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키는 자폐 진단 ‘골든타임’…집에서 찍은 1분 영상으로 조기 선별
자폐 조기 선별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현실을 바꿀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
서울대병원이 주관하고 세브란스병원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부모가 집에서 촬영한 1분짜리 영상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위험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npj Digital Medicine(IF 15.1) 최신 호에 게재됐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반복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신경 발달 장애로, 조기 개입 여부가 치료 효과를 크게 좌우한다. 그러나 실제 진단은 평균 3.5~4세 이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진단 연령은 54개월로, 국내에서도 대형 병원에서 1~2년을 기다리는 일이 흔하다. 이 때문에 생후 24개월 이전의 최적 개입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촬영한 짧은 영상을 AI가 자동 분석하도록 설계했다. 연구에는 생후 18~48개월 아동 510명(자폐 아동 253명, 정상 발달 아동 257명)이 참여했다. 이름 반응·모방·공놀이 등 세 가지 과제를 각각 1분 이내로 수행하게 한 뒤, AI가 음성·자세·공 움직임을 분석해 반응 지연 시간, 눈 맞춤 지속 시간, 부모의 개입 빈도, 상호작용 시간 등을 수치화했다.
세 과제를 종합한 AI 앙상블 모델의 성능은 AUROC 0.83, 정확도 75%로 나타났다. 특히 공놀이 과제에서 가장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으며, 분석 시간은 영상 1편당 평균 14초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전문가 대면 검사 없이도 위험 아동을 빠르게 가려낼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진단 대기 기간이 긴 환경에서 1차 선별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ASD 아동이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이 늦고 눈맞춤 시간이 짧으며 부모의 개입이 잦은 행동 패턴을 포착했다. 연구진은 “AI가 놓친 일부 사례는 증상이 경미하거나 발달 지연을 보이는 ‘경계선 아동’으로, 조기 관찰이 필요한 신호를 포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김영곤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집에서 촬영한 짧은 영상만으로 자폐를 조기 선별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자동화 도구를 마련했다”며 “임상 적용을 확대해 실제 조기 개입으로 이어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긴 대기와 높은 비용으로 조기 진단이 늦어지는 현실에서, 이번 연구는 전문가 대면 검사에 의존하지 않고 부모와 임상가의 협력을 통해 짧은 동영상을 기반으로 쉽고 빠르게 자폐 아동을 조기 선별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모델은 진단이 아닌 조기 선별용 도구로 개발된 것으로, 실제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 참여 아동은 자폐 또는 정상 발달군으로 구성돼 임상 다양성에 한계가 있으며, 남아 비중이 약 70%로 구성돼 일반화에는 제한이 있다. 또 가정에서 촬영한 영상은 조명·소음·프레임 각도 등 환경 변수가 다양해 AI 분석의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고, 개인정보 보호와 같은 윤리적 관리 체계도 구축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자폐 진단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 조기 개입의 시기를 지킬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 기술이 진단을 대체하기보다는 부모가 아이의 변화를 더 일찍 감지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 도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의 ‘발달장애 디지털치료제 개발(R&D)’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