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 기어를 해체하여 제작한 3인용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하고 있는 윤경덕 디자이너

업사이클링(Upcycling)과 리사이클링(Recycling)의 차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리사이클링은 '재활용'을 의미하며, 사용을 다 한 물건을 다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업사이클링은 '새로운 활용'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던 제품에 디자인과 활용도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업사이클링은 리사이클링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으로, 기존 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독창적이며 독특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자원 낭비를 줄여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패션 브랜드 T.B.0.S의 디자이너이자 대표인 윤경덕은 버려진 의류와 원단을 해체하여 새롭게 디자인한 의류, 가구, 오브제 등의 창작물을 만든다. 그는 폐기 의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업사이클링 패션의 선두 주자로 꼽히며, '해체 예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스타일, 아이돌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MLB 서울 시리즈 2024 개막전 축하무대에 오른 에스파의 신발을 제작한 윤경덕 디자이너 /사진 출처=T.B.O.S 홈페이지

윤 디자이너의 창작품은 K-pop 아이돌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에스파, 아이브, 뉴진스를 비롯해 NCT 등 아이돌 그룹과 자주 협업을  진행했다. 2024년 한국에서 열린 미국 MLB 개막전 오프닝 무대에 선 에스파(aespa)를 위해 신발 디자인을 했으며, NCT 앨범 무대 의상 제작도 맡았다. 아이브와 뉴진스의 경우 의상을 구매하거나 맞춤 제작을 의뢰 방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졌다. 그의 브랜드는 개성 있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아이돌들이 추구하는 대담하고 창조적인 이미지를 잘 반영해, 많은 아이돌의 선택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개성 강한 스타일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이미지와 달리 심플하고 실용적인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모양과 색상이 조합된 카모플라쥬 재킷과 안경으로 포인트를 주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절제된 모습이었다. 기존 옷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창작물들로 가득한 그의 성수동 쇼룸에서 만나 그의 디자인 철학과 향후 계획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해체와 조립의 공정을 거친 T.B.O.S의 창작물 /사진 출처=윤경덕 디자이너 SNS

Q 해체와 조립의 공정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처음부터 업사이클링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하신 건가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조립하는 걸 좋아했어요. 장난감을 조립하거나 여러 가지를 붙여보는 걸 즐겼죠. 그런 경험이 의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처음에는 그런 방식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업사이클링이 점점 유행하면서 제 작업과 자연스럽게 접합되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조립하는 것이 제 작업의 기본 가치지만, 환경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Q 작업에 사용되는 옷이나 원단은 주로 어떻게 수급하시고, 그 후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초반에는 직접 뛰어다니며 공장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 입던 옷을 구했어요. 요즘에는 기업에서 리퍼브 제품이나 공정 과정에서 작은 흠집이 있는 의류들, 또는 팔리지 않아 폐기되는 의류들을 많이 보내줍니다. 이렇게 준비된 옷은 쓰임새에 맞게 해체해야 하므로 실밥을 다 뜯기도 하고 바로 잘라내는 경우도 있어요. 이 과정은 기계의 도움도 받지만, 수작업이 병행되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먼지도 많이 발생하죠. 그래서 작업실 환경도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해체가 끝나고 나면 조합하는 과정은 디자인 공정과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각종 브랜드와 협업한 작품들 /사진 출처=T.B.O.S 홈페이지

Q 브랜드명인 T.B.O.S는 무슨 의미인가요?

"더 보이즈 오브 서머(The Boys Of Summer)의 약자인데요. 여름과 자유로운 청춘의 이미지가 그 시절 제게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그 당시 저는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이었고, 졸업 후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보려던 시기였어요. 특히 에어컨도 없는 작업실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던 시절이었고, 그때의 열정이 이름에 녹아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Q 나이키, 코오롱, 헤지스 등 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 협업은 나이키와 진행했는데 너무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나이키와의 협업을 계기로 다른 브랜드에서도 연락이 왔고, 전시회도 열게 되었습니다. 의류로 시작한 협업은 가구와 오브제, 나아가 설치 미술까지 확장됐죠.

특히 빈티지 레이싱 재킷과 바이커 재킷을 해체해 의상, 의자, 오브제 등으로 재구성한 컬렉션이 기억에 남아요. 이 레이싱 룩 스타일은 제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고요. 최근에는 폐기 의류를 해체해 2.5m 높이의 대형 강아지 조형물을 제작하는 작업을 헤지스와 함께 했어요. 원단을 이용한 조형물 작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새로운 방식의 도전이라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이를 발전시켜 전시회를 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T.B.O.S 성수동 쇼룸 내부 모습

Q 유니크한 창작물들이 많은데, 최근 유행하는 생성형 AI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시나요?

"저희는 수작업을 중시하는 아날로그적인 브랜드이지만, 저는 현대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작업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표현 방식은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인데요.

최근 의류 컬렉션에서도 홍보 영상이나 브랜드 이미지 영상 제작에 AI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며, 의류 프린트 디자인에도 미드저니와 같은 AI를 많이 사용했어요. 이때 사용한 이미지는 저희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또 3D 기술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번 컬렉션의 액세서리는 모두 3D 프린터로 디자인하고 제작했습니다."

Q 보통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저는 많이 걸어 다녀요. 다니면서 보이는 사람들, 사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이죠. 그런 면에서 이곳 성수동이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많고 재미있는 작업도 많이 진행되는 곳이잖아요. 최근 성수동은 패션 브랜드의 성지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구두 장인들이 터를 잡은 곳이자 자동차 정비소와 철공소, 창고 등이 밀집한 곳이었죠. 걷다 보면 철공소의 쇠 가는 장면, 공장의 기계 소리, 정비소에서 수리 중인 슈퍼카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영감도 많이 얻고 있어요."

T.B.O.S 성수동 쇼룸 내부 모습

Q 다양한 원단을 다뤄 보셨을 것 같은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원단이 있나요?

"저는 데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데님은 어떤 스타일로 입어도 그 자체의 멋이 있고, 입는 사람의 기억과 습관, 행동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빈티지 데님 청바지를 보면 "이 사람은 휴대전화를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구나"라는 생활 습관이 보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데님의 특성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요."

Q 옷 디자이너로서 선호하는 스타일링 방식이 궁금합니다.

"조금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몇 가지 옷을 구매해 돌려 입는 '단벌 신사'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인터뷰나 중요한 행사, 미팅에 참석할 때는 예의를 갖추거나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의류를 착용합니다. 또한, 패션 포인트로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자주 활용하는 편이라 이를 비교적 자주 구매하고 있습니다."

데님을 가장 좋아하는 원단으로 꼽은 윤경덕 디자이너 /사진 출처=T.B.O.S 홈페이지

Q 마지막으로 올해의 계획은?

"2025년에는 ‘대중적’인 느낌으로 풀어낸 옷을 만들고 싶어요. 왜냐하면 제가 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폐쇄적인 브랜드 운영을 했어요. 저희 홈페이지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 저희 공간에 와야만 옷을 볼 수 있었죠. 유통 경로나 홍보 방식 등에서 대중적인 방식을 선택해 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 경험을 확장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윤 디자이너는 브랜드 확장을 위해 새로운 라인 '화이트 라벨'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평소 계획형 인간은 아니지만, 이번에 체계적으로 새 라인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미 샘플 제작을 마친 상태다. 이번 라인은 다가오는 봄 시즌을 겨냥하고 있다.

그는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디자인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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