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백 4.2초·680마력…강력한 힘·안정감 조화로운 매력

볼보 EX90 / 성열휘 기자

볼보자동차의 순수 전기 플래그십 SUV 'EX90'을 약 2년 만에 다시 시승했다. 2024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경험한 이후 한국에서 다시 마주한 EX90은 여전히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당시 시승에서 인상적이었던 정숙성과 편안한 승차감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안전 기술, 실내 공간과 오디오 시스템까지 상품성이 강하되면서 매력도가 상승했다.

EX90은 볼보의 차세대 전기차 방향성을 집약한 모델이다. 단순히 기존 XC90을 전동화한 SUV라기보다 안전과 편안함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전기 파워트레인, 지속 가능한 소재를 결합한 플래그십에 가깝다.

약 2년 전 미국에서 처음 EX90을 탔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차체 크기에서 오는 부담감보다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행 감각이다. 한국에서 다시 운전해도 이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노면과 도심 환경에서 경험하면서 EX90이 추구하는 성격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볼보 EX90 / 성열휘 기자

외관은 화려함보다 절제에 초점을 맞췄다. 전면부에는 볼보를 상징하는 '토르의 망치' 디자인을 새롭게 해석한 LED 헤드램프가 자리하고, 그릴을 없앤 전기차 특유의 전면부가 이어진다. 차체 곳곳에는 플러시 디자인을 적용해 공기 흐름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특히 EX90에는 새로운 HD 픽셀 헤드램프가 적용됐다. 도로 상황과 주변 환경에 맞춰 조명의 범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방식이다. 최대 5대의 차량과 3개의 고정된 물체를 동시에 감지해 자동으로 조광하기 때문에 맞은편 차량이나 주변 도로 이용자의 눈부심을 줄이면서 운전자에게 필요한 시야를 확보하도록 했다.

실제 야간 주행에서 이 같은 조명 기술은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장비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방 상황에 따라 빛을 능동적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확보할 수 있는 시야와 다른 도로 이용자에 대한 배려를 함께 고려한 시스템이다. 차량의 잠금이나 해제 과정에서는 별도의 웰컴·페어웰 라이트 애니메이션도 제공해 전기차다운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전장 5040mm, 휠베이스 2985mm의 대형 차체지만 디자인은 비교적 간결하다. 측면부에서도 불필요한 캐릭터 라인을 줄이고 차체 비율과 면을 강조했다. 공기저항계수는 0.29Cd다. 대형 전기 SUV라는 점을 고려하면 효율을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볼보 EX90 / 성열휘 기자

실내 역시 볼보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유지했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대시보드와 14.5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기능을 디지털 방식으로 구성했다. 9인치 운전자 디스플레이와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함께 제공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심플하면서도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불필요한 장식을 줄이는 대신 소재와 마감, 조명을 통해 고급감을 살렸다. 넓게 펼쳐진 글라스 루프는 실내 개방감을 더한다. 스칸디나비아의 밝은 여름과 어두운 겨울에서 영감을 받은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는 버튼 하나로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눈부심을 줄이거나 프라이버시를 높일 수 있어 상황에 따라 활용도가 높다.

볼보 EX90 / 성열휘 기자

실제로 운전하면서 느낀 실내의 장점은 복잡하지 않다는 점이다. 필요한 정보는 시야 안에 들어오고, 센터 디스플레이의 반응도 빠르다. 티맵 오토와 네이버 웨일, 애플 뮤직, 무선 카플레이 등 국내 운전자에게 익숙한 서비스도 사용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라는 EX90의 특징도 분명하다. 볼보의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와 코어 컴퓨팅 시스템을 기반으로 OTA 업데이트를 지원해 차량 기능과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볼보 EX90 / 성열휘 기자

EX90에서 의외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오디오다. 바워스앤윌킨스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하이 피델리티 사운드 시스템은 단순히 소리가 크고 선명한 수준을 넘어선다. 앞좌석 헤드레스트에 내장된 스피커를 포함해 트위터 센터 스피커, 루프 스피커, 서브 우퍼 등 1610W급의 25개의 독립적인 하이파이 스피커는 돌비 애트모스 공간 음향을 지원한다.

