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동방삭과 복숭아
1970년대 코미디극에서 손이 귀한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특별히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이 서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
이 희한한 이름에 등장하는 동방삭은 실존 인물이다. 그는 중국 한나라 시기 넘사벽의 외모와 익살스러운 언변, 그리고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당시 이미 유명 인사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설이 되어 무려 삼천갑자, 즉 18만 년을 산 불로장생의 대명사가 되었다. 동방삭은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오래 살 수 있었는데, 저승사자를 피해 다니다가 잡힌 곳이 바로 우리나라 탄천(炭川)이라고 한다.
도교 전설에 따르면 서왕모는 곤륜산 정상의 궁전에서 산다고 한다. 그곳에는 반도원(蟠桃園)이라는 과수원이 있는데, 반도(복숭아)가 익어 갈 즈음 잔치를 열었다. 이때 참가자들에게 반도를 나눠주었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하였다. 그래서 서왕모는 불로장생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먼저 중국 명나라 오위가 그린 <동방삭투도(東方朔偸桃)>-동방삭이 복숭아를 훔치다-를 보자. 주인공 동방삭은 한눈에 봐도 나이가 들어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동박삭은 기원전 154년~기원전 92년까지 62년을 살았다고 하니 당시 기준으로는 장수한 셈이다. 그림으로 보아 말년의 동방삭이 서왕모의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서리하여 도망가면서 혹시 들키지 않았을까 뒤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조선의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閬苑偸桃)>-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를 보자. 30대의 동방삭이 낭원(곤륜산 꼭대기 신선이 산다는 곳)에서 복숭아를 서리해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동방삭의 행동이 기이하다. 훔쳐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복숭아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도둑의 자세가 아니다.
두 작품의 내용은 같다. 모두 동방삭의 전설을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그림의 디테일이 다르다. 오위의 작품을 보자. 필시 동방삭이 걸어가는 반대 방향에 과수원이 있었을 것이고, 바삐 가느라 동방삭의 옷자락이 뒤쪽으로 펄럭이고 있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김홍도가 그린 동방삭의 옷자락은 동방삭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펄럭이고 있다. 바람이 동방삭 등 뒤에서 불어오는 것이 틀림없다.
바로 이 묘사가 디테일의 차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주인에게 걸릴 확률이 다르다. 바람이 과수원 쪽으로 불면 아무래도 인기척 소리나 체취가 전달되기 쉽다. 그러나 과수원 쪽에 바람이 불어온다면 완전범죄에 더 가까워질 확률이 높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김홍도 그림의 동방삭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더 맛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복숭아에는 벌레가 많은데, 밤에 먹어야만 벌레까지 모르고 먹는다는 뜻이었다. 한여름 별이 쏟아지는 밤, 컴컴한 마루에서 복숭아를 손에 들고 입으로 베어 먹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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