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형 LLM 개발, 공공 쇼케이스에 머물지 않을려면”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디지털 공약 중 하나인 ‘모두의 인공지능(AI)’은 AI 기술을 특정 산업과 계층에만 집중시키지 않고 국민이 모두 공정하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가적 비전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보급이 아닌 AI 기반의 포용 사회 구현이라는 철학적 지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는 이 공약을 실현하는 목적으로 국민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대형언어모델(LLM)을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얼핏 보면 ‘모두의 AI’를 향한 큰 진전처럼 보이지만 국민에게 무료로 LLM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모두의 AI’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LLM 사용 가능성과 활용 능력은 다르다. LLM을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한 웹 인터페이스나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형태로 누구나 쓸 수 있게 개방한다고 해도 실제로 이를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대다수 국민은 LLM의 작동 원리나 한계, 프롬프트 설계 방법, 정보 검증 방식 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 질의응답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AI를 활용한 문서 작성, 번역, 프로그래밍, 창작, 데이터 분석 등 고차원적 활동은 전문 교육과 실습 환경이 뒷받침될 때야 가능하다.
둘째, AI 생태계 참여 기회가 없는 ‘소비자 모델’의 고착화다. 모두의 AI는 단순한 사용을 넘어, 개발과 개선, 피드백, 실험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완성된다. 하지만 무료 LLM 공개는 대부분 국민을 단순 사용자로 남게 만든다. 오픈소스 개발 참여, 모델 개선, 현장 피드백 반영, AI 윤리 기준 설정 등 시민이 AI 생태계의 일부가 되는 구조가 없다면 LLM은 공공재가 아닌 ‘공공 포장된 사유재’에 머물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 인프라에 대한 선도적 투자를 통해 모두의 AI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GPU 서버와 AI 지원 단말기를 주민센터, 학교, 도서관 등 기초 거점에 보급하고, 교육부, 행정안전부, 지자체가 연계해 AI 교육과 실습, 행정 적용이 가능한 통합 환경을 제공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셋째, 활용 기반의 지역·계층 격화가 심화할 수 있다. 현재 지방 중소 도시의 학교, 주민센터, 도서관 등 기초 공공기관은 고성능 컴퓨팅 환경이나 안정적인 네트워크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공공부문은 보안과 폐쇄망의 제약으로 민간 클라우드 기반 LLM을 원활히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형 LLM의 무료 개방은 수도권, 대기업, 상위 교육기관에 먼저 도달하며, 지역과 취약계층은 또다시 뒤처진다. ‘모두의 AI’가 ‘일부의 AI’로 전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 클라우드 기반의 AI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해 기기 제약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또 보안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갖춘 공공 전용 AI망도 구축해 클라우드와의 연결 단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넷째, 윤리적 책임과 공공 신뢰 기반이 미비할 경우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형 LLM이 국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해서, 그 기술이 반드시 신뢰받고 안전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위 정보, 혐오 표현, 편향된 응답 등이 통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적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공공의 이름으로 제공되는 AI는 투명성, 책임성, 실현 가능성이라는 공공 윤리 기준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관리·감독할 제도 기반도 마련돼야 한다.
‘모두의 AI’는 결국 모두가 AI를 통해 성장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한국형 LLM을 무료로 공개하는 것은 그 첫걸음일 뿐, 교육·인프라·접근성·윤리·참여 생태계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저 또 하나의 ‘기술 쇼케이스’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진정한 의미의 ‘모두의 AI’를 위해서는 LLM 그 자체보다 국민이 AI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창조할 수 있을지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디지털 대전환은 ‘기술의 배포’에 그치지 말고, 기회의 재설계로부터 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의 AI는 또 하나의 이름뿐인 공공재로 남게 될 것이다.
이재성 교수는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2017년 동 대학 교수로 임용돼 AI학과 학과장, 인공지능연구소 소장,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까지 국내외 학술지와 학술대회에 약 200여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중앙대학교 AI대학원지원사업에 참여해 AI 관련 교육과 연구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