실제로 음악을 들어보면 보컬과 악기의 위치가 또렷하게 구분되고, 저음도 과하지 않으면서 깊이감이 있다. 특히 조용한 실내 덕분에 작은 악기 소리와 보컬의 디테일까지 선명하게 전달된다.

다만 오디오 성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음원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도 있다. 일반적인 음원보다 애플 뮤직의 고음질 음원을 재생했을 때 차이가 확실하다. 음원의 해상도가 높을수록 오디오가 가진 공간감과 디테일이 제대로 살아난다.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작은 공연장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느낌에 가깝다. EX90의 정숙성과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의 조합은 직접 들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실내 공간도 플래그십 SUV에 걸맞다. 2열과 3열을 활용할 수 있고, 평평한 바닥을 통해 공간 활용성을 높였다. 3열을 사용하는 상황에서도 패밀리 SUV로서의 실용성을 고려한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볼보 EX90 / 성열휘 기자

파워트레인은 106kWh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차세대 트윈 모터를 결합한 사륜구동(AWD) 기반 트윈 모터 및 트윈 모터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트윈 모터는 최고출력 456마력, 최대토크 68.4kg·m를 발휘하며, 트윈 모터 퍼포먼스는 최고출력 680마력, 최대토크 81.1kg·m까지 높아진다.

성능 자체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트윈 모터 퍼포먼스 모델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2초 만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주행에서는 강력한 숫자를 과시하기보다 안정적인 움직임과 승차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800V 전기 아키텍처를 적용해 최대 350kW 급속(DC) 충전을 지원하며, 10~80% 충전에는 약 22분이 소요된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최대 448km다.

볼보 EX90 /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직접 운전하면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디지털 기술보다 승차감이다. 출발부터 차체 움직임이 부드럽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차가 급하게 튀어 나가기보다는 묵직한 차체를 조용하게 밀어낸다. 속도를 높여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과 소음을 상당히 잘 걸러낸다. 과속방지턱이나 도로 이음새를 지날 때도 충격이 크게 전달되지 않고 차체가 한 번 부드럽게 받아낸 뒤 빠르게 자세를 회복한다.

고속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대형 SUV 특유의 안정감이 느껴지지만 차체가 무겁게 끌려가는 느낌은 크지 않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도 상당히 억제돼 있어 장거리 주행에서 피로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포츠 SUV처럼 민첩함을 강조하는 차는 아니다. 대신 가족을 태우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 필요한 안정감과 편안함을 꾸준하게 유지한다. EX90의 주행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빠르기보다 편안한 차'에 가깝다.

볼보 EX90 /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볼보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안전 기술도 눈에 띈다. 첨단 센서 세트와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 등을 통해 차량 주변뿐만 아니라 운전자와 탑승자까지 폭넓게 살핀다.

특히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은 운전자의 눈과 머리 움직임 등을 감지해 운전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할 경우 경고한다.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은 차량 안에 남겨진 어린이나 반려동물 등을 감지하도록 설계됐다.

EX90을 약 2년 만에 다시 경험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이 차의 기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처음 탔을 때도 조용하고 부드러웠고, 한국에서 다시 탄 EX90 역시 같은 방향성을 보여줬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다시 타보니 강점이 더 명확해졌다. 강력한 출력이나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우기보다 조용한 실내와 부드러운 승차감, 안전 기술, 디지털 경험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었다.

결국 EX90은 '얼마나 빠른 전기 SUV인가'보다 '얼마나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에 답하는 차에 가깝다. 여기에 뛰어난 정숙성과 부드러운 승차감, 예술적인 수준의 오디오 시스템까지 더해지면서 볼보가 생각하는 차세대 플래그십 SUV의 방향을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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