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공일반지능 둘러보기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 겸 인공지능연구소장
최근 거대 언어 모형 기반 질의응답 시스템인 챗GPT의 성공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서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는 2016년 알파고 대전 직후 딥마인드의 목표가 인공일반지능의 개발이라고 밝혔고, 오픈AI의 샘 올트먼 역시 GPT의 차기 버전인 GPT-5부터 인공일반지능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메타(舊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이에 뒤처질 수 없다는 듯 인공일반지능 개발을 위해 자사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공일반지능이라는 용어는 1997년 마크 굽러드 교수가 분자 나노기술의 미래 예측 학회에서 발표한 “나노기술과 국제 안보”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굽러드 교수는 분자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각국의 자급자족 체계가 일반화되면서 국제 무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각국이 서로 협력할 요인이 사라지는 상황을 그린다.
또, 분자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극지방, 심해, 우주 같은 인류 공동지의 자원 채굴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이 심화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한 국가 내 잉여 인력은 전쟁에 대한 압력을 높일 것으로 예측했다. 분자 나노생산 기술과 결합한 발전된 인공일반지능은 무한 군비 경쟁 상황을 불러올 수 있으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군비는 이윽고 상호확증파괴를 넘어선 일방확증파괴로 인한 파멸적인 미래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초국적 안보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공일반지능이 등장한 학회의 명칭과 논문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굽러드 교수도 인공일반지능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논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인공은 분자 나노기술이기도 했고, 군비 경쟁 가속화를 현실감 있게 설득하기 위한 조력자로서 인공일반지능 혹은 범용 인공지능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당시의 인공지능 기술은 체스의 딥블루와 같이 특정 분야에서만 대응이 가능한 약(弱)인공지능이 고작이었으므로 수많은 분야의 지식이 총동원되는 전쟁 준비를 1997년 당시의 인공지능이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면 논문에서 그린 굽러드 교수의 미래 예측은 현실감이 떨어졌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에 대한 가정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반(General)”이라는 단어를 인공지능에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굽러드 교수는 “일반(General)”이라는 단어에 더해 “향상된(Advanced)”이라는 형용사를 한 번 더 붙임으로써 인간을 초월한 인공지능을 가정하였다. 인공일반지능과 관련하여 많은 혼동을 부른 원인으로 추정되는데,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은 범용성과는 별개로 초지능(Superintelligence)으로 구분하여 다루고 있으니 참고하자. 즉, 인공일반지능이라고 해서 항상 초지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문장만 두고 보면 문장이 내포한 “초월적인 범용성”에서 인간 이상의 무언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정의에 따르면 어떤 일을 주건 아무렇게나 결과를 “내놓기만” 하는 인공지능도 초지능으로 분류될 수 있으므로 지능 수준과 범용성은 서로 다른 척도로 보는 것이 옳다.
딥마인드의 셰인 레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표한 인공일반지능의 5단계를 소개한 논문에서도 초지능과 범용성을 별개의 축으로 놓고 현실의 인공지능 시스템들을 맵핑하여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도 어디부터 범용 인공지능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인공일반지능이 현실에 등장하였을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일자리와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인공일반지능의 정의상 모든 분야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 인간의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일반지능을 선도하는 오픈AI의 올트먼은 인공일반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를 대비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 소득 등과 같이 인공일반지능이 벌어들인 부를 분배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일반지능은 높은 운용비용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인공일반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이거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GPT를 학습시키기 위해 미국 가정 120가구가 1년간 사용할 전력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고, 올트먼 역시 현재의 에너지 인프라에서는 인공일반지능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에너지 혁신 스타트업인 헬리온이나 오클라 등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결국 인간과 인공일반지능 사이의 파이를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인공일반지능 실현을 위한 유력 기술은 챗GPT의 기저 기술이기도 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꼽히는데, 최근 이에 대한 여러 규준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인공지능 법안(AI Act)을 발표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생성형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규제를 한 것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조항만 꼽자면 생성형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사용된 데이터가 무엇인지 공개해야 하며, 유럽연합의 저작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들은 대부분 인간의 손에 만들어지므로 인공일반지능의 운용에서 얻어진 수익들이 저작권법에 의해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배분되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공일반지능을 운용하는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구축한 데이터를 사용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모든 상황에서 인간이 보호받지는 못하니 주의하자.
어떤 기술이건 양면성을 띠고 있다. 인공일반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산업을 부흥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인류 사회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산업과 그로 인해 형성된 경제 체제인 데이터 경제가 있겠다. 예를 들어, 회사마다 축적된 데이터는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상호 간에 거래될 수 있다. 여기서 데이터는 일반적인 천연자원과 달리 소진되지 않으므로 수요에 맞는 가공을 통해 지속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이렇게 습득된 데이터들은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 사용되므로 심층학습에 필요한 반도체의 수요를 늘리며 이는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많은 반도체를 탑재한 고성능 컴퓨터를 직접 보유하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대여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산업 분야가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한편, 빅데이터 처리를 위한 시설인 데이터 센터에서는 계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열을 제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냉각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의 인공일반지능 발전 동향을 살펴보면 인간 사회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는 산업들을 중심으로 각각 대응되는 인공지능이 하나씩 차례대로 발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픈AI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 대응하는 달리를 발표했고, 이후 광고와 결합하여 높은 수익을 내는 정보 검색 분야에 대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인 챗GPT도 출시했다.
연이어 영상 콘텐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동영상 분야에서는 소라가 발표되어 높은 품질의 동영상을 단지 몇 문장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생성할 수 있게 됐고, 인간의 음성을 쉽고 빠르게 생성할 수 있는 보이스엔진이 연이어 출시됐다. 올트먼은 완성된 인공일반지능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각 분야에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 인공일반지능이라고 해서 반드시 단일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의 작업을 처리할 필요는 없으므로,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픈AI라는 인공일반지능을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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