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빛날수록 더해지는 그림자…'설계자'
흑과 백은 명확한 대비로 선과 악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하지만 영화 ‘설계자’ 속에서 그 대비는 모호하다. 빛을 굴절해 색을 드러내는 프리즘처럼, 한 인물은 흑으로도 백으로도 묘사된다.
그렇기에 ’설계자‘ 속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시선‘이다. 사건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고로 보일 수도, 살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인물 역시 그렇다. 보는 시선에 따라 흑으로도 백으로도 비친다. 영화 ‘설계자’는 믿음직한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객들의 믿음을 흩트린다. 배우들의 연기가 더 단단하게 짜여있을수록,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혼란스럽다.
복잡한 용산전자상가에 위치한 삼광보안은 사실 보안업체가 아니다. 의뢰를 받고, 그 사람을 사고사로 위장시키는 일을 한다.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영일(강동원)을 리더로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이 삼광보안에 뭉쳤다. 이들은 의뢰받은 사람을 어떤 사고로 살해할지 모의하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치밀하게 준비한다. 때로는 태양의 각도까지 사고에 계산되어 있기에, 타이밍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총장으로 거론되는 김홍파의 딸이 삼광보안에 아빠를 죽여달라고 의뢰했다. 삼광보안은 아빠의 보좌관으로 매일 붙어있는 딸의 의뢰를 받고, 작업을 시작한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 따른 ‘음모론’도 눈을 뜬다. ‘논란’에 불과한 듯한 이슈들은 때로는 진실이지만 묻히기도 하고, 거짓이라도 우뚝 서기도 한다. 결국 수많은 상황, 사건, 그리고 이를 보도한 기사 등을 통해 진실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 된듯하다. ‘설계자’는 그 지점을 파고든다. 웹상에서 유일한 언어인 0과 1은 모든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설계자’ 속에서는 영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팀원들이 하는 말, 경찰, 의뢰인 등이 하는 말, 심지어 자기 자신이 하는 말까지 의심하게 된다.
범죄 드라마라는 장르 속에 보통 거대한 악이 등장해 주인공이 맞서는 서사를 담아왔다. 하지만 ’설계자‘는 거대한 악의 존재를 공중에 띄워놓고 계속 의심하며 서스펜스를 더한다. 총이나 칼, 주먹이 아닌 크레인에 매달린 거대한 유리, 공사장의 벽돌, 내리는 비, 터지는 플래시 등이 모두 긴장감을 더하는 요소다. ’이걸까? 저걸까?‘ 계속해서 진의에 물음표를 더하는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는 작품을 보는 긴장감을 더한다.
독특한 영화적 경험으로 무장한 영화다. 여기에 수많은 한국 영화 속 착시 장면을 만들어온 강동원의 얼굴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미숙을 필두로, 여장뿐만 아니라 끝까지 톤을 놓치지 않는 이현욱, 든든한 막내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준 탕준상, 의심하게 되는 김홍파, 정은채, 그리고 이무생까지. ‘설계자’에 가장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배우들을 향한 강한 믿음만큼 혼란이 가중되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