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우리 동(洞)이름은 왜 ○○일까요? ⑦ 종로구

기사입력 2015.02.10 19:14
  •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을 우리는 단순히 그냥 '인식'하고 있다.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떻게 살았으면 한다는 의미를 부여해서 이름을 짓듯이, 각 지명의 이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 동(洞)이름은 왜 '○○'일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된 '지명 이름의 유래 찾기'. 종로구의 지명 이름을 정리했다.

    종로(鍾路)



    종로네거리에 도성의 각 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루(鐘樓)가 있었는데 이 거리를 종루십자가라 불렀고, 종루에서 4대문으로 통하는 길을 종로, 종길이라 부르던 것이 지금에 종로로 명명하게 된 이유다.

    평창(平倉)



    지금의 평창동 일대에 대동미 등을 보관하던 창고 선혜청과 외곽 방위를 맡았던 총융청의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는데 이에 동 이름이 지금에 이르렀다.

    부암(付岩)



    이 지역에 부침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부암이라 하게 되었다. 부침바위는 여자들이 이 바위에 자기의 나이수만큼의 작은 돌을 붙이고 절을 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실제로 작은 돌을 붙이려고 한 오목한 자국이 부침바위 표면에 많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지금은 그 바위가 없어졌다.

    무악(毋岳)



    무악현 아래에 있다고 하여 무악동으로 하였다고 한다. 무악현은 고개가 험하여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모아재'라고 했다가, 이것이 모악현(母岳峴)이 되었다가 무악현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삼각산 인수봉이 어린 아이를 업고 나가는 모양처럼 생겼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서 산 이름을 모악(母岳)이라고 했다가 후에 무악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청운(淸雲)



    원래 이 곳에 있던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白雲洞)에서 각각 한자씩 가져와 청운동이라 이름지었다. 청풍계는 이 곳에 있던 김상용의 옛 집터 바위에  '백세청풍'이라는 글을 새겨 놓은 것에서 따왔다고 하고, 백운동은 항상 흰 구름이 떠있는 명승지라고 해서 유래되었다.

    효자(孝子)



    조선 중기에 효자로 이름난 조원의 아들 조희정, 조희철 형제가 살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청(三淸)



    도교의 도교신인 태청, 상청, 옥청의 삼청성진을 모셨던 삼청전(三淸殿)이 이 곳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북악산(北岳山)



    도성의 북쪽 산악이라 하여 북악산이라 지었다. 이는 풍수지리설이 도성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남(橋南), 교북(橋北)



    지금의 교남동 북쪽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다리의 남쪽 동네라 하여 교남동이라 했다. 북쪽은 교북동이라고 하였다.

    사직(社稷)



    이 곳에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지내던 사직단이 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가회(嘉會)



    북부 10방 중 하나인 가회방이 이 곳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가회(嘉會)란 어진 신하와 어진 임금이 만나서 국운이 창성하는 좋은 만남을 의미한다.

    혜화(惠化)



    도성 4소문 중 하나인 혜화문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다.

    안국(安國)



    조선 초기 한성부 북부에 있던 12방 중의 하나인 안국방에서 유래했다.

    종각(鐘閣)



    이 곳에 종각(보신각, 普信閣)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신(昌信)



    조선 초기 한성 동부의 방 가운데 안창방과 숭신방에서 각가 한글자씩 가져온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숭인(崇仁)



    조선 초기 한성 동부의 방 가운데 숭신방과 인창방에서 각각 한글자씩 가져온 이름에서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