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 정은채 인터뷰 / 사진: 프로젝트호수 제공

"평소에는 잘 내려놓는 편이에요. 아니면 아닌 거고요. 그런데 '강신재'를 연기하면서는 이상하게 타협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기를 쓰고 끝까지 갔던 느낌이 있었죠."

정은채가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며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종영한 ENA 월화드라마 '아너'는 거대한 스캔들이 되어 돌아온 과거에 정면 돌파로 맞서는 세 여성 변호사의 뜨거운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13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난 정은채는 "좋은 반응과 사랑을 받으면서 마무리가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작품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현실적인 스토리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담은 없었는지 묻자 정은채는 "무겁고 어두운 면이 도드라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시나리오를 선택하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갈 감독님, 작가님, 그리고 배우들의 성향이나 작품을 이해하는 태도가 굉장히 성숙하다고 느꼈고, 저는 그 모두의 결이 이 작품과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은채가 맡은 '강신재'는 성범죄 피해자 변호 전문 로펌 L&J의 대표이자, 법조인 집안의 후계자로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선택을 이어가는 캐릭터다. 정은채는 '강신재'에 끌린 이유에 대해 "성격적으로는 굉장히 묵직한 면이 있고, 뚝심이 있었다. 이 캐릭터가 앞으로의 상황이 전개될 때 어떤 선택을 할지가 궁금했다"라며 "또 세 캐릭터가 20년 지기 친구로 나오는데 각각의 매력도 다르고 변호사로서의 일을 할 때의 포지션이 다른데, 그 셋의 합과 밸런스가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강신재 캐릭터를 어떻게 완성해갔는지 묻자 "초반부부터 설득력 있게 캐릭터를 보여줘야 그 힘으로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멋진 대사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이다 같은 발언을 경쾌하고 잘 들리게 하려고 많은 공부를 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신재를 멋있게 느낀 순간이 있는지 묻자 "어떤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대사를 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대리만족도 느끼고 즐겁게 촬영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드라마가 전하는 이야기의 방향성과 메시지를 고민하고, 캐릭터적으로는 내가 해보지 않았던 연기를 보여주거나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지점에 끌린다"라고 밝힌 정은채.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절제되고 응축된 에너지를 어떻게 순간에 녹여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라고 밝히며 "강신재는 특히 1대 1 신이 많아 상대 배우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많았다. 밀도가 높고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어려웠지만, 눈빛만으로도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느낌의 연기를 많이 시도해 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멋있는 캐릭터로만 남았다면 강신재의 매력이 덜했을 것이다. 강신재에게는 어린 시절 아버지처럼 따랐던 권중현(이해영) 변호사의 민낯을 본 순간, 모친과의 관계, 그리고 백태주(연우진)와의 위험한 공조까지 감정이 요동을 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이 많았다. "세 번의 큰 산들이 다 힘겨웠다"라며 운을 뗀 정은채는 "권중현 변호사와의 신은 자신에게 가장 큰 울타리가 되어준 가족 같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처절한 배신감과 그런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장면이라 힘겨웠고, 그때부터 2막이 시작된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와의 신들 역시 어려웠는데 모녀 관계가 사실 끊을 수 없는 사이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혼란스러움과 인정해야만 하는 나의 엄마의 치부다. 그런 것이 결국 나의 치부처럼 느껴지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고, 마지막 백태주는 결국 속내를 알면서도 손을 잡고 공조하게 되는데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기 때문에 어떤 표정으로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아서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저를 너무 힘들게 했던 쓰리 콤보죠"라고 돌아봤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친구들 윤라영(이나영), 황현진(이청아)과의 연대였다. 정은채는 "저희가 촬영이 시작되고 한 달 넘게 보지를 못했는데, 각자의 영역에서 신들을 촬영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장면에 있어서 그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두 사람이 있고, 어떤 사건을 맡았을 때도 그들의 존재가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보지 않아도 함께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서로를 생각하며 연기를 했고, 시간이 지나 만났을 때는 이미 캐릭터 화가 된 상태라 편하게 촬영을 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백태주가 구축한 세계는 몰락했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성 착취 앱인 '커넥트인' 이용자들의 권력형 비리에는 심판이 내려졌지만, 성매매 혐의는 그저 벌금형에 그쳤다. 권중현을 필두로 한 커넥트인 회원들은 피해를 주장하며 강신재가 맡은 해일에 천문학적 위약금의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성매매 카르텔의 새로운 관리자가 등장하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드라마에서만큼은 해피엔딩을 완성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의문도 들었지만, 정은채는 "시원하거나 통쾌한 엔딩이었다면 아마 이 드라마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오히려 그런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시청자들께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운을 주는 마무리가 된 것 같다"라고 답하며 엔딩에 대한 만족감을 전했다. 정은채는 자신에게 '아너'는 "성숙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내일을 맞이해야 한다. 보는 분들께서도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정은채는 시즌 2 가능성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면서도 "만약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강신재 없이 가능할까 싶다"라고 웃었다. 이어 "엔딩 역시 시즌 2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이런 이야기들이 끝이 아니라 계속된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라며 "우리 삶에서도 늘 공존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 있다는 느낌의 마무리였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이 시즌 2를 기대해 주셨다는 건 그만큼 재미있게 봐주셨다는 뜻이라 생각해 기분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보통 캐릭터를 빠져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밝힌 정은채지만, 차기작이 빠르게 결정된 덕분에 빠른 속도로 새 캐릭터에 적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너'는 시간이 훨씬 더 흘러서 생각했을 때도 이 작품의 매력이나 캐릭터에 대한 단상들이 훨씬 더 뚜렷하게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라고 답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변호사 역할을 했던 정은채는 차기작에서는 형사로 돌아온다. 정은채는 "'아너'가 과정 속에 있는 여정을 그리는 작품이라면, '재벌 X 형사'는 정말 시작과 끝이 확실하다. 결말이 통쾌하고 좋고 싫음의 색깔이 확실한 작품이라서 현장의 분위기도 굉장히 다르다. 연기할 때도 '아너'를 통해서는 내면의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면 '재벌 X 형사'는 그 세계관의 파도를 잘 타는 것이 저에게 또 다른 숙제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은채는 '아너'를 촬영하며 아쉬웠던 부분으로 "체력"을 언급했는데, 차기작에서는 액션 연기까지 선보이게 됐다. 그는 "액션 장면이 꽤 많은데 액션 팀이 항상 함께 하고 있고 안전한 촬영을 위해 합도 많이 맞춰보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표현을 잘 하기 위해 하나하나 배어가면서 하고 있다. 다들 시즌 1 때 경험을 하셨던 분들이 많아서 합이 정말 잘 맞고 모두가 능숙한 덕분에 잘 촬영하고 있다"라고 전해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것 같다는 말에 정은채는 "어려움을 타파해가는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어려운 걸 해야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발전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굳이 어려운 것을 찾지는 않지만, 피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본인한테 엄격한 것 같다는 말에 "저 스스로한테 조금은 혹독하게 하는 지점도 있는 것 같다. 웬만해서는 만족도 잘 되지 않고,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다이내믹하고 강렬한 색채의 작품에서 주로 활약해 온 정은채지만, 실제로 좋아하는 장르는 '봄날은 간다'나 '미술관 옆 동물원' 등 섬세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정은채는 "그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은데, 여러 다양한 작품이 많이 나와서 새로운 연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밝은 분위기의 로코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해보고 싶고, 조금 더 밀도 있는 사랑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에 대해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라고 전했다.

"다음이 궁금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완전히 그 캐릭터로 몰입해서 봐주시고, 새로운 얼굴에 흥미를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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