분에 버스는 안 놓쳤지만 머리카락은 또 잔뜩 엉키고야 말았다.


    “미안해, 과자 사오려는데 문을 연 가게가 없어서 늦었어”
  • 레크가 이른 아침부터 사온 간식거리들
    ▲ 레크가 이른 아침부터 사온 간식거리들
    레크가 가방에서 과자와 음료수, 각종 간식거리가 든 검정 봉지를 내민다. 그렇다. 내가 버스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려고 그 이른 시간부터 문 연 가게를 찾아 헤맨 것이다. 외국인 친구가 자기 때문에 버스를 놓칠까봐 이 친구도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휴, 그냥 택시 타고 갔으면 레크에게 큰 상처가 될 뻔 했다. 그나저나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고맙단 말밖에 할 수가 없어 속이 답답하다. 네팔어 공부 좀 열심히 해올 걸….

    버스가 출발하려 하자 레크가 웬 아이보리 스카프를 목에 걸어준다. 멀리 떠나는 사람한테 해주는 거라고 ‘굿럭’이라는 의미란다. 낯선 곳에서 받게 된 따듯한 마음에 사뭇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떠나는 내가 어떤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한참동안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목을 감싼 스카프가 점차 따듯해진다. 이 외국인 친구가 여행을 무사히 마치길 바라는 레크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굳이 스카프의 의미가 무엇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왜 떠나는 이에게 스카프를 걸어주는지.


    네팔의 바퀴벌레를 아시나요?
  • ‘여행자의 거리’ 타멜. 각종 상점과 여행사, 게스트하우스 등 여행자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 ‘여행자의 거리’ 타멜. 각종 상점과 여행사, 게스트하우스 등 여행자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카트만두로 오자마자 꽤 가격이 있는 호텔로 방을 잡았다. 포카라에서 700루피짜리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다가 밤새 출몰하는 바퀴벌레 때문에 한잠도 못 잤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잠들기 전 베개를 들췄는데 엄지만한 바퀴벌레가 긴 더듬이를 내밀고 있던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호텔은 게스트하우스보다 4배 이상 비쌌지만 나는 벌레로부터 안전한 휴식처를 원했다. 적어도 여긴 바퀴벌레는 없겠지. 마음 놓고 짐을 풀었는데….


    “악! 저 까만 것은?”



    내 눈이 의심스럽다. 침대 위에 펼쳐놓은 내 점퍼 안에서 까만 것이 재빠르게 기어나간다. 호텔에서 나온 건지, 포카라에서 딸려온 건지 어쨌든 내 방 안에 바퀴벌레가 있다. 한 마리면 다행이지만 어제처럼 계속 출몰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프런트데스크에 내려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바퀴벌레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내 방에 있는데, 혹시 남는 방이 있느냐 묻는다.

    “꺼끄로즈?”


    바퀴벌레 사진에 당황한 직원이 만실이라 방을 바꿔 줄 순 없고 대신 에프킬라를 주겠단다. 네팔어로 바퀴벌레가 ‘꺼끄로즈’라는 걸 아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까. 에프킬라를 들고 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마을에서 살 때도 바퀴벌레는 본 적이 없었는데…. 때아닌 꺼끄로즈 소동에 마을이 그리워진다.


    ‘공부하러 일하러’…해외로 떠나는 네팔인들


    “한국은 학비는 비싼데 장학금이 적어서…” 6년 전 내가 봉사활동을 할 당시 옆 학교 학생이었던 비삔(19세). 몇 달 전만해도 한국으로 유학 올 거라며 장학금에 대해 이래저래 묻더니, 결국 핀란드로 바꿨다고 한다. 한국은 학비는 비싼데 장학금 혜택은 적은 반면, 핀란드는 물가가 비싸긴 하지만 등록금이 무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핀란드에서 공부를 해서 나중에 해외에서 취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두바이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형처럼.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그랬듯, 네팔에서도 직장을 구하러 또는 공부하러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학교의 엘리나 선생님 남편도 호주에서 수년째 일하고 있고, 마을에서 숙소를 제공해준 비파나의 오빠 역시 두바이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근처 학교의 기숙사 주인 딸은 우리나라의 한 지방대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인터넷이나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 보고 들은 게 많은 네팔인들이 국내에서 배움에 한계를 느낀다거나 수입이 적은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일 테다. 그나저나 젊은이들이 다 해외로 나가면 네팔을 위해선 누가 일을 하나. 아무쪼록 비삔의 꿈을 응원해본다.


    찌아 다섯 잔과 계란 네 개…작별의 ‘나마스테’
  • 네와리 전통음식. 비파나 어머니께서 손수 만들어주셨다.
    ▲ 네와리 전통음식. 비파나 어머니께서 손수 만들어주셨다.
    네팔을 떠나기 전날, 마을을 다시 한 번 찾았다. 누구의 집을 먼저 들러야 할까.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리며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홈스테이 했던 선생님 댁부터 봉사활동 했던 학생 집, 옆 학교 기숙사까지…. 그렇게 한 집 두 집 들러 “나마스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이 정 많은 사람들, 내가 집에 들어서자 금방 끓여낸 찌아에 쿠키나 계란후라이를 곁들여 건넨다. 그렇게 마신 찌아가 벌써 다섯 잔, 계란후라이는 네개째. 손님이라고 내어주는 간식을 안 먹을 수도 없고, 뜨거운 찌아를 호호 불어가며 한 모금씩 삼킨다. 다만 탈이 나지 않길 바라며.

  • 하루 종일 부지런하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6년 만에 찾아온 한국인 친구가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기에 내가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한 번 더 눈을 맞추고, 한마디 말을 더 건넨다. ‘나를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17살의 라디카, 짧은 재회가 못내 아쉬워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아침엔 가볍게 떠난 내 두 손이, 마을을 떠나 타멜로 돌아올 땐 나무액자, 차 등 선물 꾸러미로 채워졌다. 다섯 잔의 찌아, 네 개의 계란후라이와 함께한 오늘, 저녁 밥은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을 것 같다. 배도 부르거니와 마음도 부르다.

    “굿바이 네팔”
  • (왼쪽)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카트만두 시내. (오른쪽) 공항으로 나와준 네팔인 친구들. / 오은영
    ▲ (왼쪽)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카트만두 시내. (오른쪽) 공항으로 나와준 네팔인 친구들. / 오은영
    창밖으로 카트만두의 오밀조밀한 건물들이 멀어져 간다. 짧았던 나의 시간 여행이 끝났다. 그리웠던 곳을 찾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빛바랜 추억에 색을 입힌 가슴 벅찼던 순간들, 언제쯤 이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도심에서 사라진 꾸르따 수루왈(네팔 의상)과 젊은이들의 손을 차지한 최신 스마트폰, 집집마다 터지는 와이파이. 불과 6년 만에 많은 것이 달라진 네팔, 내가 다시 방문하게 될 즈음엔 또 어떤 것이 달라져 있을까. 다만 찌아 한잔의 따듯한 정은 남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