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종현 "배우로서 거창한 꿈 없어…그저 내 '레이스' 달리는 중"
배우는 캐릭터를 통해 성장을 증명해 내는 직업이다. 홍종현은 그런 배우 직업이 천직 같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 덕인지, 홍종현은 욕심 없이 그저 이 직업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2008년 영화 '쌍화점' 단역으로 데뷔한 후 곧바로 주조연으로 활약, 성장형 배우임을 입증하고 있는 그다. 어느덧 연기를 시작한 지 햇수로 16년, 홍종현은 최근 디즈니+ 오리지널 '레이스'를 통해 또 한 단계 성장을 보여줬다.
'레이스'는 스펙은 없지만 열정 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된 '박윤조'가 채용 스캔들에 휘말리며, 버라이어티한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K-오피스 드라마. 홍종현은 90년대생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현실 직장인이자 대기업 홍보실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는 '류재민'을 연기했다. 그런 홍종현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근사근한 모습으로 취재진을 맞은 홍종현은 편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레이스' 속 재민이는 적당히 일하지만 회사에서 인정받는 앨리트다. 그런 재민이 친구이자 짝사랑하고 있는 박윤조(이연희)와 회사 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변화해간다. 홍종현은 자신만의 레이스에 오른 재민의 서사를 유연하게 그렸다.
홍종현은 재민을 연기하며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자연스러움'이었다고 강조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표현하지만 시청자가 최대한 익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캐릭터적 고민을 통해 구현한 재민이는 홍종현 그 자체였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친숙한 장르이기 때문에 공감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최대한 편안 상태로, 편안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누굴 참고한 것보다 캐릭터를 설정할 때 중요하게 둔 부분은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재민이의 모습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그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재민이가 나중에 일에 진심이 되고 달려들 때 그런 변화가 명확하게 보여질 거라 생각했다. 시니컬한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공과 사에서) 감정이 섞이지 않게 하려 했다."
전작에서도 회사원 캐릭터를 소화한 적이 있었지만, '레이스'는 단순한 오피스물이 아니었다. 오피스를 배경으로 하면서 '홍보인'에 집중된 스토리가 신선한 포인트였다. 타 작품보다 직장인의 생리를 면밀히 그릴 수밖에 없던 터. 홍종현은 주변의 조언, 그리고 공간의 힘을 받아 재민이를 입어냈다.
"작업 시간이 길다 보니 저에게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데, 촬영 초반부에 찍은 신들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조금 적응이 안 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다 보니 감정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우리 현장은 회사 사무실, 윤조의 집, 술집까지 모두 한 세트장에 있어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제가 회사원을 해보지 않아서,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회사 생활하면 하루 일과는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런 단순한 것들까지 물어보면서 준비했다. 저는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직장인의 삶을 상상해 봤을 때 떠오르는 것과 실제 직장인의 삶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저희 회사 홍보팀 분들도 되게 많이 공감이 된다고 해주셨다. 그런 점에서 우리 작품이 리얼리티가 있구나 자신하게 됐다."
'레이스'는 윤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까지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다. 재민이는 윤조의 곁에서 점점 열정을 찾고 나은 삶을 향해 가는 인물이다. 게다가 단순한 우정 서사가 아닌 애틋 로맨스까지 소화했다. 홍종현과 이연희는 삼각관계에 짝사랑까지 꽤나 어려운 감정을 함께 나눠야 했다. 호흡을 묻자, 홍종현은 "누나 덕에 해낼 수 있었다"며 모든 공을 이연희에게 돌렸다.
"이연희 누나가 저보다 연상이지만 되게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세 친구 중에 제가 제일 막내인데 누나들이 정말 편하게 해주셨다. 촬영 시작되기 전에도 만나서 대본 얘기하고 술도 한 잔씩 하면서 되게 편한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희 누나가 많이 노력을 해준 자리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누나가 워낙 오래 활동해오셨고 예쁘시지 않나. 만나서 얘기해 보니까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것 같다. 윤조 캐릭터도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런 역할을 연희 누나가 본인과 잘 어울리게 소화를 하는구나 싶었다. 누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여태껏 이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기회가 주어지면 본인의 모습으로 잘 표현을 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윤조와 재민에게 구이정(문소리)은 커리어적 멘토다. 홍종현에게 문소리도 그랬다. 현장에서 문소리와 처음 호흡을 맞춰본 홍종현은 선배의 태도를 보며 배웠고, 조언을 들으며 꿈이 생겼다.
"문소리 선배님을 뵀을 때 여유가 있어 보이셨다. 저는 현장에서 찍을 신들을 하루 종일 생각하는데 선배님들은 그냥 편하게 계시더라. 나중에 선배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쭤봤는데, '나도 고민이 많다. 편하게 임해야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를 배우고 싶었다. 또 선배님께서 주변 사람들을 아주 잘 챙기시는데 그런 점도 닮고 싶었다."
"저는 배우로서의 거창은 꿈같은 건 없다. 어떤 작품을 해서 어디에서 무슨 상을 받고 싶어요 같은 마음보다는, 100%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배우 일을 좋아하니까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선배님들과 연기하면서 제가 발전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순간에 되게 감사하고 존경을 느낀다. 바람이 있다면 저도 나중에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배우가 되지 않았어도 직장 생활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웃어 보인 홍종현은 지금의 삶에 아주 만족한 듯 보였다. 본인은 아니라고 손사레를 쳤지만 16년 차 배우의 여유가 느껴지기도 했다.
"제 삶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 그 자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배우라는 일이 같은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변화가 되게 많은 직업이지 않나. 매 작품 들어갈 때 같이 일하는 사람들, 옷, 성향 모든 게 바뀌니까 저는 매번 정말 새롭다. 제 성향 자체가 새로운 걸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직업적으로 만족도가 높다. 잘 맞는 직업을 얻었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지금 되게 평화롭다. 사건사고 없이 가족, 친구들과도 사이가 아주 좋다.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 저만의 페이스대로 인생을 잘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마다 빛나는 타이밍이 다르지 않나.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바쁨과 여유를 잘 즐겨가면서 살고 싶다."