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교수, AWC 2026서 AI 협업의 본질 강조
바둑계가 겪은 AI 충격, AI 도입 여부가 성적 갈라
AI 시대 생존 전략, 고정관념 없는 AI로부터 신호 읽어야

이세돌 UNIST 특임교수. /서재창 기자

"AI와 공존하는 미래는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는 결정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세돌 UNIST 특임교수가 서울 상암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AI World Congress 2026 in Seoul(AWC 2026)'에서 연사로 나서, 알파고와의 대국 10년을 되짚으며 AI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발표했다. 지난 2016년 역사적인 알파고 대국의 당사자로서 패배와 고민, 그 이후 바둑계가 AI 앞에서 어떻게 재편됐는지를 풀었다. 그가 꺼낸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AI 시대 모든 분야 종사자에게 던지는 조언이자 통찰이었다. 

이 교수는 강연 서두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 어떤 역량을 갖췄는지, AI를 통해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어디서 일하는 것이 유리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내 그는 화면에 한 장의 사진을 띄웠다. 2016년, 알파고 개발자인 데미스 하사비스와 처음 만났을 때 찍은 것이었다.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그냥 순진하게 웃고 있다"고 스스로를 묘사하며 청중의 웃음을 끌어낸 뒤, 그는 곧 진지한 얼굴로 돌아섰다. 

이 교수는 처음 알파고 대국 제의를 받았을 때 그것을 승부로 여기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체스 같은 경우에는 진즉에 컴퓨터가 인간을 전복했지만, 바둑은 몇 년 후에나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2016년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국을 시작점으로 여겼고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알파고와 맞붙으며 4대 1로 패했던 그 시리즈는 결혼 10주년 당일이었고, 구글 딥마인드 측으로부터 샴페인을 받았다는 일화를 꺼내기도 했다. 

4국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에 얽힌 이야기는 강연의 주요 대목이었다. 신의 한 수로 남은 '78번째 수'가 아닌, 그 이전의 '68번째 수'야말로 진짜 승부수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68번째 수 이후에 78번째 수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인간과의 대국이었으면 절대 두지 않는 수였고, 오직 알파고의 버그를 일으키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둔 수였다"고 말했다. 

그 수가 통하지 않았다면, 패착으로 기록되고 업계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승리 이후 자신의 바둑 철학과 신념에 어긋나는 수를 뒀다는 사실에 오래 고민하기도 전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AI 시대에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서,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돌 교수는 "개성, 감성, 서사는 인간 고유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서재창 기자

대국이 끝난 뒤 바둑계에 벌어진 변화는 현실적인 조언을 암시했다. 2017년 알파고 마스터 버전이 공개되며, 누구나 AI의 기보를 내려받아 공부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 교수는 그 버전이 두는 수를 보며 감탄했다고 전했다. 6개월 뒤 등장한 알파고 제로 버전은 달랐다. 인간의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은 채 바둑의 규칙만 익히고 스스로 진화한 이 버전은 이 교수가 대국했던 알파고 리를 일주일 만에, 마스터 버전을 약 40일 만에 압도했다. 이 교수는 "30년 바둑 경력임에도, 제로 버전이 두는 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같은 경험은 상상해 본 적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AI 기보가 바둑계에 퍼졌을 때, 프로 기사들은 절반으로 갈렸다. AI를 적극 활용하는 쪽과 기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쪽. 결과는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 교수는 "끝까지 나만의 바둑을 두겠다고 했던 기사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후 상위 랭킹에서 영원히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 자신도 몇 달을 버티다 결국 AI를 받아들였다고 고백했다. 그가 짚은 것은 적응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위 랭커가 AI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활용했기에, 예전에 격차가 나던 부분에서 더 벌어져 버렸다. 격차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AI 도입이 평준화가 아닌 양극화를 가속한다는 역설적 현실을 바둑판이 먼저 증명했다는 것이다. 

강연 후반부는 AI가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모아졌다. 이 교수는 알파고 마스터 버전이 처음 선보인 '3·3 자리' 착점을 예로 들었다. 바둑판 귀퉁이의 이 지점은 수천 명의 프로 기사 기보 어디에도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어릴 때 두지 말라고 배웠기 때문에 두질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가 됐음에도, 어릴 때 받은 가르침이 선택지 자체를 지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그는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규정했다. "바둑은 3·3처럼 눈에 보이니까 따라하고 응용할 수 있는데, 다른 분야는 그렇지 않다. AI가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을텐데 보려고 하지 않기에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 방한한 데미스 하사비스와의 재회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 교수는 알파고 대국 당시 데미스 하사비스가 알파폴드를 구상하고 있었는지를 물었으나, "대국을 보고 확신을 얻고 영국으로 돌아가 바로 알파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알파고와의 대국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지 10년이 흘렀다. 누군가는 확신을 얻고 노벨상까지 받았다. 우리도 AI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바둑의 복기 개념을 꺼냈다. 승패가 결정된 뒤에도 대국 전체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한 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성패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보지 않으면 그 일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개성, 감성, 서사는 인간의 몫이며, 존중과 배려와 책임 위에서만 AI 시대를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말로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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