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 2025] 지멘스DISW “화려한 AI 속 숨은 데이터 연결이 핵심”
보이지 않는 ‘디지털 스레드’가 제조 AI 성패 좌우
ASML·BYD·폭스콘 등 글로벌 제조 혁신 사례 소개
AI·디지털 트윈·스레드 결합한 생산 패러다임 부상
“대부분 AI나 보이는 테크놀로지에 굉장히 열광합니다. 실질적으로는 디지털 엔터프라이즈가 구현되려면 이 스레드 자체에 대해서 고민이 돼야 가능합니다.”
오병준 지멘스DISW(지멘스 디지털인더스트리소프트웨어) 한국지사장의 말이다. 그는 3일, 여의도 FKI타워에서 진행된 ‘THE AI SHOW 2025(TAS 2025)’ 제조 AI 컨퍼런스에서 AI 기술보다는 디지털 스레드가 진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테크놀로지는 계속 바뀌지만 데이터는 잘 안 바뀌기 때문에 데이터 소유권을 확보하고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멘스DISW는 △포괄적 디지털 트윈 △AI △디지털 스레드 △IT와 OT(운영기술)의 결합 △사이버 보안 등 5가지 요소를 결합한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 제품과 공장, 운영 환경을 컴퓨터에 그대로 구현한 가상 모델로, 실제 투자 전에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게 한다.
이날 오 지사장은 제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서 간 데이터 단절을 꼽았다. 각 부서는 빠르게 최적화된 결정을 내리지만, 연구개발(R&D)과 생산, 생산과 품질관리, 품질과 공급망 사이에서 데이터가 느리게 흐르거나 단절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 스레드는 아이디어 단계부터 생산, 서비스까지 데이터가 추가 변경이나 불필요한 가공 없이 쭉 흘러갈 수 있는 길”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아 재미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스레드는 제품 설계부터 생산, 운영까지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오 지사장은 글로벌 제조업체들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은 2나노급 초정밀 장비를 개발하면서 부품 수 증가에 따른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을 전면 도입했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데이터를 다시 R&D로 보내 AI 기반으로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했으며, 2030년까지 생산량을 2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설계부터 생산까지를 디지털 스레드로 묶어 제품 기획부터 양산까지 기간을 54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했다. 오 지사장은 “BYD가 10년도 안 돼 테슬라를 따라잡은 가장 큰 비결은 AI와 디지털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애플의 주요 생산기지인 폭스콘은 멕시코에 새 공장을 짓고 있는데, 지멘스와 엔비디아가 함께 참여해 인더스트리 옴니버스(산업용 메타버스) 기반 공장을 건설 중이다.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이 공장은 실제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도 모든 공정과 프로세스를 가상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해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미리 찾아낸다.
지멘스 자체 공장인 독일 에를랑겐 공장도 최근 AI 기반 혁신을 통해 최신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생산설비에 비전(영상인식) AI를 도입하고, 로봇에 혼합현실(MR) 기술을 적용했으며, 엔비디아 옴니버스로 공장 전체를 가상화해 관련자들이 실시간으로 협업하며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지멘스DISW는 제조 AI 생태계를 완성하기 위해 최근 14조원을 투자해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알테어(Altair)를 인수했다. 오 지사장은 “지멘스DISW에 부족했던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데이터 패브릭 솔루션을 확보했다”면서 “데이터 패브릭부터 실제 사용자 애플리케이션까지 제공할 수 있는 토탈 솔루션 업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패브릭은 외부의 SAP, 클라우드, 세일즈포스, IBM, 스노우플레이크 등 다양한 데이터 소스를 연결해 통합 분석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지멘스는 이를 통해 기업들이 로우코드(간단한 코딩) 방식으로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멘스는 설계 및 시뮬레이션 솔루션 안에도 최신 AI 기능을 탑재했다. 엔지니어들이 자연어로 설계를 지시하거나, 신입사원이 기존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빠르게 재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전기전자, 조선, 항공우주, 방위산업 분야 기업들이 지멘스와 함께 AI 기반 제조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오 지사장은 최근 화두인 에이전트 AI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지멘스DISW의 로우코드 플랫폼에서는 에이전트 AI를 지금 당장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이전트 AI는 사람의 개입 없이 AI가 스스로 작업을 수행하고 다음 단계로 자동으로 넘기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제품수명주기관리(PLM)나 제조실행시스템(MES) 등에서 사람이 많이 개입해야 했지만,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전체 프로세스를 관장하는 슈퍼 거버넌스 에이전트가 통제하는 방식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멘스가 투자한 미국 스타트업 피규어AI는 국내 조선업체와 함께 소조립, 중조립 작업에 휴머노이드를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오 지사장은 “휴머노이드가 30년 경력 장인보다 높은 품질로 작업하려면 사전에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고, 작업 결과가 예상 데이터와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며 “이를 폐쇄 루프(closed loop)로 관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환경을 갖춰야 진정한 자동화”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 지사장은 AI 도입의 가장 큰 장애물로 경영진의 잦은 교체를 지목했다. 그는 “글로벌 사람들이 항상 묻는 게 한국은 왜 이렇게 임원들이 자주 바뀌냐는 것”이라며 “일 좀 하려고 하면 다 바뀌어서 이분이 도대체 몇 년이나 있을지 염려하며 일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고경영책임자(CEO)와 최고경영진의 의지와 지속적인 리더십이 가장 시급하다”면서 “다행히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디지털 트윈과 디지털 스레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AI 혁신은 최소한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며 “기술 중심 접근은 실패하기 쉽고, 새 기술이 나오면 우르르 몰려가 기존 것을 잊어버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젊은 인재들이 기술 중심이 아니라 리더십 중심, 비즈니스 목표 중심으로 AI를 바라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과감하게 실행하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