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으론 영향 작던 희귀 변이…‘유전자 쌍’ 되자 자폐 연관성 커져
세포실험서 섬모 형성 감소 확인…“기존 단일 유전자 분석 한계 보완 가능성”
5만9168건 다민족 유전체 분석…두 유전자 함께 변이될 때 자폐 연관성 증가
단독으로는 영향이 크지 않았던 희귀 유전자 변이가 특정 조합으로 함께 존재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와의 연관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기존 단일 유전자 중심 분석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유전적 기전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와 고려대학교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안준용 교수 공동연구팀은 자폐와 연관된 ‘유전자 쌍(gene pair)’ 변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Genome Biology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과 제한적·반복적인 행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질환이다. 유전적 요인이 발병에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존 연구는 주로 단일 유전자 변이 분석에 집중돼 영향력이 작은 희귀 변이의 역할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단독으로는 영향이 크지 않은 희귀 변이라도 특정 두 유전자에서 함께 나타날 경우 자폐와의 연관성이 커질 수 있다는 가설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한국인 자폐 가족 데이터를 포함한 동아시아계와 유럽계 총 5만 9,168건의 다민족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폐와 연관성이 높은 유전자 쌍을 동아시아계에서 6쌍, 유럽계에서 156쌍 발굴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발굴된 유전자 쌍들은 공통으로 세포골격 형성과 관련된 기능과 연관성이 높았다. 세포골격은 신경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세포 간 연결을 돕는 구조물로, 정상적인 뇌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추가 세포실험을 통해 유전자 쌍의 기능적 영향도 확인했다. 유전자 하나의 기능만 억제했을 때는 유의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지만, 두 유전자의 기능을 동시에 억제하자 세포 표면 섬모(cilia) 형성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섬모는 세포가 주변 환경의 신호를 감지하는 구조물로, 뇌 발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특정 유전자 변이가 단순한 합산 효과를 넘어 상호작용 효과를 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도 관찰됐다. 동일한 유전자 쌍 변이를 가진 경우 남성 자폐 환자에게서는 증상 심각도가 유의하게 높아진 반면, 여성 환자에게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유희정 교수는 “같은 유전 변이라도 성별에 따라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자폐 진단과 지원 과정에서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접근 필요성을 시사한다”며 “이번 연구는 자폐 위험 예측 모델과 맞춤형 진단 전략 개발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용 교수는 “기존 분석에서 놓치기 쉬웠던 희귀 변이들도 특정 조합으로 함께 나타날 경우 자폐와 의미 있는 연관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 접근법은 자폐뿐 아니라 다른 신경발달질환의 유전적 원인을 연구하는 데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유전체 데이터 기반 연관성 분석과 세포실험 단계에서 수행된 기초연구로, 실제 자폐 발병 과정과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