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배추와 감
김장의 계절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지지리도 가난했던 우리 민족 최고의 월동 식품은 바로 배추김치였다. 어린 시절, 김장은 마을 일과 같아서 집집마다 김장하는 날을 엇갈리게 정한 후 품앗이로 일손을 보탰다. 한 집에 배추 300포기는 기본이었고,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던지라 김치 한 가지만을 겨우내 먹고 또 먹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봄이 오기 전에 남은, 시다 못해 쉰 김치는 부침개 부쳐 먹거나 만두로 만들어 먹었다.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배추전을 부쳐 간식으로 먹었는데, 그땐 맛이 심심하기만 한 배추전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랐다. 그러나 갖은양념을 한 김칫소를 잘 절인 노란 배추 속잎에 싸서 입에 넣으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너무 많이 먹어 속은 쓰렸어도 그때의 기억만큼은 달콤하고도 따뜻하다. 돼지고기를 삶아 보쌈으로 싸 먹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렇게 흔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배추를 그려 인간의 도리는 물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그림이 있다. 배추에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니 놀랄 일이다.
예부터 ‘꽃 중의 왕’은 ‘목단’, ‘과일의 왕’은 ‘여지’, ‘채소의 왕’은 ‘배추’라고 했다. 배추를 한자로 백채(白菜)라고 하는데, 배추의 푸르고 흰 색깔 때문에 청백채(靑白菜)라고도 한다. 우리말 배추의 발음은 중국어 바이차이(白菜)에서 왔다.
청백채의 청백(靑白)과 두 그림의 제목에 들어 있는 청백(淸白)의 발음이 같다. 때문에 배추 청백(靑白)을 청백(淸白)으로 읽고, 그 뜻은 ‘명백하다, 분명하다’이다. 그래서 배추를 그린 그림은 ‘순리대로 분명하게’라는 뜻이다.
성품과 행실이 올바르고 사적인 욕심을 탐하는 마음이 없는 관리를 ‘청백리(淸白吏)’라고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매일 이 그림을 보며 ‘청백’의 정신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배추만을 그린 그림은 푸른색은 푸르게 흰색은 희게, 즉 ‘순리대로’라는 뜻을 나타내는데, <사사청백도(事事淸白圖)>와 <세세청백도(世世淸白圖)>를 보면 배추와 함께 감이 그려져 있다.
감 시(柿, shì)는 일 사(事, shì)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래서 두 개의 감 + 배추 = 사사(事事) + 청백(淸白)이고, “하는 일마다 모두 분명(공명정대)하기 바란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감 시(柿, shì)는 대 세(世, shì)와도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래서 두 개의 감 + 배추 = 세세(世世) + 청백(淸白)은 “(해마다)늘 명명백백(明明白白)하기 바란다”는 뜻이다.
이 그림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그 뜻을 새긴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윤리교육이 없을 것이다. 특히 나라의 공복(公僕)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이 그림을 걸어두고 그림의 의미를 새기고 또 새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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