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 혼란, 기업 투자 무산 위기
교육 격차 심화 우려... 학교·학생·기업 부담 가중

지난해 8월 28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2024 글로벌 교육 혁신 서밋(GEIS)’에서 초등학생들이 AI 디지털교과서 프로토타입을 활용해 수학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구아현 기자

교육부가 교육 격차 문제와 맞춤형 교육 실현으로 내세운 AI 디지털교과서(이하 AIDT)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통과하면서 교육계가 방향을 잃고 있다. AIDT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AIDT는 올해 3월부터 ‘교과서’로 공교육에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교과용 도서(교과서)의 정의와 범위를 교과서에서 도서와 전자책으로 제한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의결되면서 ‘교육자료’로만 활용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정부로 이첩돼 공포되는 즉시 시행된다. 이에 교육부는 재의 요구를 통해 1년 동안 시범 기간을 거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AIDT는 공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교육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방안으로 대두됐다. AI 기반 맞춤형 학습으로 학생들의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으로 꼽혔다. 정부는 올해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영어, 정보, 국어 과목을 시작으로 교육을 도입해 2028년까지 대상 학년과 과목을 단계적으로 확대·실시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AIDT 검정에 에듀테크 기업이 참여했고, 총 76종의 AIDT가 지난해 11월 말 선정됐다. 이미 기술 등은 마련된 것이다.

◇ AIDT 교육자료 격하, 학교·학생·기업 모두 부담

우선 AIDT가 ‘인공지능·정보 기술을 이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교육자료가 되면 우선 학교에서는 이를 채택할 의무가 없어진다.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예산도 교육부 예산이 아닌 학교 예산에서 이를 채택해야 한다. 학교나 학생에게 구독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

학교와 학생의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AIDT 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수학과 정보 과목의 경우 소수 에듀테크 기업들이 AIDT에 선정됐다. 기업 수가 제한되면 시장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교과서 검정에 합격한 출판사·발행사 12곳은 AIDT 개발을 위해 수십억~수백억 원을 투자했다. 이들은 AIDT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그동안 쏟아부은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AIDT 가격을 높여 학교와 학생에 부담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AIDT 정책 목표인 교육 격차 해소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교육부에서 AIDT 사용을 희망하는 학교에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학교 재량에 따라 이를 선택할 수 있고, 학교 재정 상황이나 부유한 지역의 학교 등이 나눠질 수 있어서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AIDT의 교육자료 사용에 회의적인 분위기다. 한 중학교 수학교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AIDT가 교육자료로 격하된다는 결과가 나오고 나서 학교는 사용하기로 선정한 AIDT를 돌연 취소했다”면서 “올해 학교 예산이 조금씩 삭감돼 만약 학교에서 AIDT 사용료를 부담하면 다른 예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1년 후에 사용하자고 결정됐다”고 말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교과서와 달리 교육 자료는 저작권 할인 혜택이 없어진다”면서 “기업 수 제한 시 시작 독과점으로 인한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이 부족한 학교는 디지털 교육 혜택에서 제외될 우려가 있다”며 “AIDT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안 되면 학교에서 이를 사용 안 할 수 있고, 사용하더라고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5년 교육부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교육부

◇ 교육 신뢰성 위기 “교육자료 격하, 아예 쓰지 말라는 얘기” 비판도 나와

AIDT의 교육자료 격하는 신뢰성 문제와도 연관된다. 우선 AIDT의 검정 심사가 없어진다. 현재 선정된 AIDT는 교육부가 선정한 검증 기관에서 교과서 내용, 형식, 보안 등 모든 내용을 심사했다. 교육자료는 이러한 까다로운 검증 거치지 않아도 된다.

보안 우려도 발생한다. AIDT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학생 데이터가 국가 관리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게 된다. AIDT가 공교육에 도입될 때 학생 데이터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관리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교육자료가 되면 민간이 이를 지킬 법적 의무가 없어져 민간에 데이터 관리가 맡겨진다

AI 기업 관계자는 “국가에서 책임졌던 부분이 민간으로 가게 되면 보수적인 교육계에서는 당연히 신뢰를 덜 하게 될 것”이라면서 “교육자료 격하는 심하게 말하면 AIDT를 쓰지 말라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AIDT에 참여한 기업들이 현재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지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신년사를 통해

 AIDT 도입 의지를 내비쳤다. “고등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고,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 대전환으로 공교육을 통한 학생 개개인 맞춤 교육을 실현하고, 영포자‧수포자 없는 교실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 10개 교대와 한국교원대, 제주대로 구성된 전국교원

양성대학교 총장협의회도 지난해 12월 20일 입장문을 내고 AIDT 활용을 강조한 바 있다. “AIDT를 교육자료로 격하해 학교장에게 선정과 운영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시대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다”며 “AIDT는 추진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분명한 만큼, 제기되는 우려를 감안해 최초 적용의 범위를 조절하고, 부작용을 점검하면서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안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