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대학·기업 건물에 숨은 철학을 찾다

스탠퍼드대 Y2E2 건물. /김동원 기자

미국 대표 연구중심 대학교 스탠퍼드대에 에어컨이 없는 건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취재를 위해 방문한 스탠퍼드대의 일부 건물엔 에어컨이 없었다. 연구실과 교실 등에선 에어컨을 찾을 수 없었다.

에어컨이 없는 빌딩은 스탠퍼드대의 Y2E2 건물이다. 나노, 바이오, 엔지니어링 등의 연구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구기지라도 불린다. 건물이 설립된 이유부터 남다르다. 여러 학문 간의 교류를 활성화해 창의적인 연구 결과를 이끌기 위해 설립됐다. 이를 위해 건물에는 각 분야 연구진들이 있고, 건물 주변에도 관련 분야 연구를 할 수 있는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이 건물들은 지하 통로로 연결돼 있어 연구자끼리 교류가 쉬운 편이다. 이처럼 연구 성과를 위해 설립된 건물에 에어컨이 없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샌프란시스코와 그 근방인 스탠퍼드는 여름이 겨울보다 긴 편이다. 사시사철 비슷한 기후를 보이지만 추울 때보단 더울 때가 더 많다. 그만큼 에어컨을 가동하는 시간 역시 긴 편이다. 그런데 왜 Y2E2 건물엔 에어컨이 없었을까.

Y2E2 건물 내부 모습. /김동원 기자

그 이유는 이 건물의 또 다른 별명인 ‘친환경 건물’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은 설계할 때 패시브 공법을 활용해 최소한의 냉난방으로 적절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구축됐다. 1년 내내 평균20°C의 온도를 유지해 별도의 에어컨이 필요 없는 것이다. 해당 건물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김소형 스탠퍼드대학교 푸드디자인랩 교수는 “Y2E2 건물은 헤어드라이어 하나 돌릴 정도의 에너지만 있으면 자가적으로 냉난방을 셀프로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이 때문에 에어컨이나 난방이 별도로 필요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빌딩은 오수를 정화해 화장실 물로 사용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구성돼 있어 버리는 에너지가 적다”며 “Y2E2 건물뿐 아니라 인공지능(AI) 4대 석학이라 불리는 앤드류 응이 있는 연구실도 친환경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Y2E2에서는 건물 구조 등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동원 기자

스탠퍼드대의 연구기지에서는 친환경적으로 건물을 운영할 방법을 연구해 직접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스탠퍼드대 Y2E2만큼이나 독특한 건물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 된 ‘세일즈포스 타워’였다. 정확히 얘기하면 세일즈포스 본사의 61층, ‘오하나 플로어’였다. 세일즈포스의 시그니처와 같은 캐릭터들이 있는 이곳엔 직원들이 근무하다 잠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여러 이벤트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독특한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120여 종의 식물이 있었다. 건물 벽 등에는 촘촘히 식물들이 자리해 마치 숲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타워 옆에 있는 ‘세일즈포스 파크’에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일즈포스 타워 61층에는 120여 종의 식물이 건물을 장식해놓고 있었다. /김동원 기자

세일즈포스가 건물에 120여 종이나 되는 식물을 장식해놓은 이유에는 기후 변화 등으로 사라져 가는 식물을 보존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이상 현상으로 몇 종의 식물들은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에서 3억 9만 년 동안 자라온 타카키아 이끼가 대표 사례다. 10일 과학저널 ‘셀’(Cell)지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이 이끼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외선에 노출되고 있다. 그만큼 살 수 있는 터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중국 북경사범대학 등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은 티베트의 타카키아 개체수가 매년 약 1.6%씩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개제된 논문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동물들이 서식지를 이동하면서 식물 역시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 식물의 절반 이상은 동물에 의존해 씨앗을 퍼뜨리는데 이 동물들이 생존을 위협받으면서 식물 역시 종자 산포 능력이 떨어지면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라이스대학교,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공동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400개 이상의 종자 이동 네트워크를 분석한 모델을 개발해 연구했고 그 특이점을 찾아냈다. 논문 제1저자인 에반 프리크(Evan Fricke)는 “식물이 움직일 수 있는 기회는 주변에 씨앗을 이동시키는 짧은 시간 뿐”이라며 “기후가 변하면 식물종이 적합한 환경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동물을 매개로 하는 종자 산포 식물들은 씨앗을 퍼뜨려줄 동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멀리까지 이동하기 어려워 멸종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세일즈포스는 이처럼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타워 내 꼭대기에 120여 종의 식물을 장식해놓은 것이다. 사실 세일즈포스는 친환경에 노력하는 기업 중 한 곳이다. 비영리단체인 글로벌 포레스트 제너레이션과 협력해 지역의 물 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62만 5000그루의 자생목을 심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 고객사의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기술도 지원한다. 고객사가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도록 가스 데이터 수집부터 탄소 배출량 계산, 모니터링 분석 등 탄소배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업의 넷 제로 달성을 독려하고 있다. 건물에도 이러한 세일즈포스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직원들이 근무하다가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옆에도 식물이 있다. /김동원 기자

미국을 대표하는 대학과 기업에서는 환경을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환경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과제다. 한국도 정부와 기업에서 여러 친환경 정책을 내놓고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행동의 시작점은 우리가 생활하는 건물일 수도 있다. 스탠퍼드대와 세일즈포스는 이미 그 출발선을 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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