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설계에 발 묶인 제조… 다쏘시스템, AI로 ‘생산 엇박자’ 잡는다
솔리드웍스가 바꾼 제조 방정식… 설계보다 느린 제조가 ‘병목’
숙련공 은퇴로 사라지는 노하우, AI 비서 ‘아우라’가 전수
중소기업 DX의 최대 장벽은 ‘관행’… 조직 문화부터 바뀌어야
30년 전 제조 현장의 병목은 언제나 ‘설계’였다. 도면이 나오기만 하면 사람을 투입해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쏘시스템 솔리드웍스 등장으로 설계가 빨라지면서 공수(工數)의 방정식이 뒤집혔다. 이제는 설계 속도를 제조가 따라가지 못하는 ‘제조 병목’ 시대가 됐다.
온라인 쇼핑으로 클릭 한 번이면 하루 만에 배송받는 편리한 시대지만, 그 이면의 제조 현장은 신음하고 있다. 소비자 지출은 폭발하는데 만들 사람은 부족하고, 공정은 더 복잡해졌다. 심지어 작년에는 다 만든 제품을 실어 보낼 선적 컨테이너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다. 다쏘시스템이 제조 AI에 집중하는 이유다.
◇ 설계는 ‘빛의 속도’, 제조는 ‘여전히 20세기’
2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월드’ 미디어 세션에서 마이크 부클리(Mike Buchli) 3D익스피리언스 웍스 파트너 세일즈 매니저는 “30년 동안 솔리드웍스로 설계를 혁신했다”며 “이제 제조가 설계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말했다.
1990년대 제품 개발의 병목은 설계였다. 3D 캐드(CAD) 기술이 미성숙했던 시기, 설계 도면을 완성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반면 제조는 사람을 더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솔리드웍스가 등장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설계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복잡한 3D 모델도 며칠이면 완성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제조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숙련 노동자는 줄어들고, 공정은 복잡해졌다.
부클리 매니저는 “설계는 며칠이면 끝나지만, 제조에는 여전히 몇 주가 걸린다”며 “노동력 부족 때문에 병목이 다시 제조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세대교체 문제도 심각하다. 데빈 말론(Devin Malone) 델미아웍스(DELMIAWorks) 총괄 매니저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수십 년 경험이 담긴 노하우가 퇴직자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술이 설계 분야에서 먼저 도입됐고, 제조 현장 도입은 뒤처졌다”며 “중소 제조업체 현장에는 아직도 문서화되지 않은 경험적 지식이 많다”고 덧붙였다.
◇ AI가 100년 경험을 학습하다
다쏘시스템은 이 문제를 AI로 해결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서 두 가지 수준의 자동화 사례가 공개됐다.
하나는 ‘기본 자동화’다. 발표에선 캐드 모델에서 구멍 300개를 자동으로 가공하는 영상이 소개됐다. AI는 각 구멍이 일반 드릴링인지, 태핑인지, 카운터보어인지 자동으로 판별했다. 회사별 가공 표준도 자동 적용됐다.
금형 베이스 가공도 마찬가지다. 솔리드웍스에서 압입(press fit)과 미끄럼 끼워맞춤(slip fit)을 색상으로 구분하면, AI가 이를 인식해 각기 다른 공차와 가공 방식을 자동 적용한다. 도면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AI 기반 최적화다. 같은 부품을 가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AI는 복수의 가공 전략을 제안하고, 각각의 비용과 시간을 비교해 보여준다. 엔지니어는 최적안을 선택하면 된다.
부클리 매니저는 “우리 팀에는 100년 이상의 가공 경험이 있다”며 “하지만 같은 시계 부품을 가공하라고 하면 각자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종적으로 14분 런타임을 선택했지만, 모두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노하우는 다쏘시스템의 AI 버추얼 동반자인 ‘아우라(Aura)’에 저장된다. 아우라는 회사별 가공 표준, 재질별 이송 속도, 안전 규격 등을 학습한다. 제조 엔지니어는 “화낙(Fanuc) 로봇의 재질 X에 대한 이송 속도는?”이라고 물으면, 아우라가 회사 표준을 답한다.
설계 단계에서 제조 가능성을 검증하는 기능도 있다. 숍플로어 프로그래머(Shop Floor Programmer)는 3D 모델을 분석해 가공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구멍 깊이, 직경, 기계 가용 영역 등을 검토한다. 적층 제조가 나은지, 절삭 가공이 나은지도 제안한다. 현재 10만 명 이상이 사용 중이다.
IEC 연구에 따르면, 평균 25%의 부품이 제조 단계에 넘어간 후 설계 변경 요청을 받는다. 다쏘시스템은 이 비율을 설계 단계 검증으로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 세대 교체 위기가 AI 도입 계기… 중소기업도 가능
제조 AI 도입의 가장 큰 과제는 현장 노하우의 디지털화다. 말론 매니저는 “판금 제조업체에 가면 골판지를 접어가며 절단 방법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이런 경험을 디지털로 옮기는 게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또 “포춘 500 기업 중에도 벽에 핀과 실을 꽂아 공정을 추적하는 곳이 있었다”며 “엑셀 스프레드시트에서 블록 크기를 조정해 공장 레이아웃을 계획하는 기업도 봤다”고 했다.
다쏘시스템은 이런 아날로그 노하우를 플랫폼에 담아 AI가 학습하게 하는 방식을 중소기업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명 미만의 하일랜드 밴즈, 50~60명 규모의 메탈웍스가 이미 숍플로어 프로그래머와 델미아웍스 제조실행시스템(MES)을 사용 중이다.
부클리 매니저는 “소규모 기업이라도 제조 표준과 공정을 디지털화하면 AI를 활용할 수 있다”며 “직접 설정할 수도 있고, 다쏘시스템 파트너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트너들이 매일 이 작업을 하기 때문에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술보다 조직 문화가 더 큰 장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말론 매니저는 “변화 관리가 가장 큰 문제”라며 “경영진에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거나,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을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우리는 항상 이렇게 해왔다’는 태도가 진전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품질도 AI 성능을 좌우한다. 말론 매니저는 “AI의 효과는 데이터 품질에 달려 있다”며 “제조 프로세스와 모범 사례를 제대로 디지털화했다면, AI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제조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클리 매니저는 “현장 작업자들이 즉흥적으로 작업한다면 AI가 학습할 데이터가 없다”며 “노트북에 적힌 노하우, 골판지로 실험하는 경험을 플랫폼에 옮기는 것이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